스스로를 구원할지어다

<신곡 지옥편 단테 알리기에리의 코메디아>_단테 알리기에리, 민음사

by 피킨무무






<지옥편>_1곡~7곡

엥겔스는 단테를 두고 최후의 중세 시인이자 최초의 근대 시인이라 평했는데요, 이는 신을 추앙하되 인간을 근본으로 두는 단테의 사상에서 비롯되지 않았나 싶습니다. 중세를 거쳐 기독교 베이스(지옥과 천국의 개념이 그렇죠.)에 연옥을 추가한(연옥은 중세의 신이 만들어낸 개념이라기보다 지옥행을 유예시키고자 하는 근대 인간의 욕망을 반영한 거래요.) 것도 그렇고 작품 전체에 죄지은 인간에 대한 연민이 가득합니다.


단테는 당시 이탈리아 반도에서 제일 잘 나갔다는 피렌체 출신으로 그가 그리스로마 신화와 일리아드 오디세이의 광팬이라는 건 작품을 보면 알 수 있어요. 한 가지 의문은 당시 대서사시하면 모두 로마 라틴어로 쓰여졌는데 왜 오타쿠 단테는 피렌체 방언으로 그러니까 현대 이탈리아어의 근체로 썼을까 하는 것입니다. 추방당한 피렌체를 너무 그리워해서일까요? 라틴어로 안쓰여져서 어학사적으로도 의미가 있고 현대인들에게 접근성도 확 올라가서 결과론적으로는 매우 좋음 상태가 되었지만, 이걸 다 예상했을까요?


쨌든 그는 자신보다 천 년 앞 선 시인, 흠모했던 베르길리우스를 앞세워 별을 따라 지옥, 연옥, 천국을 여행하는 창작물을 쓰게 됩니다. 우선 지옥으로 여러분들 모십니다. 여기 오는 자, (재미있을 거라는) 희망을 버려라.



_8곡~14곡

단테와 베르길리우스는 여행을 하며 실제 삶 속에서 단테를 곤란에 빠뜨린 사람들을 여럿 만납니다.(그들을 모두 지옥에 넣어버린 작가의 위엄, 꼬우면 작가 해라 이건가요.)


분노의 죄(개인적 감정에 좌지우지되어 살아온 죄)를 다스리는 제5 영역에서 정적 필리포를 만난 단테, 베르길리우스와 팀플레이로 그를 스틱스에 처박으며 망명의 설움을 털어냅니다. 이교도의 죄를 다스리는 제6 영역에서 만난 파리나타에겐 과거 적이었으면서도 그의 의연함에 존경심을 표하며 인격의 성숙함을 드러냅니다.(그치만 지옥인걸)


본디 기독교의 교리에 따르자면 이교도나 신성모독이 지옥의 최하층일 텐데 단테는 그것을 6번째나 7번째 층 정도의 죄라고 합니다. 그렇다면 그가 제일 악하다고 생각하는 죄는 무엇일까요?


제7 영역은 폭력의 죄를 다스리는 곳으로 타인, 자신, 신을 향한 폭력을 다룹니다. 삶아지고 메마른 나무가 되고 불비를 맞는 지옥의 묘사가 생생하니, 이곳은 갈 곳이 못됩니다.


_15곡~21곡

제8 영역은 무려 10개의 구렁으로 구획되어 있습니다. 가장 복잡하고 방대하게 기획되어 있다는 점에서 단테가 이곳의 죄를 매우 중하고 세밀하게 살펴보았다 할 수 있겠습니다. 배신은 다른 이를 기만하는 교활한 죄로 개인 간의 신뢰관계를 파괴합니다.


유혹자 이아손의 등장이 반갑(?)습니다. 메데이아의 복수가 이렇게 이루어지고 있군요.

에우리필로스와 칼카스는 아가멤논의 딸 이피게니아를 제물로 바쳐야 한다고 주장한 그리스 신화 속 예언자입니다. 이승에서 앞을 내다보고 예언한 자들이 지옥에서 뒤만 볼 수 있도록 고개를 꺾어버린 형벌을 받고 있는 장면이 인상적입니다.


_22곡~28곡

위선자의 황금망토는 끔찍하리만큼 무거운 납을 보이지 않는 안쪽에 매달고 있습니다. 땅바닥에 십자가형을 받은 사람은 대사제 카파야입니다. 예수가 유대민족을 위해 홀로 죽임을 당해야 한다 주장했던 사람입니다.


도둑들은 뱀으로 변하는 고통을 끊임없이 되풀이하여 겪습니다. 어쩌면 지옥은 벌은 형벌의 경중의 문제가 아니라 흐르지 않는 시간 속에 갇혀있다는 그것 자체일지 모르겠습니다.


속임수와 모사꾼의 죄를 다스리는 구렁에선 오디세이가 등장합니다. 단테는 꾀많은 오디세이를 영웅으로 생각하지 않았나 봐요.


이슬람교의 창시자 무함마드는 분열의 죄로 몸이 잘리는 죄를 받습니다. 그가 말하는 분열이란 이슬람교로 인한 기독교세계의 분열을 말하는 거겠죠? 그럼 무함마드의 사촌 알리는 무슨 분열의 죄인지, 이슬람교를 분열한 죄인가요? 그럼 기독교의 입장에선 나쁘지 않은 거 아닙니까? 걍 괘씸죄라고 퉁치면 되는 걸까요. 역시 이 세계의 일진은 작가입니당.


_29곡~34곡

30곡에서 언급된 죄 많은 미라는 아프로디테 때문에 아버지를 사랑하여 근친상간의 죄를 저지르고 몰약나무로 변한 아도니스의 어머니, 스미라다의 다른 이름입니다. 따지고 보면 신들 때문에 일어난 일이거늘, 쳇.


지옥의 최하층에 다다른 단테와 베르기우스. 이곳에서는 가족이나 국가 혹은 종교와 같이 좀 더 태생적인 관계에서 일어난 배신을 다룹니다. 가족, 국가, 종교를 중시하는 단테의 정치가적 면모를 확인할 수 있는 부분으로 사회적 존재로서의 인간의 관계를 강조한다 하겠습니다. 루키페르, 즉 루시퍼의 배꼽에서 거꾸로 매달려 다리를 타고 지옥을 벗어나는 장면이 재밌습니다. 어잇차, 물리적 법칙이 뒤집히는 단테의 우주.


"그렇게 해서 밖으로 나와 별들을 다시 보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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