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스로를 구원할지어다

<신곡 연옥편 단테 알리기에리의 코메디아>_단테 알리기에리, 민음사

by 피킨무무





<연옥편>_1곡~7곡

연옥은 구원의 여지가 있는 곳으로 늘 고통스러운 현재가 반복되는 지옥과 달리 시간의 흐름이 느껴지는 곳입니다. 대신 연옥산으로 가는 길까지 본인의 의지와 힘으로 판단하여 나아가야 합니다. 우왕좌왕하는 영혼도, 길을 잃고 나아가지 못하는 영혼도 존재합니다.


연옥의 파수꾼 할아버지는 로마의 정치가 카토입니다. 본디 카이사르와 함께 폼페이우스에 대항하였으나 내전이 일어나자 폼페이우스 편에 선 공화주의자로, 결국 카이사르가 승리하자 자살을 합니다. 본래 자살자는 지옥에 (혹은 자살이 아니라면 림보에) 있어야 하거늘 단테는 그를 연옥의 문지기로 세웠습니다. 림보출신 길잡이 베르길리우스에게는 좀 힘 빠지는 일입니다만, 연옥의 영혼들이 자유의지를 가지고 구원을 추구하는 한다는 점에서 그것을 상징하는 인물을 문지기로 설정했다고 할 수 있겠습니다.


만프레디는 교황에게 파문을 당하고 전사한 왕으로 그가 연옥에 있다는 사실은 단테가 당시 교황의 파문권에 의문을 제기했다고도 볼 수 있을 것입니다. 또한 죄를 저질러도 진정으로 회개하면 기회를 얻을 수 있으리라는 다수의 염원이 느껴지기도 하고요. 하지만 죄를 씻는 것이 쉽지는 않습니다. 오만하게 보낸 시간의 서른 배의 시간을 연옥산을 오르기 전에 보내야 합니다. 현세의 어질고 착한 이의 기도가 이를 단축해주기도 합니다. 사람은 죽어서도 관계 속에서 살아가고 단테는 이러한 타자와의 관계를 매우 중요하게 생각했던 것으로 보입니다.


_8곡~14곡

드디어 연옥산에 도착했습니다. 세 개의 색깔계단은 죄를 고백(흰색)하고 참회(청색)하며 대가를 치르는 것(적색)을 뜻한다고 합니다. 문지기 천사가 라틴어로 죄를 뜻하는 peccatum의 p를 단테의 이마에 7개를 새겨주며 연옥의 시련이 시작됩니다. 이제 단테는 총 7개의 연옥 스테이지를 통과하여 각 층마다 p, 즉 죄를 하나씩 클리어하여 없앨 퀘스트를 부여받았습니다.


첫 번째 스테이지는 오만, 자신의 죄만큼 무거운 돌덩이를 등에 지고 오르는 사람들이 보입니다. 그 사람들과 함께 올라가다 단테가 본 조각물에 그리스 신화 속 오만의 대명사, 아라크네가 있는 것도 인상적입니다. 그녀는 자신의 베 짜는 기술에 오만한 나머지 아테네 여신과 베틀배틀(?)을 하다가 거미로 변해버린 벌을 받았건만 여기에서도 조각으로 박제되어 있네요. 이곳은 일사부재리의 원칙 같은 건 통용되지 않나 봅니다. 첫 번째 스테이지를 나오자 이마에 새겼던 p가 여섯 개로 줄었습니다.


두 번째 스테이지, 눈꺼풀을 철사로 꿰매어 질투의 죄를 정화합니다. 비주얼로 따졌을 때 제일 충격적인 장면입니다.


_15곡~21곡


15곡의 마르코의 대화에 주목해 봅니다. 단테가 마르코에게 세상이 왜 이렇게 어지럽혀졌는지를 묻자 그는 대답합니다.


"사람들은 모든 것이 어떤 예정된 계획대로

움직인다고 생각하고

모든 원인을 하늘에 돌리려고 하오만,


그것이 사실이라면, 당신들의 자유의지는

없어질 것이며, 선에 대한 기쁨도

악에 대한 슬픔도 갖지 못하게 될 것이오.


하늘이 사람들의 행동을 주관하시지만,

모든 것을 주관하는 것은 아니오. 모두라고 하더라도

사람들은 그릇된 것과 옳은 것을 구분하는


스스로의 빛을 지니고 있소. 자유의지는,

처음에는 하늘과의 갈등으로 상처를 입고 약해졌지만,

잘 키우기만 하면 모든 장애를 극복할 수 있소.


인간들은 더 위대한 힘을 가진 자유로운 주체들이오.

사람들의 마음을 창조한 더 고귀한 성품에 속해 있지요.

하늘도 이것을 넘어서서 통제를 하지는 않습니다."<연옥>15곡 67행~


오, 외쳐, 자.유.의.지!

단테는 연옥에서 자유의지를 매우 강조합니다. 스스로의 빛을 따라가라,는 말은 지옥 편에서도 나왔던 말인 것 같은데요. 이 세상은 신이 안배해 놓았으나 그 안에서 선을 따르는 선택의 자유의지가 중요하다 볼 수 있겠습니다. 교황이 세속적인 권력을 탐하는 것에 반대했던 단테의 정치적 스탠스를 확인함과 동시에 그가 가진 인간의 본성에 대한 믿음을 엿볼 수 있습니다. 더 나아간다면 교회 개혁까지도?


쨌든 그의 말이 맞아요, 세상은 잘못이 없죠, 인간의 어리석은 선택이 재앙을 불러올 뿐. 우리는 이성의 힘을 단단히 붙잡아 옳은 선택을 해야 합니다. 이것이 단테의 철학이 세상이 어지러워질 때마다 재재재소환되는 이유이며 그의 글이 시대를 뛰어넘은 위대한 작품이라 칭해지는 까닭이겠죠.


_22곡~28곡


탐식과 탐욕의 둘레를 벗어나는 동안 친구 포레세를 만난 단테는 5년 전에 죽은 그가 벌써 연옥산의 끄뜨머리 단계에 와있는 것을 보고 의아해합니다. 계산대로라면 그는 연옥의 입구 입장대기줄 속에서 하염없이 기다리고 있어야 하니까 말입니다. 그의 말로는 그의 아내의 끝없는 기도로 대기시간이 엄청 줄어 프리패스권을 산 것마냥 엄청난 속도로 진출을 했다고 하니 살아있을 적에 덕을 쌓는 것이 무척이나 중요하겠습니다. 죽어서도 이처럼 인간관계에 신경을 쓰고 사회생활을 해야 한다니 벌써 피곤해지네요.


이제는 대놓고 아들아! 하고 부르는 베르길리우스와 스타티우스를 의지하여 단테는 이제 모든 스테이지를 클리어하고 홀로 불길도 뚫는 용감한 전사로 거듭납니다. 베아트리체, 이제 곧 만나러 갑니다.


_29곡~33곡


단테는 교회와 교리를 상징하는, 빛무리와 같이 빛나는 무리들을 목격합니다. 그리고 마침내 베아뜨리체를 만나게 됩니다. 천국에 오르기 위해서는 베르길리우스가 상징하는 지상의 지식만으로는 부족하기 때문이죠. 베아뜨리체는 그저 빛, 단테에게 신앙적인 그 무엇인가 봅니다. 단테의 부인은 이 작품을 정말 좋아하지 않았을 것 같아요.


한편 베르길리우스는 다시 림보로 돌아간 것일까요. 스타티우스의 천국행과 비교하여 베르길리우스가 좀 안타깝습니다. 예수님, 거 좀 일찍 태어나지 그러셨습니까, 떼잉.


이제 단테는 레테와 에우노에 강의 달콤한 망각의 물을 마시고 별들을 향해 날아오를 준비가 되었습니다. 천국아, 기다려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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