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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피킨무무 Nov 10. 2023

이렇게 꼰대가 되어간다

<달과 6펜스>_서머싯 몸





이 작품은 찰스 스트릭랜드라는, 말하자면 기인이자 예술가의 삶을 화자인 내가 파헤쳐가는 탐정소설의 형식을 취하고 있다. 실제 화가 고갱을 모델로 한 스트릭랜드는 평범한 증권회사원으로 살다 갑자기 마흔이 넘은 나이에 자신의 꿈을 이루기 위해 아내와 아이들을 버리고 평온한 삶을 내던진, 세상의 기준으로 본다면 비정상이자 인성파탄자라고 할 수 있다. 나는 이 희한한 사내의 사연에 흥미를 느껴 그의 삶의 궤적을 쫓는다.


<달과 6펜스>라는 제목에서 보듯이 우리는 서로 다른 세계를 동전의 앞뒷면에 가지고 있다. 그것은 이상적인 세상과 세속적인 세상일 수도, 신비로운 예술의 세계와 물질적 향락의 세계일 수 있다. 요컨대 각자 상상하는 바대로의 대비되는 세상이 있되 두 세계는 결코 공존하지 않는다, 마치 우리가 달의 뒷면은 평생 볼 수가 없듯이. 그리고 동전의 다른 면을 보기 위해서는 동전을 뒤집어야 하듯이 저 세계로 넘어가기 위해서는 이 세계를 온전히 버려야 한다. '보통'의 '흔한' 우리는 그것을 딱히 마음먹지도 못하거니와 그럴만한 능력도 없다. 허나 스트릭랜드는 우리와 달리 그것을 해 낸 인물이며 후에는 천재성까지 인정받는다. 영국에 남겨진 세속적인 아이들과 타히티의 자유로운 영혼을 가진 야성의 아이를 대비시키는 엔딩까지 보건대 화자 역시 확실하게 스트릭랜드의 손을 들어준다. 우리의 상식과 도덕으로는 이해할 수 없는 너머의 무언가를 옹호한달까.


"사람은 누구나 세상에서 홀로이다. 각자가 일종의 구리 탑에 갇혀 신호로써만 다른 이들과 교신할 수 있다. 그런데 그 신호들이 공통된 의미 가치를 가지고 있지 않아서 그 뜻은 모호하고 불확실하기만 하다.(...) 우리는 마치 이국 땅에 사는 사람들처럼 그 나라 말을 모르기 때문에 온갖 아름답고 심오한 생각을 말하고 싶어도 기초 회화책의 진부한 문장으로밖에는 표현할 길이 없는 사람들과 똑같다."p.211


아름답고 심오한 생각을 글로, 그림으로, 음악으로 적확하게 표현해 내는 사람들이 바로 예술가라 할 수 있으며 이들의 작품을 통해서만 우리는 진부함을 떨쳐낼 수 있다. 이 특별함 때문에 종종 예술가의 아우라는 치명적이며 그의 결점조차 매력점으로 바뀌게 한다. 하지만 예술적 천재성의 가치가 그 어떤 인간성이나 도덕성의 그것을 능가하는 것일까?


" 나의 의견으로는, 예술에서 가장 흥미로운 부분은 예술가의 개성이 아닐까 한다. 개성이 특이하다면 나는 천 가지 결점도 기꺼이 다 용서해 주고 싶다."p.8


하긴, 나 역시 돌아보니 어릴 때는 그의 천재성에 매료되었더랬다. 몇 번을 읽어도 그의 빛나는 재능이 내 마음을 사로잡았었다. 그의 인격적 결점으로 인해 불행을 맞이한 이들은 그의 비범한 예술적 천재성을 더욱 부각시키는 역할이었다. 나이를 어느 정도 먹고 다시 읽으니 그가 상처 입힌 사람들이 이제서야 눈에 밟힌다, 작은 배려가 있었다면 불행하지 않았을. 누군가의 절망과 눈물로 빚어진 위대함보다 사려 깊고 다정한 소소함을 택한다면 그건 너무 비겁한 선택이려나? 겁쟁이가 되었다. 이렇게 꼰대가 되어간다.


(+) 그간 진행형 꼰대임을 느끼게 한 책 <폭풍의 언덕>, <좁은 문>에 이어 세 번째 책으로 등극. 어릴 때에는 히스클리프, 제롬, 스트릭랜드가 그렇게 멋져 보일 수가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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