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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피킨무무 Nov 15. 2023

이런 엔딩을 원하니?

<1984>_조지 오웰




대개 이 작품은 헉슬리의 <멋진 신세계>와 함께 디스토피아 소설 양대산맥으로 꼽힌다. 둘은 비슷하면서도 다른 설정을 가지고 있는데, <멋진 신세계>는 쾌락에 지배받는 미래를, <1984>는 고통에 지배받는 미래를 그린다. 또한 <멋진 신세계>가 좀 더 문학적인 느낌이라면 <1984>는 작가가 자신의 문학을 도구로, 무기로 휘두르는 것 같은 느낌을 받았다. 보통 작품을 도구로 썼다 하면 부정적인 뉘앙스일진대 조지 오웰의 경우는 그렇지 않다. 이유는 그의 삶의 궤적에 있다.


조지 오웰의 삶의 이력은 대단히 다채롭다. 그는 우수한 성적으로 명문 이튼 칼리지에 입학하였으나 동양에 대한 동경으로 제국경찰이 되어 인도와 미얀마에서 근무한다. 그러나 그곳에서 제국주의와 식민지의 현실을 체험하고 회의를 느낀다. 유럽으로 돌아와서는 작가가 되겠다 결심하고 파리와 런던의 빈민가로 직접 뛰어든다. 잉글랜드 북부 광부의 삶을 직접 체험하고 글을 썼으며 스페인 내전에도 자원 입대하여 직접 전투에 참가한다. 이처럼 그가 쓴 모든 작품은 그의 실제 삶의 경험에 바탕을 두고 집필된다. 작품의 결과 작가의 인생이 일치하는, 결코 흔치 않은 부류다. 그렇기에 문학이 도구화되었다는 느낌에도 작품의 진정성이나 문학성이 훼손되지 않았다고 볼 수 있다.


게다가 기자가 썼다 싶은 간결하고 명확한 문체와 작품 내 당의 간접통치안으로 등장하는 이중사고와 신어, 역사왜곡의 설정은 그의 뛰어난 통찰력과 천재성을 느끼게 해 주고도 남는다. 뭐, 이 정도면 휘두르셔도 좋습니다!



"그는 거대한 얼굴을 올려다보았다. 그 검은 수염 뒤에 어떤 웃는 얼굴이 숨어 있는지 이제야 알 것 같았다. 오, 잔인하고 쓸데없는 오해! 오, 사랑하는 마음으로부터 스스로 망명을 청한 고집! 그의 코 양옆으로 진 냄새가 나는 두 갈래의 눈물이 흘러내렸다. 하지만 그래도 괜찮았다. 모든 것이 괜찮게 된 것이다. 투쟁은 이제 끝났다. 그는 자신과의 싸움에서 승리를 거둔 것이다. 그는 이제 빅 브라더를 사랑했다."p.381


이 비통한 엔딩 역시 너무나 그 답지 아니한가. 빅 브라더에게 굴복하고 행복을 찾을 것인가, 너머에 있는 진실을 외면치 않고 자유를 위해 죽을 것인가, 엎치락뒤치락하던 두 자아의 싸움에 마침내 종지부가 찍힌 것이다. 그러나 다분히 디스토피아적인 이 엔딩은 역설적이게도 희망을 다시 품게 한다. 윈스턴의 마지막 승리를 독자 중 어느 누구도 진짜 승리로 받아들이지 않을 것이기 때문이다.


<1984>의 세계는 작품의 끝에서 닫히는 세계가 아니다. 그 세계는 작품 밖으로 연장된다. 작품 안에서 윈스턴은 배교자로 끝을 맺었으나 작품 밖, 확장된 우리의 세계에서는 순교자가 된다. 오웰은 작품 밖에 존재하는 프롤들(바로 우리다!)에게 경고하는 것이다, 이런 엔딩을 원하느냐고. 작품 속에서는 무력하였으나, 무지하고 자유로운 프롤들이 희망인 까닭이 바로 여기에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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