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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피킨무무 Dec 07. 2023

애타도록 마음에 서둘지 말라

<봄밤>_권여선 <안녕,주정뱅이> 중에서







봄밤_김수영

애타도록 마음에 서둘지 말라
강물 위에 떨어진 불빛처럼
혁혁한 업적을 바라지 말라
개가 울고 종이 울리고 달이 떠도
너는 조금도 당황하지 말라
술에서 깨어난 무거운 몸이여
오오 봄이여

한없이 풀어지는 피곤한 마음에도
너는 결코 서둘지 말라
너의 꿈이 달의 행로와 비슷한 회전을 하더라도
개가 울고 종이 들리고
기적소리가 과연 슬프다 하더라도
너는 결코 서둘지 말라
서둘지 말라 나의 빛이여
오오 인생이여

재앙과 불행과 격투와 청춘과 천만 인의 생활과
그러한 모든 것이 보이는 밤
눈을 뜨지 않은 땅속의 벌레같이
아둔하고 가난한 마음은 서둘지 말라
애타도록 마음에 서둘지 말라
절제여
나의 귀여운 아들이여
오오 나의 영감(靈感)이여

김수영의 <봄밤>을 사랑 노래로 바꾸는 작가의 감수성이 놀랍다. 사랑의 어떤 비극적인 지점은 처연하기도 아름답기도 할 수 있나보다. 서로가 있어 고통으로 가득 찬 삶을 견뎌낸다는, 반짝이는 눈물보다 진득이는 코피와도 같은 사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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