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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피킨무무 Dec 12. 2023

어떻게 살 것인가?

<이반 일리치의 죽음>_레프 톨스토이



""저항은 불가능해. 하지만 적어도 왜 이러는지 이유라도 알 수는 없는걸까? 이 마저도 안 된다구? 설명은 되겠지. 만약 내가 그렇게 살아서는 안 되는 인생을 살았다고 말한다면 말이야. 하지만 그걸 인정할 수는 없잖아." "그래 설명은 없어! 고통, 죽음... 도대체 이유가 뭐야?""p.103


"저들이 불쌍해, 저들이 힘들어하지 않도록 해주어야 해. 저들을 해방시켜주고 나도 이 고통으로부터 해방돼야 해. 얼마나 좋아, 얼마나 간단해."p.111


일리치가 죽었다는 소식에 그의 직장 동료들은 그의 자리를 누가 채울 것인지를 궁금해한다. 그의 아내는 정부로부터 연금을 더 뜯어낼 방법에 대해 조언을 구한다. 추도와 연민은 현실에 잠식되어 간다, 산 사람은 살아야 하는 것이니까.


그러므로 삶, 고통, 죽음은 지극히 개인적이며 고독한 것이다. 어느 누구도 아닌 오직 나만이 나의 삶, 나의 고통, 나의 죽음을 경험할 수 있으니 말이다. 게다가 거기에는 어떠한 이유도, 설명도, 의미도 없다. 우연의 중첩으로 만들어지고 또 살아지는 인생!


결말에 대해 한마디 하자면, 다소 교훈적인 톨스토이식 엔딩(자아성찰과 인류연민)이긴 하나, 죽음을 경험하지 않은 자가 이처럼 상세하게 죽음에 이르는 고통을 묘사하고 있음이 놀랍다. 또한 죽음이라는 것이 그토록 허무하고 의미 없는, 인간이 저항할 수 없는 불가피한 운명이라는 생각에 한없이 비관적으로 생각이 흐르다가도, 반대로 생의 한 순간순간은 조금이나마 우리의 의지로 충만하게 채울 수 있지 않겠는가,라는 생각이 든다. '어떻게 죽느냐'가 아닌 '어떻게 살 것인가'의 문제로 치환되는 지점이 바로 여기에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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