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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피킨무무 Mar 19. 2024

독후에 떠오른 몇 가지 단상, 혹은 망상

<아침 그리고 저녁>_욘 포세, 문학동네







아침이 오면 반드시 저녁이 오기 마련이다. 탄생에는 죽음이 자연스럽게 깃든다. 이것이 인류 역사 20만 년의 시간 동안 변하지 않았던 자연의 섭리,라고 하면 뭔가 무척이나 섬뜩하다. 그 어떤 존재의 방해나 묘락도 통하지 않은 시간의 진리. 그동안 영생과 불멸을 바랐던 인간은 수도 없이 많았을 텐데 단 한 명도 이 법칙을 거스르는 데 성공한 이가 없었다는 것, 나 또한 이 시간의 법칙에 바스러져갈 티끌 같은 존재라는 것, 따위의 상상을 해보면 죽음이 두렵다.

혹자는 끝이 있기에 생이 의미 있다고 한다. 수많은 문학작품에서 영생과 불사는 고독과 무료함, 허무를 몰고 오는 존재로 묘사된다. 허나 인간은 본래 영원히 살 것처럼 지금을 보내지 않던가. 어차피 인간이 죽음을 항상 염두에 두며 시간을 보내는 것은 불가능하다면 지금의 순간이 끝없이 연장된다고 해서 별반 나빠질 일은 없을 것 같다고 징징거리고 싶은데.

그러나 이런 생각을 비웃기라도 하듯 인간에게는 늙음과 노쇠라는, 죽음을 상기시키는 촉매제가 존재한다. 우리는 절대 멈출 일이 없는 시간 속에서 천천히, 하지만 착실하게 죽음에 가까워지고 있다. 사랑하는 이들과 타이머의 끝이 정확히 일치하지 않는다는 것 역시 우리를 절망케 한다. 누군가는 나를 앞서 가고, 누군가는 나의 뒤에 홀로 남는다. 죽음은 인간을 존재부터 뒤흔들 수 있는 강력한 두려움 그 자체다. 고로 끝이 있기에 생이 빛난다라기 보단 으이휴, 어차피 끝날 거 요거라도 좀 쓸고 닦아봐야지 어쩌겠니,의 뉘앙스랄까.

그래도 이런 문학작품들이 위로가 된다는 것을 부정할 수 없다. 수많은 형태의 죽음을 간접경험함으로써 나의 그것 역시 담담하게 받아들일 수 있도록 단련하는 수밖에. 게다가 이런 사후세계관이라면 쓸쓸하지 않잖아.

"그러나 물건들은 제각기 지금까지 해 온 일들로 인해 무겁고, 동시에 가볍다, 가늠할 수 없을 만큼, 요한네스는 생각한다, 상상해 보라, 세탁기가 생기기 전에 에르나가 저 통을 얼마나 자주 사용했는지, 저 안에다 얼마나 많은 빨래를 했는지, 그래 결코 적지 않은 빨래였다, 그리고 이제 에르나는 가고 없는데 빨래통은 여전히 남아 있다, 그런 것이다, 사람은 가고 사물은 남는다"p.43

때때로 나의 갑작스러운 죽음 이후에 남겨질 나의 물건들을 상상해 보면 뜨악스럽다. 특히 나의 리디 서재목록은 절대 열지 말고 나와 함께 보내달라, 남편에게 부탁해야지.

"그거 고약한 일이군, 페테르가 말한다
그리고 요한네스가 올려다보니. 페테르의 눈에 눈물이 고여 있다
정말 고약한 일이야, 페테르가 말했다
바다가 더 이상 자네를 원하지 않는구먼, 그가 말한다"p.81

먼저 간 나의 친구가 나의 죽음을 슬퍼해주다니, 이런 친구가 있다는 것만으로도 요한네스의 삶은 성공적이었군. 사실 그의 죽음 역시 호상으로 불릴만하지 않은가, 역시 삶과 죽음 모두 성공적이었던 그는 소설의 주인공답게 비범한 셈.

"자네가 사랑하는 건 거기 다 있다네, 사랑하지 않는 건 없고 말이야, 페테르가 말한다"p.133

사랑하지 않는 것은 없고 사랑하는 것은 모두 있는 곳이라니, 죽음이 그렇게 나쁜 것만은 아닐지도 몰라. 하지만 이것은 얼른 이달 실적을 채워야 하는 신의 영업전략일지도 모른다. 어이, 순진하게 다 믿지는 말라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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