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술쟁이 Nov 14. 2020

위스키냐 와인이냐 그것이 문제로다

넓어지는 기호, 견문 그리고 그만큼 열심히 일해야 하는 나의 간

 필자에겐 엄마가 좋아 아빠가 좋아만큼 어려운 문제가 와인이 좋냐 위스키가 좋냐다. 금전적으로 조금 여유가 있는 날은 둘 다 진탕 마시기도 하지만, 현실적으로 그러기 어려운 날들이 훨씬 더 많다. 이 여행에서도 가장 어려운 문제 중 하나가...

한 달이라는 정해진 시간과 예산 안에서 와인/위스키 비중을 어떻게 할 것인가



인터넷에서 심심찮게 아일라 여행기를 찾아볼 수 있다. (https://www.clien.net/service/board/use/12971027)


 만일 당신이 하루키의 소설들을 좋아한다면, 그의 위스키 성지여행(원제 : 만약 우리들의 말이 위스키였다면)도 한 번쯤 읽어보길 바란다. 그는 아일라 위스키의 광신도로 직접 아일라 섬에 날아가, 증류소에서 운영하는 호텔에 머물며 먹고 마시고 사색하며 글을 적었다. 필자는 이 책을 읽고서 굴 껍데기에 위스키를 부어먹는다니 이 무슨 말 같잖은 허세냐고 핀잔주던 절친한 친우를, 그날 밤에 똑같이 먹여주고 약 한 달 뒤에 자기 집에 탈리스커(Talisker)를 한병 들였다며 자랑하게 만든 전력이 있다. 아일라 위스키는 탄 내, 소독약 냄새 같은 독특한 캐릭터를 가지고 있는데 이게 또 아주 중독성이 강해서 이 지방 술을 좋아하는 사람들은 이 지방 위스키만 찾는다. 아무튼, 원래는 하루키처럼 아일라 섬에 들어가서 증류소들에 머물며 굴과 위스키를 마음껏 즐기고 싶었다.

 

필자의 단골 바에서는 11월~2월 초 정도의 기간동안 석화를 무료 안주로 주시는데, 이 석화에 아일라 위스키를 먹은게 주사(酒史)의 시작이었다. 그리고 그대로 친우에게 전파했다.

 문제는 아일라가 섬인 데다가 오가는 교통편이 마땅치 않아서, 에딘버러에서 오가기로 마음먹으면 왕복에만 하루 이틀을 써야 한다는 것이었다. 그래서 결국 포기하고서 스페이사이드(Speyside)의 더프타운만을 다녀오고서 남는 기간은 포트 와인의 고장은 포르투갈의 포르투(Porto)를 가보기로 했다. 에딘버러 여행을 마치고 포르투로 가는 비행기를 타고서, 위스키에 대한 아쉬움을 내려놓고 오랜만에 와인을 마실 생각에 들뜨기 시작했다.

 필자가 와인을 좋아하게 된 건 학부를 졸업하고 대학원에 들어올 때 즈음이었던 것 같다. 술 자체도 부모님께 배우긴 했었지만 (처음 마신 게 집은 아니다^^), 와인도 아버지의 취미를 따라가게 되었던 것 같다. 물론 지방에서 자취를 하던 터라, 본가에서 아버지와 술을 마시는 일은 듬성듬성 있던 일이었다. 하지만, 한번 와인 맛을 알게 된 후로는 내 자취방 근처의 와인 바들을 방앗간 쫓는 참새마냥 돌아다니게 됐다.


자취방에도 열심히 다람쥐마냥 와인들을 사다 모았지만, 다람쥐마냥 '까'먹었다.


 와인과 위스키를 좋아하게 된 가장 큰 이유는 그 '향' 때문이었다. 소주나 맥주의 냄새를 싫어하는 것은 아니지만, 똑같이 포도만 가지고 만든 와인들에서 서로 다른 과일의 향이나 더 나아가서는 가죽이나 후추 냄새가 나기도 하는 것이 신기해서 빠져들게 됐다. 심지어는 마시는 동안 점점 그 향이 짙어지거나, 다른 향으로 변하기도 하는 것이 그저 '신기해서' 이것저것 찾아보다가... 정신을 차려보니 내가 먹어치운 포도밭의 넓이가 내 고향땅보다도 넓은 정도가 된 것뿐이다.


 나는 아직까지도 특별히 어떤 와인이 좋냐, 혹은 와인이 더 좋냐 위스키가 더 좋냐 같은 질문에 잘 대답을 못한다. 다만, 그날의 기분에 따라 혹은 먹은 밥에 따라 마시고 싶은 것이 다를 뿐. 심지어 포트와인은 평소에 잘 마시지도 않을뿐더러, 너무 달다구리 한 술을 안 좋아하는 편이라 평소에 즐겨 찾지는 않는 주종이었다. 하지만, 뭐든 본고장에 가보면 더 잘 즐길 수 있지 않을까 하는 마음에 가보게 됐고, 그 결과는 역시나 YES. 포트 와인이라는 주종에 대한 새로운 매력과, 포르투갈이라는 와인 산지에 대해 새로운 시각을 갖게 되는 기회가 됐다. 이런 일이 있을 때마다, 술이 마시고 싶은 날 나의 선택지가 하나씩 늘어나는 기분이 든다. 마치 안 보던 장르의 드라마를 봤는데, 생각보다 재밌어서 비슷한 장르의 컨텐츠를 찾게 되는 기분이랄까? 아무튼 이 여행에서 원래 기대했던 위스키와 와인 산지 이외에, 런던에서 했던 바 투어만큼이나 포트 와인 양조장 투어는 내게 또 다른 술의 종류에 대해 견문을 넓힐 기회였다.

대기업 다니는 친우가 사준다던 날, 주종으로 세계일주를 했다. 다음 날 숙취도 세계일주한만큼^^


    

이전 10화 박물관이 취해 있다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