분주함이라는 흰 거짓말

창의적인 일. 성공에 우선은 소망을 두는 자들에게.

세상은 불확실합니다.


그래서 일단은 성공하고 보기 위해서 수많은 영혼들이


한 곳을 향해서 열심히 헤엄칩니다.


모두가 일을 합니다.

사람은 일단 달립니다. 두려움에. 용기에. 열정에.


왜냐?


불확실한 미래 속에 나를 지킬 수 있는 것은

새로운 것 밖에 없을 것 같기 때문입니다.


그러다 보니 창의적인 일 혹은 도전이 예전처럼 시도되기 어려울 때도 있습니다.


많은 사람들은 창의성과 관련된 일을 할 때, 자신에게 확신이 없거나, 실패를 두려워하며, 어려움을 극복하지 못하는 경우가 많습니다. 이는 창의성의 발현을 억누르는 요인 중 하나입니다. 한국 경찰 공무를 그만두게 된 한 남성은 이렇게 고백하였습니다. '한국에는 완벽주의라는 것 때문에, 실패하는 것이 격려되지 않는 것이 스트레스입니다. 성장을 위해서는 실수가 필수인데 말이죠.' 그와 달리 또 다른 회사, 토스라는 회사에서는 실패를 격려하는 문화가 바탕입니다. 성공하는 대기업에서는 마땅한 실패를 하는 것에 대해서 격려를 한다는 것을 알 수 있지요. 바보 같은 실수를 하는 것, 덤벙대다가 겸손을 잃고 실수하는 것은 용납하지 않지만, 마땅히 올바른 일을 위해서 실패를 하고 시도하는 것에 대해서는 격려되는 문화라고 말합니다.


사람에게는 근본적인 호기심이라는 것이 존재합니다. 그러한 호기심이 아니라면, 아기는 걸음마를 떼지 않을 것이며, 뛰는 법을 학교에서 가르치기 전까지 모를지도 모릅니다. 그래서 나는 청년들이 조금은 용기를 내어 성실하게 바보 같은 짓을 해보는 것이 필요하지 않을까 싶습니다. 사실 이것은 엄청난 사실인데 태도 또한 중요하다고 말하고 싶습니다. 마음의 진정성이 사람들의 마음을 울리게 되는 일이 있습니다. 하지만 그 창업가나 어떤 사람이 되었던지 간에 모두 있는 그 자리에서 시도하는 것을 두려워하지 않았습니다.


거의 모든 기업이나 대단한 일들, 작은 일, 작은 영상에서 시작되었다는 것에 우리는 볼 필요가 있습니다.

바쁘다고 미루는 것이 아니라 삶의 잠깐의 여유 동안 내가 한 것이 어쩌면 큰 것일 수 있다는 것입니다.



-태도가 중요한 이유: 열정의 방향성과 Creator의 삶-


지난 날들 저는 돌아보니 잘한 점은 글을 쓰는 일을 주저하지 않았습니다. 또 도전하는 여러 가지 일들을 하는 것을 주저하지 않고 시작하였습니다. 지금 자랑은 아니지만 사실하고 있는 이런 Creator일들이 적지 않게 많게 하고 있다고 하고 싶습니다. (물론 집중과 우선순위에 맞게 일을 하는 것이 맞습니다) 이렇게 하는 이유는 인간은 자신의 열정을 잘 분배하여 적절하게 토해내는 것이 중요하기 때문입니다. 그렇게 세상에 만들게 되니 결과물로 세상과 서로 상호작용을 하는 의사소통 방식을 배워나간다고 생각합니다. 이것이 적절하지 않은 곳에 토하게 된다면(듣고 싶지 않은 사람의 귀에다 대고 열정적으로 토하기) 그러면 민폐이지만, 내가 이것에 대한 사명감을 가지고 또 대중을 이해하면 사랑하는 마음을 품는다면 그것은 나만의 콘텐츠가 될 수 있을 것입니다.


나는 지금까지 유튜브 채널만 거의 3개는 만든 경험이 있습니다. 브이로그에서 게임, 게임에서 먹방, 먹방에서 또 브이로그. 언어와 대상도 계속해서 바뀌었습니다. 하지만 지금 와서 내가 하는 일들을 생각해 본다면 사실 이전에 하는 것과 다를 것이 없다는 생각을 해보게 되었습니다. 중심은 늘 같았습니다. 하나도 알지 못한 부분도 많았음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같은 중심을 가지고 도전을 늘 해오면서 장차 배워오지 않았나 싶습니다. 쌓아온 실력이 없이 열정으로 하려다 보니 사실 무시를 당한 것도 한두 번은 아니었습니다. 그럴 때 민감하게 거대한 터닝포인트가 되어, 저의 삶의 자세를 돌이키는 기회가 되기도 하였습니다. 지금은 정말 겸손히 배우고 싶다는 생각을 하고 싶습니다. 책을 통해 내가 배우지 못한 경지에 있는 사람의 삶이 궁금하고, 다른 사람의 연대기를 무엇이 있을까 관찰하고 싶은 열의도 듭니다.


수많은 시도는 나에게 실패를 안겨준다.


"만 번의 세찬 무시의 파도가


나를 끝내 부수고 단단한 원석이 되게 만들었다."


저를 향한 무심함과 무시를 당한 것도 많았습니다. 늘 가는 곳마다 저는 어떤 부분에서 문제아였습니다. 잘 어울리지 못했던 것 같습니다. 말이 많았습니다.


내가 알지 못하는 부분이 무엇이 있을까? 나는 분명히 좋은 내용을 말하는데?


시행착오와 무시받는 여정을 통해 배우게 된 것은 사람을 배려하는 방법을 배우게 되었습니다.


이전에는 나의 가치관을 친구에게 말했다면, 이제는 인터넷에 듣고 싶은 사람들이 선택하여 들을 수 있도록 제시합니다. 이전에는 나의 일상이 소재였다면, 이제는 조금 더 나의 가치관에 집중할 수 있도록 개인적 정보를 제한한 것이며, 이전에는 기타를 치면서 음악을 했다면, 이제는 이 음악을 나의 하나의 브랜드로 만들어 사람들이 주기적으로 소비할 수 있도록 만드는 것과 같습니다.


이처럼 창의적 시도와 열정은 중요합니다. 시도하지 않으면 내가 무엇으로 이루어져 있는지 조차 보기 어렵기 때문입니다. 그렇게도 중요하지만, 저는 제 글의 특성처럼 단순한 자기 계발을 넘어서서 사람들의 마음과 트라우마를 치유하는 것이 올바른 방향에 대해서 말하고 싶습니다. 그렇기에

다음으로 질문해야 할 것은 바로 그 시도와 열정의 방향성이라고 말씀드리고 싶습니다.


- 미혹하는 '아름다움', 방향성을 잃을 때의 위험성-


왜냐하면 때로는 사람들에게 열정, 혹은 자신이 다루고 있는 도구가 주(주인)가 될 때가 존재하기 때문입니다.


물론 열정적으로 열심히 살아가는 것 자체가 좋고, 몰입의 중요성에 대해서 많은 자기 개발서는 이야기를 합니다.

음악과 시도에는 힘이 있습니다. 그 힘의 영향이 좋은지 나쁜지는 둘째 치고, 일단은 영향이라는 것이 있습니다. 세상에 젊음에는 아름다움이 있으면, 어리고 생기 있는 것, 곡선에는 힘이 있습니다. 글에는 힘이 있고, 듣게 되는 것과 같습니다. 그것 자체가 아름다워 보이고 좋아 보입니다.


음악계, 힘든 여정인데도 불구하고 여전히 많은 사람들이 도전하는 이유는 그러한 이유 때문이겠지요.

이 땅에서 위대한 업적을 통해 위인이 된다면, 나의 과오가 덮어질 것이라고 믿습니까? 저는 방향성에 대해서 나는 결론적으로 질문하고 싶습니다.


누군가는 자신의 목숨과 영혼을 바쳐서라도 자신의 이 분야에 최고가 되고자 하는 것에 모든 것을 바치고자 할 수 있을 것입니다. 하지만 실제로 최고는 자신의 삶에 정말 중요한 것을 위해 자신의 우선순위를 잘 관리하는 사람이지, 자신을 갈아 넣는 사람은 아니라고 생각합니다. 자신이 기업은 성공하였지만 자신의 가정과 비롯하여 불행하게 살아간 사람에 대해서 조금이라도 관심 책을 읽어본다면 알 수 있을 것입니다.

불타오르는 열정. 이 열정에 심취하여 스스로 도달했다고 믿기를 원한다.


한 번은 조치원 세종을 활보하면서 무언가를 사기 위해 자전거를 타고 가고 있던 와중이었다. 나는 brain rot와 같은 죽음을 상징하는 음악을 분석해보고 싶어서 그에 맞는 검색어를 검색하였습니다. 여러 음악을 소리로만 듣는 중에 하나의 특이한 한국 밴드를 찾았습니다. 오케스트라 형식의 퓨전 밴드였습니다. 영상의 질로 보면 2008년 정도로 예측이 되었습니다.

흰색 옷을 입은 여성으로만 이루어져 있는 이 밴드의 아름다운 모습에 순간 반했습니다. 물론 음악이 상당히 아름다웠습니다. 음악을 좋아하는 사람들 또한 댓글을 보니 존재했습니다. 대부분 해외의 사람들이었습니다.


아니 모습도 모습인데, 이렇게 오케스트라가 같이 한마음이 되어서 무언가를 하는 게 나는 멋있었고, 음악적으로도 훌륭한 정서를 만든다는 생각을 하였습니다. 그래서 자전거를 타면서도 들으면서 다녔는데, 왠지 모르게 그 음악을 들은 제 자신의 내면세계에 요동하는 모습과 형상이 느껴졌습니다. 그리고 나중에 알고 보니 이들은 북한의 밴드, 즉 인민사상을 강조하기 위한 음악, 김정은 찬송곡이 일부였다는 것을 알게 됩니다.


저는 우선 놀랐습니다. 그 영상에 등장한 현악기와 악기를 하는 분들은 정말 숙련이 된 음악가들이었습니다. 이들은 태어나서 아주 어렸을 때부터 이 밴드가 되기 위해서 막대한 자산을 투자했겠지라는 추론을 해보기도 했습니다. 알고 다시 들어도 요소부터 시작해서 하나하나의 요소들은 아름다웠습니다. 이러한 아름다움을 사용해도 되는 거야?라는 생각이 들 정도였습니다. 만일 히틀러 영화에 이러한 음악을 사용한다고 하면 아름다워 보였을 것이 분명합니다. 말이 안 될 수준이었습니다.


음악에는 힘이 있습니다. 하지만 그 힘이 늘 올바른 방향으로 사용될 법이란 없습니다.


그림을 잘 그리게 된 나는 선을 내가 원하는 대로 그릴 수 있게 되었습니다. 그리고 어느 순간, 내가 원하는 모습의 몸의 형태를 그릴 수 있다는 것을 알게 되었습니다.


아름다움의 형체에 반해버린 소년은 물가에 있는 자신의 모습을 보고, 살아있는 자신의 형상과 몸의 근육 하나하나를 새기기 시작합니다. 완벽하게 지었다는 생각에 만족하고 있었을 때 그때 다시 물을 보게 되자, 자신의 모습이 흠이 있다는 것을 알게 되었습니다. 늙은 것이죠. 그때 이후로는 자신의 모든 정욕 등을 조각을 통해 표출을 하기 시작합니다.


내가 그린 그림과 소리는 너무나도 아름다워 보였습니다. 아름다워 보이는 것은 이와 같이 그릇되다고 생각이 듭니다. 아름다움은 어쩌면 도구입니다. 주체이자 목적이 아닙니다. 완전해 보이는 것은 이와 같이 주객전도가 될 때가 있습니다. 잘못된 방향으로 사람을 이끌기도 합니다. 아름다워 보이는 것은 북한도 할 수 있는 일입니다. 모든 음악은 뇌를 80% 이상 확장을 시킵니다. 도파민이 흘러나오기 시작하고, 받아들이기 시작합니다. 과연 내가 만든 음악이 누군가를 숭배하는 음악이 된다면, 그것은 여전히 아름다운 것이라고 불릴 수 있을까요?


여전히 늙어질 것을 경배하는 것이 옳은 일이라고 자부하십니까?


자칫 잘못하면 속고 살 수 있습니다. 내가 바쁘다는 이유하나만으로.


사람은 일단 뛴다. 어디로 향하는지 알지 못한채.

가끔 미국인 친구와 대화를 하다 보면 그런 말을 합니다.


Art is so beautiful.


자신의 자아와 감정에 대해 표현하고, 자신이 만끽할 수 있는 무언가를 창조할 수 있는 일은 멋진 일이고 아름다운 일이라고 표현을 합니다. 저는 하지만 북한 노래를 듣고 보니 아름다움 자체에 대한 의문이 들기 시작했습니다.


글 생각, 고찰이 많은 사람은 아름다워 보이고 호기심도 드는 게 사실입니다. 그게 인간의 일종의 매력입니다. 어쩌면 그런 젊음과 열정의 아름다움이 없었다면, 결혼을 하는 사람들도 적었을 것입니다. 끌리지 않기 때문이죠. 하지만 나는 그 매력을 가지고 무언가를 숭배하게 만드는 것이 인간임을 이야기하고 싶습니다. 자신의 모습 혹은 바람을 투영합니다. 내 안에 내가 모시고 있는 신을 전파하기 위해서 아름다움은 질서와 방향을 가지게 됩니다.


그러한 인간의 순수한 마음, 열정을 볼 때 참 인간답다며 응원하고 싶어 집니다.


하지만 과연 그러한 순수한 열의는 아름다운 것일까요?


그리고 그 숭배심으로 인해 누군가는 야심찬 세계 정복을 꿈꾸며 세계 2차 대전을 벌였습니다. 히틀러이다. 참 그 당시에 독일은 그들이 하고 있는 일보다 아름다운 일은 없다고 생각할 것이다. 우리 국가가 민족을 구원한다니! 하지만 최후는 달랐다. 그들은 스스로의 목숨을 끊고, 그들의 자녀마저 자신의 손으로 죽이고 국가의 원수가 되었다.


실제로 나치 독일의 선전 장관이었던 요제프 괴벨스(Joseph Goebbels)와 그의 아내 마그다 괴벨스(Magda Goebbels) 가족의 비극적인 최후를 맞이합니다.


요제프 괴벨스는 아돌프 히틀러가 자살한 다음 날인 1945년 5월 1일, 베를린의 퓌러엄폐호(Führerbunker)에서 아내와 함께 자살했습니다.


자살 직전, 마그다 괴벨스는 잠든 6명의 아이들(만 4세에서 12세)에게 각각 청산가리 캡슐을 먹여 살해했습니다. 이 부부는 히틀러의 유언에 따라 후계자가 되어 잠시 독일 총리직을 맡았으나, 소련군에 항복하느니 가족 모두의 죽음을 택하는 광신적인 충성을 보였습니다. 괴벨스 부부는 아이들이 '나치 없이 살 수 없다'라고 믿었으며, 이후 자신들도 청산가리를 복용하거나 총으로 자살하여 최후를 맞았습니다. 이는 영화 다운폴(Der Untergang) 등에서 연출되었으며, 항복 이후 가족이 겪을 운명에 대한 절망과 극단적인 나치 이데올로기의 결과로 해석됩니다.


모르겠다. 어쩌면 그들 스스로는 가장 아름다운 헌신이라고 생각될지도.

어쩌면 벙커 안에 그들은 진정한 숙명자로서 생각했을지도.


아름다움, 부, 명예 들은 원래 인간의 눈을 멀게 한다. 알고 싶지 않은 진실일 수도 있으나, 이게 사실이다.


다만 그 신이 진정한 신이면 나는 생명으로, 하지만 누군가의 사기라면, 히틀러의 지인들이 휴전을 하고 자살을 한 것과 같이, 그들은 자신의 생명을 선택하지도 못한 채 사망에 이르게 될 것이다. 속고 있는 것을 인지하지도 못하고 말이다. 항복을 하게 되면 자신의 가족은 망해버릴 것이기 때문에 실제로 그런 선택을 내립니다. 무서운, 아니 절망적인 결말입니다.

'한번만 해보자... 한번만이야'


아름다워 보이는 음악으로 함께 노래를 부르는 날들, 술을 마시며 호화로운 날들을 그들은 그들 스스로 연출을 하였습니다. 하지만 포가 떨어지며 그들의 집 마저 무너지게 될 때 그들은 두려움 속에서 소리를 지릅니다.


무릎을 꿇고 쓰러진 여인부터, 밖은 폭격기가 늘 날아다니니 말입니다.


어쩌면 나의 일상도 그런 것이 아닐까? 내가 아름다운 일을 위해서 헌신하기 위해서 달려가고 있지만, 그것의 실상이 무엇인지, 그것의 이면은 무엇인지에 대해서 한 번도 질문하지 않는다면 말이다.


-무너지는 아름다움: 목적을 잃은 솔직함과 헌신-


아름다움. 적합한 아름다움의 목적은 어디에 있는지 꼭 질문을 해봐야 된다는 말입니다. 국가에 대한 맹신을 하는 이보다 때로는 질문하는 자들 또한 존재해야만 합니다. 재밌음의 목적을 설명하기보다는 그냥 그것 자체만으로 좋은 것이다, 왜냐하면 느낌이 좋기 때문이다, 로 합리화를 시킬 때가 많습니다. 특히 디자인이 그렇습니다. 우리는 이것으로 인해 먹고살 수 있다. 하지만 문제는 그것을 소비하는 사람들은 그 안에서 주어진 메시지를 자신의 일부로 받아들인다는 것입니다.


'젊을 때는 다 놀아보는 게 최고야'

'아름답게 스스로를 부각해 볼 줄 알아야지'

'나는 당당해. 그러니 나는 자유해'

'아무도 나를 건들 수 없어'

'나는 너를 사랑하지 않아. 고로 나는 완벽해'



개인의 영역에서는 때로는 이기심을 미화시킬 때 균형이 사라진다고 말하고 싶습니다.


이전의 글에서도 말한 것과 같이, 현재 시대의 사람들은 자신을 표현하는 것 자체에 대한 숭고심에 대해서 생각하는 사람들이 많습니다. 나는 내가 말하고 싶은데로 말하고, 내 자신을 위해서 살아간다고 해도, 아무도 나를 건드릴 수 없으니 이 자유를 나는 만끽할래! 나는 내가 번 돈을 나를 위해서만 쓸 수 있고, 결혼도 굳이 하지 않고 동거만 할래. 등과 같은 자신의 방임에 대해 당당하고 그게 진정한 아름다움이며, 책임 없는 소비를 천국이라고 묘사하는 세계 또한 있습니다.




개인의 영역에서도 방향성을 잃은 아름다움은 무너집니다. 솔직함을 고백하는 것은 처음에는 멋있게 느껴집니다. 그래서 그런 남자에게 반하기가 쉽습니다. 매일 밤마다 집 앞에 꽃을 배달해주고, 한 번 만나면 4-5시간이 셀 수도 없이 빠르게 지나가는 것 등 말입니다.


순수하게 보이고, 사람들은 순수한 것에 아름다움을 느낍니다. 한 두 부부가 있었습니다. 젊은 부부가 있었습니다. 순종적 아내는 사슴과 같은 모습을 가지고 있는 소유자였습니다. 다만 문제가 있었으니, 무엇을 원하고 필요로 하는지 표현할 줄을 몰랐습니다. 순종적인 자신의 모습을 미워하기 시작했습니다. 조금씩 조금씩 남편에게 짜증을 내기 시작합니다. 그리고 시간이 지나자, 녹아내린 거대한 달팽이 같은 여자가 있습니다. 같은 그녀였습니다. 그녀는 솔직하게 자신이 사랑을 원한다고 일침했습니다. 솔직함이었습니다. 그리고 그날 이후 남편이 더 열심히 적극적으로 대쉬를 해줬으면 좋겠다고 솔직한 '고백'을 늘상 하였습니다. 하루가 이틀이 되고, 이틀이 나흘이 되고 시간이 지나갑니다. 이제는 고백은 없습니다. 불평만 있을 뿐입니다. 그 이후로 그녀는 다시 섹스 다시 섹스를 갈망하였습니다. 원래는 일을 하고 움직였던 몸이 가면 갈수록 불어나고 거대해졌고, 그녀는 담배와 약물을 피기 시작하였습니다. 그의 입술에서는 불평이 흘러나오기 시작합니다. 그리고 마침내 그녀는.


원래 솔직한 것을 아름다워 보입니다. 못생겨질 때까지.


원래 주는 것과 헌신적인 것은 아름다워 보입니다, 그 체력이 바닥날 때까지.


원래 땀을 흘리며 열심히 하는 것은 아름다워 보입니다. 실제로 뇌는 그것을 흥분 상태로 착각해 상대를 더 매력적이게 봅니다. 화장이 지워지기 전까지는.


사실 나를 위한 사람이 못생겼습니다. 남을 위한다는 것, 그리고 헌신과 희생이 갖추어서 자신을 바로잡을 수 있는 실존적 이유가 없기 때문입니다.


그렇게 생겨나게 된 자신을 위한 ,


거대한 건물과 협회는 멋있습니다. 유행이 지나기까지.


젊은 가수의 춤추는 것은 아름답다 못해 찬란합니다. 늙기 전까지.


나는 과연 무엇을 쌓고 있습니까? 기울어지는 모래성을 쌓으면서 그 트로피가 영원할 것이라고 착각하고 있는 것은 아니었는지요.


참된 가치관, 책임 있는 삶, 그리고 '은혜'


우리가 쌓는 아름다움과 열정이 영원하려면, 그 목적은 인간의 유한한 욕구 너머에 있어야 합니다. 즉, 아름다움이 사용된다면, 그 목적은 분명해야 합니다. 매력과 집중이 사용된다면, 그것에 대한 목적은 divine하고 구별된 자리에서 사용해야 된다는 것입니다.


기술력이 좋다고 해서 자신을 AI를 통해 세계의 대통령과 같은 자로 만들고 사람들에게 홍보를 한다면 보는 사람들의 입장에서는 난감할 것입니다. 자신에게 주어진 기술과 아름다움을 자랑하기 시작할 때 이와 같이 수단이 목적이 되어 기괴해지게 됩니다.


연예인들이 TV 유명한 게스트로 나오게 될 때, 연예인 주변의 가족들에게 받게 될 ... 일종의 칭송을 기대하며 그 자리에 앉아있는 모습이 카메라 건너편에 있는 시청자에게도 보인다면 ..


심지어 자신이 어떤 선을 그리고자 하는 것에서도 인간은 음욕 등과 같이 수단이 목적이 되기도 합니다. 자신의 욕구가 선하지 않으니 무너지기 일색입니다. 예수는 인간의 마음에 대해 이렇게 표현을 합니다.


'악한 것은 인간의 마음속에서 나오는 것이지, 음식이나 다른 환경이 인간을 악하게 만드는 것이 아니다.'


맞습니다. 인간의 마음과 본연 가운데 악함은 존재합니다. 자신을 선하다고 여기는 존재보다도 자신의 검은 부분들을 열심히 가려야 하는 사람들은 없습니다.


질서를 만들기 위해 때로는 또 다른 신을 만들기도 합니다. 북한의 김정은은 종교와 같이 이들은 김정은이라는 신을 섬깁니다. 그곳에서 혹은 그 음악이 아름답고 위대하게 들릴지는 모르겠으나, 그것의 끝은 결국 굶주림과 인간의 탐욕을 채우는 일이 만연합니다. 마셔도 마셔도 끝이 없는 지혜, 먹어도 먹어도 배고픈 사람을 위해서 예수는 이렇게 말합니다. '빵과 물로는 나를 채울 수 없으나, 우리가 참으로 하나님을 예배하며, 굶주림이 채워질 때가 온다고 말하십니다.' 그분이 아니고서야 거룩은 없으며, 심지어 작은 선을 그리는 작은 자세 혹은 영화를 보는 자세라도 완전한 인간, 순결한 인간은 없습니다.


인간은 물론 자세에 대해 특정 직업이 각이 잡혀 있을지도 모르겠으나, 하지만 인간 중 그 누구도 거룩하고, 의롭고 완전한 이는 없으며, 누구도 특별한 자는 없고, 누구도 완전한 자는 없다는 것과 같다는 것입니다. 결국 나이가 들고 난 후에는 그냥 이 자리에 매주 매주 그리고 매일매일을 정장을 입고 버티는 것이 아닌가.


나이가 드는 사람이 되었든지 용기가 나고, 함께... 사람은 그러합니다. 나이가 들었으나 그렇게 쌓인 것이 없는 사람은 겉 모습만이 늙게 되고 대화할 수 있는 능력을 결여하게 되는 것이 아닐까요? 그렇기에 적은 자와 작은 자와 함께 대화를 나눌 수 있는 것이 좋고 중요하지 않을까 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교수라는 사람 그리고 목소리라는 것의 무게감이라는 것이 느껴질 때가 들려오기도 합니다.


진정으로 쌓이게 되는 삶은 무엇인가? 그것은 self love의 삶이 아니라는 것입니다. 스스로를 사랑하라. 너의 권리를 주장하라. 아무도 너를 건들지 못하게 하라. 너가 하고 싶은데로 사랑을 누려라. self love가 조장하는 것은 늘 정답이 없으니, 끌리는 욕구가 답이라고 조장을 합니다. 또 서로 그 자신과 같은 사람들을 칭찬하게 만듭니다. 하지만 그러한 것들의 열매는 위에서 말했다 시피, 한때에 불과합니다. 더 젊은 세대가 와서 지금 당신이 행동하듯이, 노인네들을 끌어내라고 똑같이 행동할 것입니다. 그때 후회할지도 모릅니다.


교회와 종교가 재미없고 답답한 이유는 그러합니다. 한 세대만 지나면 없어지게 될 교회 혹은 사람들이 자신의 지금 권위를 자랑스럽게 여기고, 트로피로 여기고, 아름다운 음악으로 스스로를 높일 때 거부감이 생겨납니다. 물론 잠깐은 좋을 수 있습니다. 하지만 시간이 지나고 나면, 그러한 사람들보다도 무책임한 사람, 무책임한 삶을 살아가는 이들은 없다는 것을 알게 됩니다.


제가 브런치에 작가가 되기로 결심을 하고 통과가 되게 된 계기도 그러했습니다. 저는 여러 교회를 옮겨 다니면서 다양한 리더십의 스타일을 보게 되었습니다.


하지만 일관된 주제는 이러하니, 바로 자신의 공동체의 완벽함을 추앙하는 자들보다도, 닫힌 생각으로 남을 자신의 틀에 맞추는 사람은 없었습니다. 은혜(내가 죄인인 용서받음)이 없으니, 그곳에 있으면 답답해지는 것 밖에 없었습니다. 마치 감옥에 갇힌 것과 같았습니다. 그래서 저는 그곳에서 탈출했습니다. 그리고 제가 향한 방향은 바로, 더 이상 무책임하게 나의 젊음과 실력을 자랑하는 자가 아니라, 겸손히 나를 가리고 전해야 할 바를 낮은 자세로 전하기로 결심을 한 거이었습니다.


교회에서 만난 굳은 마음의 자들, 스스로를 높이는 자들과의 만남은, 제 영혼의 거울이 되어주었습니다. 나도 저들과 다를 것이 없는 모습을 많이 발견하게 되었습니다.


저는 그래서 깨닫게 되며 삶의 방향을 바꾸게 되는 계기가 되었습니다. 자랑하는 자가 아닌, 나의 삶에서 제시하는 삶을 묵묵히 살아가는, 작은 기쁨의 소유자가 되기를 원했습니다.


열매는 어리석게도 그러합니다. 목소리에 힘이 펄펄 넘치는 자신의 힘으로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는 나이 든 목사님들이 재미없는 이유는 그렇습니다. 그들의 모습에는 예수가 없습니다. 발을 씻기는 예수. 십자가를 지는 양 예수를 발견할 수가 없습니다.


그저 자신의 대단함으로 하나님의 위대함을 자랑하고자, 자신에게 주어진 복을 떵떵대며 자랑할 뿐입니다. 그 썩은 열매를 먹게 되는 자마다 눈이 멀게 되어, 자신의 삶을 비교와 조급의 삶으로 떨어지게 되겠죠. 그것은 시들어 버리는 삶입니다.


자신의 육을 육체의 소욕에 내버려두는 비참한 삶이 아니라, 진정한 우아함은 바로 은혜라는 것 입니다.


그리고 은혜 가운데서 살아가는 것을 의미하는 것이고, 그러한 사람들이 함께 모여 하나의 몸이 되어서야만, 각자가 예배를 드리는 예배자로서 몸과 발과 팔과 다리가 되는 것이 크리스천입니다.


내가 나로서 특별히 여기는 사람이 아닙니다. 수익을 내더라도, 누구보다도 뒤에서 돈이라는 것을 사기와 같이 꿰내어 상대방의 지갑을 단순한 일시적 욕구로 인해 열게 하는 그러한 값싼 목적 없는 돈이 아니라 말입니다.


한국에서 함께 살아가고 있고, 한국에서 자라나고 있는 과정을 겪고 있다면, 그러한 공짜 돈과 같은 것은 사람을 속이고, 스스로를 속이기가 매우 쉬운 일과 같은데, 그러한 것들에 내 삶을 자아의 신에게 제물로서 드리는 것이 아니라, 오직 하나님만을 섬기는 것이 중요한 부분입니다. 값어치 없는 사람이 되지 마십시오. 가장 존귀한 분을 만나게 되는 기회가 오시기를 바라겠습니다.


명사(名詞)로서의 정체성, 정결한 그릇


결론적으로, 창의성이든, 예술이든, 삶의 태이든, 방향성의 최종 목적지에 대한 질문은 결국 우리의 정체성을 묻게 됩니다.

우리 스스로 괜찮은 것이라고 말을 하고 스스로를 영광스럽게 사용하는 모습과 죄는 과연 어떠한 마음인지에 대해서 질문해 보아야만 합니다. 우리는 과연 세상의 소금과 같은 자인가. 세상을 썩게 해 본적은 없는가 스스로 질문을 해보아야 합니다.


원칙은 존재합니다. 세상에는 법칙이란 존재합니다.


속에서부터 존재하니, 남의 겉모습을 보고 판단할 수는 없습니다.


자신의 내면을 아름답게 가꾸시길 바라겠습니다.


* 이번에 다른 작가님들을 소개하고 또 함께 소통하며 만들어가기 위해서 치지직 라이브를 준비 중에 있습니다 ! 함께 도와줄 동료 혹은 좋은 이야기를 전해주실 분들은 구합니다!


금요일 연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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