심는 사람과 겉모습을 쌓는 사람

역겨운 기름 묻은 새가 나에게도 그 기름을 옮기려고 한다.

심는 사람 당신은 심는 사람입니까.


사람들과 함께 배울 수 있는 기회보다 내가 제대로 할 수 있는 기회는 없을 것이라는 생각이 드는 것 같다. 혹은 배우고 서로에게 맡기는 그 아름다움에 대해서 나는 통일 부스를 운영 중에 알게 되었던 것 같다. 한 사람이 전부 하는 것은 그만의 작품을 아니.

섬기는 사람 심는 사람은 없고 자신의 것을 말하는 사람만 가득하니 참으로 애통스러운 일이도다.


모두가 자신의 작품을 쌓는 것에 대해서는 열의를 가지고 프로필 사진에 자신의 멋진 모습을 올린다. 남을 위한 마음은 없고 나를 위한 것만 있을 뿐이다.


진정한 아름다움은 자신을 높이는 방식에 대한 것이 아니다. 자신의 아름다움에 대한 것이 아니다. 진정한 아름다움은 보이지 않는 곳에서 보이는 곳이 아니라 보이지 않는 곳 즉 하나님만 보시는 그곳에서 의를 행하는 사람이다. 만일 내가 알려야 할 역할이 있다면 그 역할을 하는 사람이지 그것에 대한 영광을 자신에게 돌리는 사람이 아니다. 수많은 사람들이 그것에 대한 우선순위를 잊어버린다.


II. 본론 1: 개인과 사회의 병폐 - 겉모습 추구와 죄의 속성


[관계의 단절과 개인의 책임]


그러니 남을 바라볼때도 의심의 눈초리이자 상처로 받게 된다. 자신의 마음이 망가졌으니, 남을 향해서도 도저히 선한 것을 기대할수 없다. 내가 겉모습만을 추구하기 남도 나를 향해 같을거라 예상한다. 나도 재미로만 통화를 했으니, 상대는 나를 위하지 않을 것이라는 생각에 위축된다.


오늘 내가 삶을 어떻게 살고 있는지가 나의 미래를 좌우하게 된다면 어떨 것인가. 수많은 사람은 일탈을 꿈꾼다. 자신의 일상을 감옥이라고 칭한다. 하지만 오늘을 천국으로 맞이하는 사람에게 있어서는 자신이 삶의 어떤 곳에 있던지 간에 천국으로 맞이하게 될 것이라고 굳게 믿고 의심치 않는다. 늘 내일을 위해서 경작하는 삶이 중요하다는 것이다.


[겉모습의 허무함]


영롱한 모습하고 날아다니는 여왕벌들. 모습에만 기웃댈 뿐이다. 그렇게 서로를 끄는 것에 의의를 느낀다. 서로를 자신에게 특별하게 끌게 되면 그것을 자신은 영향이라고 말한다. 그리고 그러한 것을 자랑한다. 내가 어디서 번호를 따이게 되었다. 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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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렇게 아름다운 사람들도 다 할머니가 된다. 앞과 같은 사람에게 대화할수 있는 소재가 무엇이 있겠는가. 그런 것을 바라는 자신의 모습도 한심하게 생각해야 한다. 그런 겉모습이나 쫓는 자신에게 무슨 좋은 일이 있겠는가? 과연 나이가 들면 그런 사람들을 어떻게 바라볼 것인가? 나는 주변에 나이들었는데 맨날 화장을 떡칠하시는 할머니의 모습을 보며 반하여 가까이할것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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누군가를 볼때 어떻게 늙어갈 것인지 혹은 무르 익어갈 것인지에 대한 생각이 잘 들지 않는다면 한번 되돌아보는 계기가 되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나는 어떤 사람인가. 그런 겉모습의 소재에 있는 것을 단순히 좋게 보이고 세련되어 보인다는 이유만으로 좋게 여긴다면, 10년전에 세련되었다고 여겨졌던 드라마등을 보아라. 촌스럽지 않은가? 그게 당신의 운명이다.


vivid_wave_High_angle_view_a_graceful_female_figure_in_an_ele_8bd39b49-ef1f-41da-88ea-ba802fcf0b17_3.png 아직까지도 아름다워보이는가? 10년만 지나면 다 고루한 것이다.


[죄의 속성과 결과]

변태 아저씨가 있었다. 손이 큰 아저씨는 사람을 만지는 것을 좋아했다. 그는 잘해줄고 위하고 안아주려고 온갖 노력을 하였다. 하지만 변태 아저씨는 어쩔 수 없어 이 멀어지게 되었다. 그가 하는 행위 하나하나에 어찌 악취가 나던지.


죄는 이와 같다. 죄라는 것은 좋아 보이고 그렇게 유혹을 하는 것이 좋은 것 같아 보인다. 하지만 그러한 대화를 아무리 많이 해봤자 남을 것은 어디 있는가. 그러한 섬김이 아무리 많이 있어봤자 대체 무엇이 남겠는가. 자신이 자신의 각박함으로 말미암아 그리스도의 향유와 향기를 잃어버린 그 그리스도인의 삶이 과연 그 자리에 있다면 대체 그것은 누구에게 덕이 될 것인가.


죄라는 것은 내 마음이 내 마음에 내가 품은 작은 우상이라는 것은 그래서 무서운 것이다. 그것은 관계가 단절되고 터지게 한다. 정욕적인 끌림은 불완전하다. 어제는 끌렸다가 이제는 건강해 보이지 않네 에이 하면서 무시한다. 죄에 끌려서 친해지게 된 사이는 그냥 정말 플라스틱 봉지 같은 사람들이다. 낮에는 잘생겨서 말을 걸다가, 밤에는 잘 안 보이니까 무시를 하는 병신이다. 내 옆에 결코 남지 않는다. '얼굴도 기억 안나고 몸 밖에 기억에 남지 않아'


죄라는 것은 역겹다. 죄라는 것을 통해서 자신에게 사람을 끄는 사람보다 역겨운 짓은 없다. 술을 위해 취하게 만들고 자신이 그것을 즐기게 만드는 것 같은 사람은 없다. 알코올과 마약으로 누군가를 취하게 만들어 누가 뭐인지 알지 못하게 만드는 것보다 병신은 없다. 교육도 그러하다. 기초도 기본도 없는 상태에서 상대방을 취하게 하는 것은 병신이다.


세상의 것을 사랑하는 자들, 그들과의 대화는 세상의 것들에 속하게 되었다. 그들에게는 그럴 것이다. 마치 중학생때 사귀는 남자친구와 어떤 한마디도 나누지 못한 것과 같은 것이다. 대화하거나 섞일 필요가 없는 것과 같은 것이다. 그냥 그런 것을 즐기는 욕구와는 교감할 필요가 없다는 것이다. 그때 당시의 나의 행동은 그저 내 기분을 좋게만 해준, 속은 비어있는 강냉이였다. 나는 누구인가? 말을 섞을 필요와 가치조차 없는 잠시만의 갈증을 해소하느라 급급한 이기주의의 삶인가?


III. 본론 2: 교회의 타락과 사명 상실

[사명의 상실과 게으름]

크리스천도 마찬가지이다.

세상의 정서와 온전히 세상의 정서 등에 대해서 바라보고 자신은 그것을 일(사역)이라고 생각을 한다. 자신이 정식으로 그리고 건실하게 준비를 하고 올바른 의를 가진 사람들을 만나고 준비할 것에 대해서 생각하지 않고 빚진 자로서 다른 사람에게 빛을 지며 진정으로 자신이 준비해야 할 것에 대해서 생각하지 못하고 자신의 지식을 활용해서 탑을 쌓는 응용에만 집중을 하고 있는 사람이 가득하다.


교회에서 그곳의 재정을 축복이라고 정의를 하며 더 맛있는 것을 먹는 데 재정을 쓰는 것에 대해서 강조를 한다. 내가 일하지 않고 누리고 배 따습고 등으로 말이다. 그리고 그러한 그룹에는 사명이라는 것이 존재하지 않았다. 조금 더 맛있는 것. 차라리 그럴 바에는 술을 마시기나 하지 왜 이리 멍청한 짓을 가하고자 하는 것인지에 대한 의문이 드는 듯하다.


죄 즉 형식적인 죄에 대해서는 그렇게까지 걱정을 하면서, 진정으로 형식적인 지식 아닌 섬김에 대해서는 잃어버린다. 형식적인 영화 보기, 감동 받기, 거대한 티비로 음악 듣기에 대해서는 너무나도 열광을 하면서. 하지만 그리고 남에 대해서 욕하는 것에 대해서는 열심을 다하면서, 진정으로 자신의 것을 심는 삶을 사는 것에 대해선 나는 아무런 생각을 하지 않는 것과 같다.


심은 것이 없이 많은 사람이 모이기를 바란다. 남들이 하는데로 똑같이 한다. 거룩한 창의성을 게으름과 나태함으로 바꿔치기를 한다.


[책임 없는 열정과 부메랑]

누군가를 향한 질서 없는 애정 표현은 잔뜩하며 사랑이라고 한다. 하지만 홀로 심는 삶을 통해 자신을 연단하는 사람이 없다. 그렇게 진심은 아니기 때문이다. 남을 위해 짐을 지는 삶은 없다. 책임도 없다. 능력도 없다. 열정만 있다. 그러면 상대의 마음을 살수 있다고 생각한다. 그러나 부메랑처럼 상대도 똑같이 생각한다. 너를 향한 책임도 없다, 능력도 없다. 잠시뿐인 열정만 있다. 그러면서 당신의 마음을 살수 있을거라고 믿는다.


[거짓 예언과 비극적 결말 (예시)]

한 남자와 광명한 천사가 말하는 것을 듣게 되었다. 그리고 그는 그 책을 산에서 가져 내려오게 되었다. 그는 .. 이것을 가지고 무엇을 해야 될까 자신의 집에서 생각을 하게 된다. 그 세계는 정부의 돈 등으로 인해서 그 마을은 사람들이 더 이상 일하지 않아도 되는 듯하게도 보이는 곳이었다. 사람들은 술을 마시고 자신의 일을 하는 것을 즐겨하고 좋아했으나 … 하지만 그 마을의 할로윈은 잔뜩 빛났으나 모두가 자신을 치장하기 위해서 노력하는 것에 불과하다가 불과하다고 말을 전하고 싶다.


남자의 머리가 깨질듯이 아프기 시작하였다. 그는 더 이상 혼자서 있을 수도 없었다. 그는 옆집에 가게 되었다. 쿵쿵쿵 누구세요 옆집 이웃은 그를 하찮은 듯이 내려보고 있었다. 계속해서 뒤를 돌아보았다. 안은 따스해 보이는 불빛이 있었다. 무슨 일인지 얼른 말하게 나는 아들과 시간을 보내야 하니까. 내가 .. 말해야 될게 있어요. 남자는 어쩔 수 없다는 듯이 또 특별한 것이 있다는 말에 내심 선물인가 기대하는 마음으로 그를 초대하게 되었다. 크리스마스 테이블에 앉아서 함께 밥을 먹게 되었다. 누구나 사실 자신이 기대하지 않은 일에는 전혀 좋지 않은 기대 혹은 기대가 오는 것이 분명했다.


그곳에서 모든 것들에 대한 것을 전부 알고 있었기 때문에 그런 것은 계산할 수 있을 정도의 지능을 가지고 있는 남자는 입을 떼서 말을 하기 시작했다. 당신의 아들 앞으로 축구선수가 될만한 재능이 있어요. 그는 남자의 입술이 읽힘과 동시에 무엇을 시키고 싶어 하는지 등에 대해서 읊기 시작하였다. 그리고 그 끝에서 경이로운 표정으로 보고 있었다.


남자는 .. 이 모든 것의 영광을 … 하나님께 돌리고 싶었다. 그는 손을 잡고 고개를 숙인다. 하나님 아버지. 감사합니다. 오늘 우리에게 미래를 알려주시고 이 할로윈을 꿰뚫게 하시니 감사합니다. 아멘. 이 기도의 끝마침과 함께 남자는 얼떨결에 배우는 것을 해주고 보내게 되었다. 자신의 과거 등에 대해서도 궁금하니 보내고 싶었다.


근데 그 다음 날이었다. 그 남자의 집 에 벼락이 내리게 된 것이었다. 사람들은 궁금 아니 걱정이 되어서 그의 집에 가게 되었고 그는 신명한 스스로의 인지도가 낮아지면 안되었다. 그래서 그 틈새에 자신의 명예가 추락하기를 원하지 않았기 때문에 옆집 마당에서 갑자기 예언적인 퍼포먼스와 쇼를 하기 시작한다. 사람들은 말한다. 이 남자 뭐라는 거야. 하지만 어젯밤 남자는 말을 했다. 조용히 하시고. 이 사람이 매우 용하게 우리의 미래와 앞날을 맞힐 수 있는 사람이오.


하지만 뒤에 있었던 진짜 크리스천은 그 모든 것을 지켜보고 있었다. 기도하고 있었다. 남자는 그 귀신에 들린 남자는 더 이상 아무것도 보이지 않았다. 흑암에 불과했다. 그래서 그 남자는 갑작스레 뛰어들게 된다. 다리 밑으로. 흑암을 마을에 잔뜩 싸지르고, 정작 본인은 늙음 속에 죽어버리고야 말았다. 마을은 여전히 그를 전설으로 기린다.


vivid_wave_Dutch_angle_dynamic_composition_a_silhouette_of_a__0a2269ae-a45c-4a38-8400-8f642eb7d1e2_3.png 나방은 불이 아름다워 스스로 타 죽는다.



[도피성 신앙에 대한 비판]

비전이 없어 차라리 그런 곳에 내 자신을 심고자 하는 사람들도 많이 존재한다. 신학교에 가서 기타를 치며 노는 사람들이 얼마나 많은지 모르겠다고 차성진 목사는 신학 강의 중 이야기를 하였다. 심는 것이 두려운 사람은. 세상적인 정서와 를 마음에 받아들였기에 하나님께서 생각을 하라고 하시는 대로 생각하지 못하는 사람들이 가득하고 우상 즉 섬기고 신명나게 쳐돌이하는 갓생을 사는 것. 그것을 좋아하는 자들이 많다는 것이 안타까운 현실이라고 말을 하고 싶다. 사람들은 열정과 자유라는 타이틀 안에 숨는다. 자신의 모든 시간을 쏟아다는 점에 스스로 생각한다. 나도 한때 그랬다. 내가 이 인물을 향해 최선을 다해 사랑했다며, 내가 이렇게까지 했다며 등등에 대해 말했다. 하지만 시간이 지나고나니 서로 오히려 아쉬운 사이이다.


[경계와 질서]

자신이 너무나도 연약해서. 즉 마음이 병든 자가 내 손 뒤에 손을 얹으며 자신과 같은 꼬라지로 만들라고 했다. 자신이도 놀고 있으니 너도 놀라는 것이다. 너도 힘을 풀라는 것이다. 너도 놀라는 것이다. 그래서 강압적인 스스로의 '하나님의 뜻'이라고 작정을 하며 어떻게든 상대방의 모든 시간을 공동체의 부품으로 개조하려고 전락을 한다.


나는 말했다. 새끼야 손 떼. 나도 선을 넘지 않는데 너가 선을 넘으면 어떻게 한다는 거야. 분명히 주의해야 한다. 니가 마음이 궁핍하다고 나도 너처럼 궁핍해지길 원하는거야 ?너도 날 그와 같이 취급하려고 그러니? 이 미친 자식아. 당장 손 떼. 섬뜩함과 제대로 된 골수를 찌르고 쪼개는 칼과 같은 생각을 가지는 것은 중요하다. 그 사람의 열매와 행위를 통해 그 사람이 누구인지를 알수 있을 것이다.


공동체에 있을 때 자신의 등을 내어주지 않는 것의 중요성에 대해서 분명히 이야기를 하고 싶다. 정신 차려 이 새끼야. 질서에 대해서 자신이 감당하지 못할 것을 남에게 한다는 것보다 더 정신이 없는 섬뜩한 것은 없는 것이다. 내가 할 수 있는 질서와 역할 범위를 벗어난 곳에서 서지 도말고 그곳에서 도망쳐라. 그것이 그리스도인의 길이다. 그리스도의 길과 그분의 짐을 걸어라. 죄의 노예, 돈의 노예가 되지 말아라. 내가 남에 대해서 한 판단으로 인해서 나는 지금 도와줄까.


IV. 결론: 본질적 회귀와 거룩한 창의성 (해결)


창조자와 십자가를 지는 삶은 어디에 있는가. 헌신의 삶은 없고, 자랑과 인증의 삶만 난무하다. 돈과 가치를 통해서 누군가를 살릴수도 있는 것인데, 과감히 그것을 날려버리는 것이 세상이 말하는 쾌감이자 행복이다. 숨겨진 심는 삶, 경작의 삶, 책임의 삶은 어디에 있는가.


나는 그러한 교회에 대해 고발하는 이유가 무엇인가. 왜냐하면 사실 이러한 부분에 대해 진정으로 고민을 해볼 수 있는 기회조차 없이 때문에 바쁨의 섬김 속에서 내가 이러한 것들을 주를 위해 했다. 자신의 일과 열정은 아무것도 증명하지 않는다. 아무리 열심히 살았는데 뭐 바람피면 그거를 뭐 좋다 아니다 할 것이 없다는 것이다.


기억하라. 나의 선택하는 것에는 나의 무게가 담긴다. 만일 내가 스스로 그러한 질문을 하고 싶지 않아, 도피하는 것 신학을 가는 것을 통해서 도피하는 것에 대해 생각을 해본다. 일하고 싶지 않아, 고민하고 도전할 것의 피로로 인해 시키는 것을 하기로 하는 것이다. 그냥 적당히 일하고 돈도 벌고 싶은데 목사가 되는거 어떨까? 이런 마인드셋을 가지고 일 혹은 섬기는 자리에 도전하는 사람이 있을까? 나는 어떤 마인드셋을 가지고 있는가? 질문해보게 된다.


그렇다면 교회 혹은 평범하게 일하는 이들에 대해서 나는 욕을 해야 하는가? 사실 본론은 단순한 겉의 모습에 대해서 왈가왈부할 부분이 아니라, 중심에 대한 것이라는 것을 알게 된 것 같다.


내가 글을 쓰고 쌓는 이유 중에 하나는 나는 거룩한 창의성이 이 시대에 필요한 시기이기에 이러한 인간관계와 죄에 대해서 연구를 한다. 지금 사회와 교회는 병들어있다. 가정은 서로가 멀어졌다, 손에 작은 블럭을 든채 각자의 방에 들어간다. 그리고 심지어 게으름과 나태함으로 인해 이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마음 아파하지 않는다. 그저 이렇게 생각한다. 시키는데로만 하고 그 이상 하지 않았으니 나는 잘한거야.


하지만 창의성은 Problem solving mechanism, 즉 문제 해결 능력이다. 세탁기가 발명된 것과 같이 없으면 만족하겠는가. 이 사회는 변화되어야 한다. 그리고 나는 How(method)에 대해서 연구를 하고 실현을 해나가는 것이 나의 사명이다.


이곳은 내가 내 자신을 위해서 사는 곳이 아니라 그리스도을 위해서 사는 것이기에 분명히 내가 끊어야 하는 것과 나의 사적인 시간이 쏟아지고 있는 것에 대해서 진정으로 준비를 해야 하는 시간이라고 분명히 말을 하고 싶다. 나는 무엇인가 나는 누구인가 나는 무엇을 말하고 싶은가. 나는 어디에 있는가. 나는 어디서 무엇을 하는가.


나는 변화하기 시작하였다. 나의 경력은 변화하기 시작하였다. 나는 학생에 불과했다.


상관 없다. 삶의 모든 순간은 지켜봐지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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