詐 가짜 세상, 진짜 가치 眞實






값과 책임, 시간의 선구자로서의 가치를 잃은 세게에서 공부하는 것의 이유란?




요즘과 같은 세계에서는 사실 배우고자 하는 모든 것을 인터넷 혹은 값을 주면 배울수 있는 형태의 세상에 있다. 기업가가 되고 싶거나 무엇을 위해서 준비를 하고자 했을때, 사실 대부분의 노동을 대신하게 된 것이 맞았다. 만약 중세시대로 돌아가본다면, 하나의 정보를 얻기 위해서 지나가는 나그네 혹은 행인의 이야기 하나하나를 들어서 겨우 겨우 무언가를 알게 되었을 것이다. 생계를 위해서 사실상 자신이 있는 자리에서 다른 곳으로 먼 여정을 떠난다는 것은 지금보다 어려웠을 것이다.




근데 요즘은 중세와 다르게 빨래조차도 우리가 할 필요가 없다. 심지어 밥도 할 필요가 없으며, 장도 보지 않아도 되는 지경에 이르게 되었다. 그 이유는 무엇인가? 기술의 발전이다. 와! 그러면 남은 시간에 뭐라도 좋은 것이라도 하고 있겠지 ! 라고 했지만, 월구독료와 함께 사람들의 만족을 위한 평균적 1000시간은 거뜬 넘어가는 시간을 사람들을 보내고 있다.


자신을 위해서 시간을 쓰고, 회사에서는 갈려나간다. 무료인 것과 분명 좋아진 세상에 된 것이 맞아야만 되는 것이 아닐까?




1 서론: 공짜는 없다, 모든 것의 대가 : 자본주의의 전제 내게 주어진 모든 것 중에 공짜인 것은 아무것도 없다. 내게 주어진 모든 것은 노동과 값이 주어진 것이며, 내가 누리고 있는 서비스, 물품, 햇반까지 모든 것은 누군가의 땀 흘린 노동의 대가가 내 식탁 위에 올려져 있는 것이다. 또 모든 하나님의 신실하게 일하신 손으로 말미암아 나는 모든 것을 누리고 있는 것이다. 그런즉 나도 일하는 것이 마땅하다.


나는 이전에 그렇게 생각을 하였다. 왜 교회에 거지들을 초청하고, 그들을 먹이지 않고 사회에 매정할까? 하지만 줄곧 알게 된 것은, 우리가 마땅히 자신의 값을 지불하는 것의 중요성에 대해 알게 되었다. 무료가 아니라, 자신의 한 몫을 살아내는 그 삶. 일하는 삶이 아름다운 삶이다. 왜냐하면 그게 바로 공동체이자 하나의 몸이 되는 것이기 때문이다.




1- 1 공짜를 바라는 것은 내 얼굴에 침을 뱉는 것과 같다.


우리는 사실 지금도 공짜로 얻고 있는 것들이 많다. 브런치에 써지고 있는 이 글부터 시작해서, 수많은 전자제품이 나를 위해 무료로 일한다. 하지만 내가 여기서 말하고자하는 공짜는 _ 내가 남의 노력과 성과에 대한 마땅한 값을 지불하기를 꺼려하는 자세와 태도를 의미하는 것이다. 남의 노력과 귀중함, 혹은 시간과 노력에 대한 귀중함을 알지 못한다면 그런 이들에게 돈을 내는 것이 꺼려지고 서비스를 운영하기 어려워진다.




하지만 그것은 부당한 방식으로 나의 돈 혹은 resource를 빼먹으면서, 어떻게든 부실한 방식으로 만들게 되는 사람들로 인하기도 한다. 하지만 그러한 사람들의 사업, 속이는 사업 신뢰성을 잃은 사업은 결국 망하게 된다. 나는 어쩔수 없이 나의 돈을 더 들여서라도 나의 컴퓨터 셋업을 스스로 하게 되었다. 왜냐하면 인터넷에 컴퓨터 상인들이 하는 사기를 계속해서 보았기 때문이다. 신뢰성이 떨어진다면, 다 구조적 문제로 인해 떨어져나가는 것은 시간 문제이다.


상대방의 수고와 물질을 훔치며, 그 소유에 대해 소중히 여기지 않고 탐하는 사람들에게는 돈이라는 것의 가치를 알지 못할 것이다. 돈의 원리에는 돈에는 명사와 상태, 즉 돈에는 속성이 따라다닌다고 말했다.


내가 만일 누군가에게 패딩을 빌려주었는데, 그것을 당연한 것으로 여긴다면, 그 사람은 상대방의 시간과 노고에 대한 귀중함을 전혀 알지 못하는 자이다. 상대방의 수고에 대한 존중을 하지 않는다면, 그들이 단련해야하는 시간을 알지 못한다면, 그렇게 말할 것이다. 공짜를 단단히 요구할 것이다. 하지만 그런 사람들은 자신이 단 한번도 어떤 일을 위해서 열심히 학습하고, 단련하지 못해본 사람이 그런 말을 하는 것이다. 겉으로 보기에 쉬워보이기에, 그냥 저정도 하는 것은 당연한, 어떠한 매일 같은 연단, 단련, 연습 없이 기본적이라고 생각한다.


연습을 통한 실력이 있으니, 긴장하지 않는 안목이 생긴다는 점을 알지 못한다. 기본을 단련하기에 그 사람으로부터 내가 할수 없는 서비스를 누리고, 나는 그 사람의 직종을 존중하고 감사해야 한다. 만일 그러한 노동과 노과를 당연한 것으로 여긴다면, 뭐 쉬운 것을 못배운 사람이 했다고 할 것이다. 여러 메뉴를 전부 다루는 카페부터 시작해서 사실 말도 안되는 만큼의 노과가 들어가는 것이다. 만일 재료비만 고려하며, 그곳에 늘 유니폼을 입고 깔끔한 모습으로 희생하는 모습을 보지 못한다면, 그만큼의 금액을 얻지 못하는 것과 같은 것이다.




세상에 살아가는 것은 원래 힘을 쓰며 도전이 되는 일이다.




근데 자꾸 편하게 무료를 얻을수 있다는 이상한 마인드셋을 게임이나 릴스에서 얻었다보니, 공짜를 밝히는 마음이 어렴풋이 생기는 것이고, 그것은 곧 자신의 노동 가치, 전문성 가치를 폄하하는 일과 같다. 왜냐하면 다른 사람들의 전문성을 내가 보지 않는만큼, 나 또한 내가 갖추어야 하는 전문성을 갖추어야 할 이유를 찾지 못할 것이기 때문이다.




남의 수고, 남의 소유에 대한 값을 알지 못하는 사람은 자신의 삶과 자신의 시간에 대한 가치도 동일하게 생각할 것이라 생각한다.




질문한다. 당신은 당신의 시간의 값과 가치를 아는가?




본론 1: 게으름과 우상의 거부 나의 건강 혹은 기회에 대해 누군가를 위해 나도, 혹은 하나님을 위해 마땅히 일하지 않고, 게으르게 살아가는 것은 용납될수 없는 일이다. 내가 누렸던 은혜와 받은 것을 당연한 마땅한 것으로 생각한단 말인가? 지금까지 교회학교 선생님, 또 담임 선생님으로부터 시작해서, 그들의 노동과 국가의 시스템, 교육은 당연한 것이었나? 우리가 이용하는 대중 교통은 당연한 것인가?내가 값을 지불했으니 이만큼은 해야 된다고 생각하는 입장에서는 그럴수 있다.


하지만 아직 취업을 하지 않은 입장에서는 그 어느것도 당연한 것은 더더욱 없는 것과 같다.




그런즉 나의 건강을 훼손하는 짓을 하는 것은 절대 용납할수 없으며, 나의 겉에 있는 몸을 욕망하는 이들에게 팔아, 돈을 버는 것은 절대 용납할수 없는 일이다. 나의 세포 하나하나가 만들어지게 된 것은


어찌하여 그들이 노동한 대가를 훔치겠는가. 어찌하여 짤막한 기쁨을 통해 그들의 삶을 무너뜨리는 불행에 빠지게 하겠는가. 어찌하여 이야기의 단순한 승리의 서사와 설렘의 감정을 뺏어, 그들의 일상이 따분하다 못해, 회색으로 바뀌도록 하겠는가.


나는 지난 날 게임 중독, 혹은 하루에 게임 3시간이라도 한 날은 하늘이 회색 같이 느껴졌던 것이 기억난다. 그 충격으로 인해서 나는 이제는 게임에서 주는 엄청난 이펙트와 효과들에 대해서 거절하기로 하였다. 실제 삶은 평범하고, 그 자체가 아름다운데, 그 아름다움을 그러한 값싼 가짜 왕관에 나의 흥분을 뺏기고 싶지 않았다.




어찌하여 미디어는 그들을 속이고, 그들(시청자) 스스로를 위한 왕관을 씌우며, 스스로의 머리에 박히는 전투 아레나 한 가운데 그들의 정욕을 위해 그들 스스로가 왕이 되도록 하겠는가. 이러한 어리석은 일, 그들을 생각하지 못하는 일에 대해서 나는 그만두어야 한다. 나는 잊혀지고, 일을 하는 것에 불과하다. 내 존엄성은 사람에게 구하지 않고, 오직 하나님께 구한다. 나는 인간을 행복을 유도하여 그들의 돈을 훔치지 않기로 결정한다. 나는 매일 노동하기로 결정한다. 나는 우연히 노력하지 않은 것에 뜨길 바라는 마음을 당장 집어치운다.


나의 책임과 내가 글을 쓰는 이유는 그러하다. 이 시대와 세대를 구하기 원한다. 마치 폭격기와 같이, 이전에 온 세상을 자리잡고 있는 문화, 유흥이라는 본능이 그 어떤 시대보다 높아졌고, 그로 인해 뒤따라온, 더이상 일상에서의 행복을 잊게한 이 모든 문화에 나의 글은 폭격을 내리기 원한다. 사람들이 해방되기를 원한다. 씨를 말려버리기를 원한다.


내 글과 책이 사람들로 하여금, 성경으로 돌아와야 하는 이유를 알리기 위해서 전세계에 뿌려지기를 원한다. 성경보다 더 팔리는 글이 되어, 그들의 삶의 이전에 보았던 모든 것들이 전부 깨어지기를 원한다.




나는 책임을 가진 한 인원으로서, 하지만 넘어서, 성장하고 준비하는 것을 철저히 할 것임을 맹세한다. 나는 나를 위한 우상을 세우지 않기로 다짐한다, 분명하다. 자신을 위한 아세라 상을 만들어 _ 내가 그것으로 인해 기쁨을 누리는 것은 절대 용납할수 없는 일이다.


내가 만일 전략에 대해서 알아야 한다면, 그것을 독립적인 곳에서 공부하고 파악하기 위해서 일을 하는 것에 불구하다. 노력하지 않아도 승리하고 이길수 있다는 거짓말, 아세라상과 바알상. 풍족을 약속해도 된다는 그 우상. 이 앞에 절하고, 춤추고, 성관계하면, 이 이방신이 응답을 한다는, 모든 것이 좋고, 풍족하다는 사탄의 거짓말에 나는 반문할 것이다.


우리는 우리 스스로를 왕으로 세워, 나의 의를 내 육체와 몸뚱아리와 가지고 있는 것으로 증명하기 위한 존재가 아니다.


또 동시에, 삶을 하나도 경작하지 않는 게으름이 나를 증명하는, 일하지 않고 경작하지 않는 사회가 갓생이 아니다.


인생의 주인과 내 하드웨어를 만든 이는 너가 아니다. 컴퓨터가 물에 들어가면 망가지듯이, 나는 내 영광을 위해 지어진 자가 아니다. 나는 그의 영광을 위한 자이고, 나는 내 눈에 좋아보이는 것을 따르기 위한 자가 아니다. 너의 만족과 유익, 너의 인생의 주인은 너이니, 너의 탐욕과 너의 행복을 위해서 노력하지 않고 살아도 된다고 말하는 거짓말은, 세상을 사랑하는 마음에는 하나님의 사랑이 없다. 하나님이 일하시기에 나도 마땅히 일하는 것이 옳다.




본론 2: 다윗의 목적과 거룩한 삶의 기준 하나님의 사랑은 내가 특별해져서 사람들이 예수를 믿는게 전도가 아니다. 그럴거면 제자들은 참수당해서 죽지 않았겠지.


그리스도인의 목적은 이와 같다. 그릇의 목적은 비어짐이다. 그릇의 목적은 깨끗함이다. 그릇의 목적은 담아냄이기 때문이다.


더 높은 자리를 꿈꾸었겠지. 십자가의 삶은 낮은 삶이다. 그분이 높이시는 것에 불과하다. 각자 자신의 일을 풍족히 하는 것에 불과하다. 매일 아침 사람들을 만나는데 힘쓰고 즐거워하지 않고, 오늘 하루 마땅히 해야 할 것을 해서, 내 삶을 거룩한 예배와 제사로 살아갈 뿐이다. 내가 이 글을 쓰는 것도, 취미나 관심을 위해서가 아니다. 내 삶을 마치 원석을 다듬듯이, 나의 생각과 오류들을 다듬는 기준을 내 마음판에 새기기 위해서 나도 글을 쓰는 것이기도 하다. 사람은 말하지 않고 나누지 않고, 복습하지 않으면 잊는 존재이기 때문이다. (그것에 대한 글 )


https://brunch.co.kr/@rogan2534/6


나도 거룩하니, 너희도 거룩한 것이 마땅하다. 나도 일하니 너희도 일하는 것이 마땅하다 -God.


그분이 창조자임을 부정하는 일을 당장 그만두어라. 그분은 창조자이고, 나는 마땅히 그를 닮아가며 살아야 한다.


그와 상관이 없고 별개가 없는, 주인이 없는 듯한 삶이 아니라,


나를 지으신이가 가장 나를 잘 아시고, 그분이 나에게


‘나도 거룩하니 너도 거룩해라’라고 말한다면, 내가 그를 닮아야 하는 것은 의무적으로 따르야 하는 정도라고 해도 과언이 결코 아니다. 그분이 목자이기에 나는 그것에 마땅히 반응하는 다윗과 같은 삶이다. 다윗의 목적은 왕이 아니다. 다윗의 과정에 불과했다. 다윗의 목적은 왕이신 그분의 음성에 순종하는 것에 불과했다.


그 어떤 성경의 의인도 과정을 목적 삼지 않았다. 그들의 의는 오직 하나님 안에서 발견하고, 하나님을 그들의 자랑이자 유산으로 삼는 삶을 살았다. 그게 아니라면 죄를 짓고 자신을 위한 우상을 만들었겠지. 성경의 의인은 우상의 삶, 자신의 만족과 유익을 위한 삶이 아니었다.


당장 그만 자신의 유익을 위해 살아가는 것을 중단하라. 나의 기쁨을 오직 여호와 안에서 발견하라.




본론 3: 가치 지불과 섬김의 실천 꿈을 꾸어라, 누군가를 위해. 피를 쏟아라, 누군가를 위해. 젊음을 바쳐라, 잃어버린 영혼을 위해. 값을 너의 노고를 통해 지불해라. 인스타그램에 올리지 말고, 고요히, 10년은 생각하고 그렇게 닥치고 살아라.




그리스도의 삶은 이와 같았다. 그것이 예수 그리스도의 삶이었다. 30년간 묵묵히 인간의 삶으로서 조용히 살았고, 그는 3년간의 사역 속에 피를 쏟아부었다.




나는 과연 이 땅에서 33년만 산다고 한다면, 나는 어떻게 살아갈 것인가? 내가 만일 아직 33살이 아니라면, 나는 그때를 위해서 준비하고 있는자와 같은가?




대단한 교회에 나누지 말고, 소소한 형제를 위해 존재하라. 가난한 자들을 위해 있어라, 하나님의 마음은 그러한 자에게 있으니. 세상의 상을 받는 것을 기뻐하지 마라, 그러한 자는 천국의 상을 잃었을 것이다. 더이상의 노력하지 않은 공짜로 누군가를 사랑할수 있다는 우상이 주는 헛된 꿈을 그만 꾸어라.


우상 idol들의 메세지를 좋아보이는 사탕과 같이 달달한 메세지를 닥치라고 무너뜨리고, 깨부서라.


그래, 좋아보이는 것이 사실이다. 음란물, 게임의 공통점은 삶과 전혀 무관하다는 것이다. 게임에서는 왜 굳이 우리가 겪고 싶지 않은 전쟁을 하게 만들까? 이유는 간단하다. 비현실적인 확대를 통해 인간을 장악하는 것과 같다. 음란물이 되었던 어떤 미디어가 되었던, 그것은 확대해석을 하고, 그럴수 밖에 없는 것이 미디어이다. 소통과 정보, 경험을 위한 언어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그로 인해 내 안에 형성된 판타지를 그들은 신경쓰지 않는다. 내가 그로 인해 불행해지고, 중독이 되어도, 그들은 쇼를 중독시키지 않는다. 오히려 더 많들었으면 더 만드는 것에 불구하다.




결론: 창조자의 영광과 새로운 시작 내 창조자의 말씀과 빛을 받아들여라. ‘나도 거룩하니, 너도 거룩해라’ ‘나도 영광이니, 너도 나의 영광, 그리스도 안에 거하라’ 나를 위한 말 : (이제 흩날리는 불같은 무책임한 열정과 재미에게 입을 닥치라고하고, 따뜻한 모닥불과 같은 성실을 살아내라 )


내 삶을 가치 없는 돼지와 같이 욕구를 따르는 삶으로 취급하지 말아라. 길거리나 어디든 욕구를 추구하는 돼지 같은 인생을 살지 말아라.


나는 창조자의 아들의 값을 주고 샀으니, 더이상 옛삶을 따르지 말고, 새 옷, 새 목적, 새 습관, 새 방향과 기준을 가지고 살아라.











Original 원문의 글자수: 1888자





새롭게 작성한 글자수: 1888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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