홍옥과 못난이사과. (97번째 삼일)
빨간 사과였다.
반들거리게 닦아 고이 올려둔 사과.
왠지는 모르겠지만
글을 쓰려고 계획할 때부터 사과라는 단어가 머릿속에 맴돌았다.
구체적으로 모양도 곱고 예쁜 빨간 사과.
홍옥이었다.
그때 내가 미래를 떠올리며 생각한 것은 홍옥에 가까웠다.
아름답고 예쁜 미래.
그러나 막상 떠올리는 나의 지금은
홍옥보다는 우박 맞은 못난이 사과에 가깝다.
크기도 작고 모양도 예쁘지 않다.
같은 사과라는 이름을 달고 있지만
때로는 다른 과일로 느껴질 만큼 대우가 다르다.
물론 지금의 사과값은 금값이나 마찬가지라서
못난이 사과 한 알을 사 먹을 수 있다는
사실만으로도 감사할 일이지만
비교하자면 그렇다는 말이다.
아침마다 남편의 출근길에는
사과 한 알도 아닌 절반이 들려있다.
고된 하루가 예상되는 남편에게
그나마 내가 해줄 수 있는 유일한 내조이다.
그렇게 매일 아침 생색을 내듯 들려 보내는 사과의 값이
어느 날부터인가 천정부지로 올라버렸다.
덕분에 갈수록 남편의 손에 든 사과의 조각은 작아져만 갔다.
그나마도 크기가 큰 것들은 여기저기 상해서 도려낸 조각들이 많았다.
가끔은 그런 생각을 한다.
하루 온종일 고생하고 돌아 올 남편에게
고작 몇천 원 더 비싼 사과를 먹이는 일이 아까운 걸까.
홍옥같이 예쁘고 탐스러운 사과는 아니지만
알이 크고 상하지 않은 사과를 사는 것이 아까운 것일까.
그런 생각이 들면 이번에는 큼지막한 사과를 골라봐야지 싶지만
막상 사과를 구매할 때가 되면 장바구니에는 우박 맞은 못난이 사과가 담겨있다.
때로는 그것이 미안해져서
티 나지 않게 껍질을 벗기고 상한 부분을 조심스럽게 도려낸다.
매일 아침 그렇게 못난 부분을 감추고 들려 보낸 사과가 한 번씩 마음에 걸린다.
그러던 어느 날 주말
남편과 거실에 앉아 함께 사과를 먹었다.
그날은 둘이 먹을 사과였기에 한알을 통째로 잘라
역시나 상한 부분은 도려낸 채 남편의 앞에 두었다.
남편과 함께 나도 사과 한 조각을 입에 넣었는데
생각보다 꽤나 달고 맛있었다.
그랬다.
보기에 상한 구석이 있고 못난 사과였지만
속은 그럴싸하게 달고 맛있는 사과였다.
비록 못난이 사과라는 이름으로 저렴하게 팔리고는 있었지만
과육만큼은 홍옥만큼, 어쩌면 홍옥보다도 더 탐스러운 맛이었다.
그는 내게 있어 예쁘고 단단한 홍옥과도 같은 사람이지만
매일 아침 못난이 사과를 들려보내며 미안했던 마음을
그날 아침의 우리가 먹은 사과가 알기라도 하듯
괜찮다며 나를 보듬어주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