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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자미 한 마리가 부엌을 엉망으로 만들었다.

손질의 정의 (97번째 이일)

by 김로기

얼마 전 웬일인지 고기 위주의 식사를 하던 나는

손질된 냉동 가자미 한팩을 구매했다.

크기도 적당한 것이 맛도 좋다고 해서

더군다나 손질이 다 되어있는 가자미라고 해서

냉큼 구매를 했었다.

그렇게 냉동된 가자미를 녹여 밑간을 하려는데

웬일인지 껍질이 까칠한 게 칼로 살살 긁어보니

비늘이 잔뜩 벗겨지고 말았다.

예상치 못한 일이었다.

내 기준에서 손질이라는 의미는

한번 세척 후 바로 요리하면 될 정도로 정리된 것이라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물속에 담근 채 앞뒤 번갈아가며 비늘을 벗겨 내는데

깨끗한 물이 검게 물들 정도로 비늘과 불순물이 많이 나왔다.

이걸 다 내 입 속으로 넣었더라면 하는

더러운 생각들이 자꾸 들고

한참 동안 손질을 하면서도

이렇게 해서까지 먹어야 하나 싶을 정도로

가자미에 대한 식욕이 사라져 갔다.

하지만 이제 고작 한 마리였다.

냉장고 속에는 남은 네 마리가 떡하니 자리를 차지하고 있었다.

손질이 깨끗하게 되지 않은 것일까.

아니면 원래 이 정도의 손질은 구매자의 몫일까 싶었지만

뭐가 됐든 나는 지금 손질 중인 가자미 한 마리 포함 총 다섯 마리의 가자미를

손질해야 했다.

그저 한숨이 나오는 일이었지만 저걸 다 버리지는 못할 테니 어쩔 수 없는 노릇이었다.

조금 저렴하게, 그리고 편하게 식재료를 구매하려다 벌어진 일이었다.

다행인 것은 맛까지 형편없지는 않았다는 것.

그럼에도 앞으로 이런 번거로움을 네 번이나 더 겪어야 한다는 사실이 벌써부터 귀찮은 일이었지만

그럼에도 한 가지 알게 된 것이 있었다.

내가 생각하는 손질과는 상당한 차이가 있을 수도 있다는 것을.

그리고 낯선 식재료를 구매할 때는 조금 신중해야 한다는 것을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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