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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술을 앞두고, 그럼에도 한시름 놓았다고 밖에.

아프지 않아도 언제나 사랑하고 있음을. (97번째 일일)

by 김로기

얼마 전부터 다리가 저려 걷는 게 힘들다던 아빠가

며칠 동안 동네 작은 정형외과에 다니더니

결국 사달이 나고야 말았다.

그동안 들인 수고에 비해 생각처럼 통증은 사라지지 않았고

결국 큰 병원에 가보시라는 영화 같은 말을 들었다고 했다.

보통 드라마나 영화에서 절정에 이르렀을 때

주인공들이 놀라고 걱정스러운 표정으로 마주 앉은 의사에게 들어야 했던 말.

결국 그 말을 우리도 듣고 말았다.

엄마는 밥 생각도 나지 않을 만큼 걱정하고 있었고

아빠는 소견서를 가지고 큰 병원으로 향했다.

자식들 일에는 얼마든 돈을 아끼지 않던 사람이

이제야 겨우 당신 몸 검사하려고 들이는 비용이 아깝다고 난리였다.

그 모습에 엄마의 마음은 더 미어져 갔다.

속상한 마음이야 말할 것도 없고

지난번 남편의 일로 나는 미리 경험해서 익히 알고 있는

반갑지 않은 감정일 것이다.

속이 답답하고 뭐든 좋으니 나아질 수만 있는 것이라면

돈이야 얼마가 들어도 상관없다고 생각했다.

우리는 그런 순간이 되고 나서야

인생에서의 우선순위를 정확히 파악할 수 있게 된다.

다행히도 대학병원이 아닌 척추전문 병원이었던지라

너무 오래 기다리지 않고 결과를 들을 수 있었다.

엄마에게 전화가 오고

전화를 건 이와 받은 이의 긴장되는 숨소리가 수화기 너머로 전해졌다.

그리고 그 숨소리는 엄마의 조금은 상기된 목소리로 인해 그칠수 있었다.

"아프지 않았냐고, 힘들었을 텐데 디스크가 터졌단다."

디스크..

디스크란다.

물론 아빠는 많이 아팠겠지만

엄마와 나는 이제 겨우 한숨이 놓였다.

엄마의 작게 떨리는 목소리에서 얼마나 마음고생이 심했는지 느껴졌다.

나는 애써 침착하게 그렇게 엄마를 달래려고 애썼다.

"그래도 다행이다. 디스크는 젊은 애들도 많이들 터지니까."

젊든 늙든 아픈 건 매한가지이지만

우리가 걱정하던 결과는 아니어서 천만다행이라는 뜻으로

마음에도 없는 아빠를 향한 핀잔이 이어졌다.

그리고 며칠 뒤 수술날짜를 잡았다며 3박 4일 입원도 해야 한다고 했다.

수술이 끝나고 회복이 되어 그때에 가서야 완전히 마음을 놓을 수 있겠지만

그럼에도 우리는 한시름 놓았다며 서로를 달래다 전화를 끊었다.

그렇게 며칠간의 우리 가족의 속앓이는 일단락되었다.

이상하고 아름답게도 우리는 아파봐야 서로의 진심을 알게 된다.

이렇게 이번에도 우리는 서로를 걱정하는 마음이 조금 더 깊어진 듯하다.

이 기회를 빌어 우리 가족 모두에게 전하고 싶다.

아프지 않아도 언제나 사랑하고 있음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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