차라리 기절하는 편이. (18번째 삼일)
작년 즈음 어금니 하나에서 작은 조각이 떨어져 나왔다.
원래 이가 약해서 미세하게 쪼개지는 경우가 종종 있어서
별로 대수롭지 않게 생각했었다.
남들은 마치 큰일이 난 것처럼 호들갑을 떨고 온갖 충고를 아끼지 않았지만
그 당시엔 이사와 대출이라는 더 큰 문제에 당면해 있었기에
작은 어금니 조각 하나쯤은 정말 대수롭지 않았다.
하지만 불행은 언제나 소리 없이 찾아오는 법.
이사를 마치고 정신없는 하루하루를 보내다가
겨우 제정신이 들만 할 무렵이었다.
지금도 기억이 나는 게 떡볶이를 먹고 있었더랬다.
얼마 만에 즐기는 여유냐며 남편과 집에서 한가로운 시간을 보내던 중에
매우 불쾌하고 소름 끼치는 느낌에 바삐 움직이던 입을 멈추었다.
이내 화장실로 달려가 입안을 확인했다.
예전에 작은 조각이 떨어져 나온 어금니가 반으로 조각이 난 것이다.
하...
정말 언제 경험해도 손에 꼽는 기분 나쁜 순간이다.
거울과 휴대폰 카메라를 입속으로 넣어가며
어금니의 상태를 확인했는데
커다랗게 구멍이 나있었다.
그전에 떨어져 나온 미세한 조각은
타이타닉이 빙산을 처음 만났을 때 겨우 그 순간이었다.
빙산이 배를 부수고 전도되기까지의 시간을
나는 그저 안일하게 날리고 있던 셈이었다.
결국 치과에 가야 한다는 비극과도 같은 생각으로 며칠을 고민하다가
차마 용기가 나질 않아 치아보험부터 가입했다.
적어도 3개월 이상은 시간을 벌어 주겠지..
지금은 가고 싶어도 보험 혜택을 보려면 기다려야 하니까라는
바보 같은 핑계로 또 몇 개월을 보냈다.
그러다 어떤 계기로 인해 더는 미룰 수 없는 상황이 되자
치과마다 치료의 후기를 찾아보기보다는
그냥 마음을 단념하는 편이 낫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인생에는 많은 위기들이 있고
치과 치료는 그 위기에 비하면 아주 약소한 고비에 지나지 않지만
그 순간만큼은 정말 세상이 무너질 정도의 공포가 나를 지배한다.
며칠 안에 나는 치과 의자 위에 누워있을 것이다.
두근거리는 심작박동 소리에 차라리 기절이라도하면 좋겠다는 마음으로.
어서 빨리 그 모든 치료가 끝난 다음날이었으면 좋겠다.
다시는 치과와 인연을 이어가고 싶지 않다.
제발.
내 인생에서 좀 사라져 주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