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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요의 시간.

하루 한 끼 나의 고요한 시간 (2번째 일일)

by 김로기

나에게 고요란

밥과도 같은 것이다.

삼시 세 끼를 때마다 챙겨 먹지는 않아도

적어도 하루 한 끼는 꼭 먹어야 하는 것처럼

좋은 사람들과 즐거운 자리를 하고 있다고 해도

하루 중 잠시라도 꼭 시간을 내려고 한다.

고요 속에 잠시 나를 머물게 하려는 것이다.

그 시간에 무언가 대단한 것을 하려고 하지는 않는다.

그냥 그 시간이 있다는 것.

그 시간에 머물며 나를 세상과 잠시 단절시키는 것.

그런 시간이 나는 필요하다.

하지만 몇 년 전 무료한 시간을 달래기 위해

한쪽귀에 무선이어폰을 꽂고 영상이나 음악을 들으며 시간을 보냈던 적이 있다.

한두 시간이 금방 지나갔던 것 같다.

그런 시간에 흥미를 느끼고 나니 습관처럼 늘 한쪽귀에선 어떤 소리든 재생되고 있다.

그것이 때론 소음이 되기도 하고

결국엔 나의 고요를 방해하기 시작했다.

하루 종일 목적 없는 영상이나 노래가 귀에 맴돈다.

일을 할 때도 핸드폰을 할 때도

늘 한쪽 귀엔 이어폰이 끼워져 있다.

시간이 꽤 흐른 뒤에 지나간 소리들에 대한 기억은 거의 남아있지 않다.

그냥 백색 소음과도 같은 아무 소리들일뿐이다.

이런 습관이 지속된 지 오랜 시간이 흘렀고

그래서 더욱 고치기 어려운 것 같다.

당장 소리를 끊어내기 어려워서

요즘은 대화소리가 아닌 자연 ASMR 같은 것들로 대체해서 듣기도 하는데

이렇게 바꾸는 것조차 쉽지가 않다.

이런 안 좋은 습관으로 인해

나의 고요의 시간이 줄어들었다는 것이 안타깝다.

그만큼 혼자 생각할 수 있는 시간이 줄었다는 것이니까.

나의 하루가 낭비되었다는 것과도 같다.

나이가 들수록 시간은 점점 더 빠르게 지나가고

그 시간들 속에서 나의 고요한 시간들이 점점 더 귀하게 느껴진다.

하나를 얻기 위해 둘, 셋을 포기해야 한다는 누군가의 말처럼

애써야 한다.

생각 없이 몸에 배어버린 습관을 하루빨리 되돌리는 것을.

그래서 하루 한 끼 나의 고요한 시간을 되찾기 위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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