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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이를 먹는다는 것.

몇 살보다 몇 년생이 편합니다. (38번째 일일)

by 김로기

해가 바뀌고

물리적 나이가 변해가면서

나를 나타내는 여러 곳에 눈에 보이는 변화가 생긴다.

하지만 실제로 내가 느끼는 변화는 생각보다 크지 않다.

스무 살, 서른 살, 마흔 살 같은

앞자리의 변화가 아니고서야

한 살 두 살 늘어가는 것에는 별다른 느낌이 없다.

그저 12월이 가고 1월이 왔다는 것뿐.

그마저도 달이 바뀌었다는 정도뿐이다.

예전에는 이렇게 아무렇지 않았나 싶기도 한데

나이를 먹는다는 것도

한해 두 해를 거듭해 겪을수록

둔해지는 모양이다.

예전부터 어른들이

나이 먹는 것에 큰 의미를 두지 않고

생일이 뭐 별거냐며 말씀하시곤 했었는데

그들의 반 가까이 경험하며 따라가다 보니

이제야 조금은 그 말의 의미를 알 것 같기도 하다.

그래서인지 가끔 누군가

나의 나이를 물어올 때 선뜻 대답이 나오지 않는다.

몇 살이라고 대답하는 것보다

몇 년생이라고 대답하는 것이 훨씬 편하다.

아마도

올해보다 내년이.

내년보다 그 후년이

지금보다 더 빠르게 지나갈 것이고

그렇게 지나가는 순간들이

더욱이 둔하게 느껴질 테지만

그 순간들 중에

잠시라도 내게 가치가 없거나

소중하지 않은 순간은 없을 것이다.

내가 미처 눈치채지 못하는 사이에 지나가는 시간들에

조금 더 귀를 기울이고 마음을 쓰자.

자연스레 바뀌는 나이에는 둔해질지언정

나이를 엮어낸 시간들은

때마다 각각의 의미로 가득하길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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