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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안하지 않은데 미안하다고 말하는 나에게.

미안하다는 말 대신 고맙다는 말을. (38번째 이일)

by 김로기

정당하게 받을 돈을 받지 못했음에도

미안하다고 말하는 나를 보고 또 한 번 느꼈다.

"정말 바보 같아."

이쯤 되면 미안하다는 말이 진심이 아니라

그냥 습관처럼 내뱉어지는 것 같다.

약속된 돈이 있었고

이미 진작에 나의 통장에 날아와 꽂였어야 했다.

미루고 미룬 날짜가 코 앞으로 닥쳐 있을 때쯤

나는 내일까지 주기로 한 돈은

무사히 받을 수 있는 것인지 물었다.

하지만 그 뒤로 날아온 답변은

힘들 것 같다는 말이었다.

하.. 정말 괘씸하다는 느낌에서부터

정말 못 받게 되면 어쩌지 싶은 생각까지 들었다.

사정이 좋지 않다는 것은 이미 진작부터 알고 있었고

그 사정이 나에게 돈을 주지 못한다는 말에

덧붙여질 줄은 꿈에도 몰랐다.

그럼에도 지금 나에게 적은 돈이 아니었기에

나는 그들이 말한 다음 기일을

한번 더 정확하게 확인시키고자 문자를 보냈다.

"말씀하신 날짜까지는 꼭 부탁합니다.

사정 모르는 거 아닌데 죄송합니다."

답을 보내고 죄송하다는 말이

내 입에서 나올 말이 맞는 것인가 하는 의문이 들었다.

물론 상대도 본인들이 죄송할 일이라고 답해왔지만

나는 무슨 생각으로 죄송하다는 말을 덧붙인 것일까.

생각해 보면 나는 죄송하다는 말을 상당히 자주 한다.

상대를 배려하는 마음이 넘쳐서 그런 것일까.

아니, 이게 배려가 맞긴 한 걸까.

누구의 잘못이 됐던

상대가 미안해하는 것에 마음이 쓰이는 것은 맞다.

동방예의지국에서 자라 예를 갖추는 것이 몸에 밴 탓일까.

미안하다는 말이 예를 갖추는 듯 보이지만 사실 말 그뿐이다.

미안하다는 말은 결국 나를 낮추고 있음이고

상대에게도 부정적인 말로 들린다.

미안할 일이 아니라면 미안해하지 말고

굳이 신경이 쓰인다면

고맙다는 말을 덧붙이는 것이 어떨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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