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 시절 순수했던 14일의 마음들. (52번째 삼일)
매달 14일이면 편의점이나 슈퍼마켓에
반짝이는 장식들이 깔린다.
그 모습을 보며
이번 달은 무슨 데이인가 싶어 슬쩍 들여다보곤 한다.
좋은 말로는 마음을 고백하기 좋은 날이라지만
그저 장사꾼들의 상술에 지나지 않는다고 생각한다.
하지만 나 또한 가끔씩 그런 상술을 빌미로
유치하게 애정을 확인하려 들기도 한다.
이런 달마다 이어지는 이벤트데이에 끝판왕은
화이트데이와 밸런타인데이다.
밸런타인데이에 초콜릿으로 사랑을 고백하면
화이트데이에 사탕을 전하며 그 고백의 답을 하곤 했던 것 같은데
지금 생각해도 퍽 유치한 일이 아닐 수 없다.
아무것도 모르는 초등학생 때
모아둔 용돈을 탈탈 털어
백 원, 이백 원짜리
색색의 은박지에 쌓인 초콜릿을 골라
오백 원쯤 했었던 나무 바구니에 담았다.
그러면 문방구 주인아주머니는
조그만 하트무늬가 가지런히 박힌 투명한 포장지로
내가 고른 초콜릿이 담긴 바구니를 포장해 주었다.
문방구 아주머니 손에서 시작된
비슷한 모양의 초콜릿바구니는
인기 좀 있던 남학생의 책상 위에 줄지어 가득했다.
고작 이천 팔백원 어치의 나의 초콜릿 바구니가 초라해서
말 한마디 제대로 건네지 못한 채 책상 위에 던지듯 놓아두고
교실로 도망쳐왔던 기억이 난다.
그렇게 며칠을 그 남자아이를 피해 다니며
다음 달의 화이트 데이를 맞았을 때
그 애의 사탕바구니의 주인이 누구일까.
모두들 궁금해했다.
나 또한 전혀 가능성 없다고 생각했지만
내심 기대했던 것 같기도 하다.
그리고 드디어 그날이 되고
모두의 기대와는 달리
그 아이는 아무에게도 사탕을 주지 않았다.
물론 나도 사탕을 받지 못했지만
다른 아이들도 모두 받지 않았다는 사실에
왠지 기분이 좋았다.
때마다 그럴싸하게 진열된 초콜릿을 볼 때마다
그때의 그 순수했던 마음이 한 번씩 생각이 난다.
몇 개 안 되는 초콜릿이 신경 쓰일까
얇은 종이를 수북이 깔아준 문방구 아줌마와
많은 여자 아이들의 기대를 저버리고
그저 축구에만 관심 있던 아이.
그 모습을 보고 내심 흐뭇했던 나.
그때가 되면
다시는 경험할 수 없는 모두의 마음들이 생각나서
기분 좋은 웃음이 나곤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