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디오방 말고요. (40번째 일일)
비디오가게에 가본 적이 있는가.
요즘 간간이 보이는 비디오방이 아니라
비디오 가게 말이다.
그 시절 DVD 보다도 비디오테이프로 가득했던
비디오 가게.
간혹 만화책도 함께 대여하는 곳이 있기는 했지만
우리 집 앞에는 비디오만 대여하는 대여점이 있었다.
그리 넓지 않은 비디오 가게이기에
맨 앞에 보이는 최신 인기 비디오가 꽂힌 책장을 옆으로 넘기면
개봉한 지 조금 지난 비디오들이 수두룩 하게 꽂혀 있었다.
정확히는 기억이 나지 않지만
아마 오백 원에서 천 원 정도의 금액이었던 걸로 기억한다.
주말이 되면
비디오를 빌려 보는 것이 유일한 주말의 특권이었다.
그때는 초등학생이었기 때문에
엄마가 주는 천 원 정도 되는 돈으로
신간을 빌려 보기보다는
만화영화 2편을 빌려왔던 걸로 기억한다.
그때도 무엇이 재미있냐고
선뜻 물어볼 수 있는 성격의 아이는 아니었기 때문에
고심 끝에 고른 만화 중에는
그전에 이미 보아서 재미있었던 만화가 꼭 끼어있었다.
그렇게 비디오 두 편을 들고
집으로 돌아가 동생과 나란히 앉아 비디오를 시청했다.
가장 먼저 나오는 장면은
이름하여 "호환 마마보다 무서운 불법 복제"
아마 내 또래의 사람들이라면
호랑이와 함께
거울을 보며 얼굴에 난 상처를 보고
놀라는 아이의 그림이 생각 날 것이다.
호환과 마마.
이 두 가지가 가장 무섭던 시절이었나 보다.
그 뒤로 내가 빌려온 만화 영화가 재생되었고
그것이 나의 의지로 처음 접하게 된 영화였던 것 같다.
지금 생각해 보면 엄마가 보고 싶었던 영화는 따로 있었겠지만
동생과 나를 위해 엄마가 해줄 수 있는 저렴한 가족 복지였던 셈이었다.
그렇게 영화를 보다가 화면이 지지직 거리거나 할 때면
엄마는 비디오를 꺼내고
집에 있던 다른 비디오에 인공눈물 같은 걸 한두 방울 넣고
비어있는 플레이어에 집어넣었던 것 같다.
그렇게 잠시 후 비디오를 다시 바꿔 꽂으면
깨끗한 화면이 다시 나오곤 했다.
아마도 비디오 클리너였던 듯하다.
지금이야 핸드폰이든 TV든 언제든 틀기만 하면
원하는 것을 찾아볼 수 있지만
그때는 그것이 보고 싶은 것을 다시 볼 수 있는 유일한 방법이었다.
지금 생각하면 조금 번거로운 방법일 수 있겠지만
그래서 더 귀했던 것 같다.
아무 때나 볼 수 있는 것이 아니라
비디오 대여점에까지 가서
직접 빌려오는 수고를 더해야 했기에
지금의 제작비와는 비교도 안 되는 그 시절의 영화들이
훨씬 귀하게 느껴지는 것이 아닐까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