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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련한 식탐아.

진실고백. (39번째 일일)

by 김로기

누구나 어디에도 말하기 창피한 나의 습관들이 있다.

나는 그 습관에 꼭대기쯤에 미련한 식탐이 자리해 있다.

식탐이 강해서

배가 아플 때까지 먹는 나를 보며

먹는 것을 포기하기보다는

다른 것을 먹고

또다시 먹는 행위를 이어갈 때

스스로도 정말 미련하다는 생각이 든다.

여기서 다른 것이란

소화제나 생강차등의 소화를 돕는 성분의 것들이다.

왜 나는 음식 앞에서

유독 의지가 약해지는 것일까.

한 번씩 심하게 아프고 난 후에는

이제 정말 조금씩 내게 맞는 음식들을 위주로

식사하는 습관을 가져야지 하지만

아프고 나면 그 사실을 다 잊게 되나 보다.

사실 잊게 된다기보다

고통은 지나고 난 후에는 겪을 당시보다

매우 축소되어 기억되는 경향이 있는 것 같다.

이미 작게 느껴진 고통이

나의 식탐 앞에서 힘을 발휘할 수 있을 리가 없다.

그렇게 안 좋은 습관을 이어가다 보니

소화기능에 문제가 생기는 것은

어찌 보면 당연하다.

위부터 장까지 멀쩡한 곳이 없다.

병원에서 검사를 받을 때도

밀가루 음식, 튀긴 음식 등을 끊으라거나 하는

나로서는 너무나 당연하게

지키지 못할 말들만을 듣게 되니

며칠 동안 처방약에 의존하고 다시 젓가락을 들게 될 뿐이다.

가끔은 나의 그런 미련함 때문에

혹시라도 큰 병이 생기면 어쩌지 싶은

두려움이 들 때도 많다.

그런 모든 불편함을 겪고서라도

입에 무언가를 넣고 싶은 게

정말 철부지 어린아이 같다.

나의 식탐만큼 강한 위장을 함께 주셨다면

얼마나 좋았을까 하는

말도 안 되는 희망을 가져보며

오늘도 나는 무리해서 식탁에 앉는다.

무언가를 결심하기 좋은 시기에 있는 만큼

부디 나의 식탐이

온전히 나의 능력만큼만 발동되기를 기대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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