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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는 것보다 어려운 것.

사지 않는 것. (39번째 이일)

by 김로기

우리 집에는 존재의 이유를 알 수 없는 물건들이 많다.

언제부터 있던 건지도 기억이 안 날 만큼

오랫동안 집안에 있던 것들이다.

하물며 같은 물건이 다른 장소에

여러 개 있는 경우도 많다.

그리고 어느 날 문득 그런 물건들이 거슬리기 시작한다.

그런 마음이 한번 들기 시작하면

나는 구역을 나눠 물건을 정리하기 시작한다.

물건을 정리한다기보다

버릴 물건을 골라내는 것에 가깝다.

언제부터 있었는지도 모를

먼지 가득한 물건들을 차례로 정리하다 보면

집안의 한구석이 텅 비어 보인다.

그 순간 인테리어라는 명분으로

또다시 소비욕구가 나를 유혹한다.

애써 비워낸 공간을 채워 넣을 무언가를 고르고 있는 나를.

그걸 알아차린 그 순간 멈추어야 한다.

비우기 위해 애쓴 시간들이

도로아미타불이 되기 직전이다.

간신히 필요 없는 소비욕구를 꾹꾹 눌러 담고

빈 공간을 가만히 쳐다본다.

물건을 버렸는데도

오히려 마음이 넉넉해진 알 수 없는 기분이 든다.

그 순간의 만족감을 알기에

가벼운 마음으로 집안을 다시 돌아보며

정리되어야 할 물건이 있는지 살펴본다.

그렇게 집안의 구석구석 정리 하다 보면

생각보다 집이 휑하다는 느낌이 들기도 한다.

물론 지금은 그 휑한 느낌이 나의 목표이기도 하다.

우리는 보통 무언가를 사기 위해 노력한다고 생각하지만

어쩌면 사는 것보다 사지 않는 것이

더 어려운 일 같기도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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