밤에 파도를 본 적이 있다.

사랑하는 이의 죽음을 미리 경험하다. (55번째 일일)

by 김로기

밤에 파도를 본 적이 있다.

산책 삼아 모래사장 위를 걷다가

거세게 들리는 파도소리에 이끌려 바다를 향해 다가갔다.

파도에 부딪혀 날카롭게 깎여버린 젖은 모래 앞에서

나와 남편은 파도가 무서워졌다.

모래에 부딪혀 되돌아간 파도가

이번에는 더 크게 우리를 향해 다가올 것만 같았다.

우리는 조금 뒤로 가서 파도를 지켜봤다.

밤이 깊어 파도의 물결이 잘 보이지는 않았지만

소리만으로도 그 위엄이 느껴졌다.

그때

왠지 마음속에 한걸음만 더 앞으로 내디뎌볼까 싶은 생각이

자꾸만 불끈거렸다.

간신히 그 마음을 참고 뒤돌아섰다.

아마 그 호기심을 이기지 못하고

밀려오는 파도에 발을 하나 담갔었더라면

그 힘을 이기지 못한 채

중심을 잃고 넘어져버렸을지도 모른다.

파도는 넘어진 나를 잽싸게 바다로 데려갔을 것이다.

그런 나를 보며 남편도 바다로 뛰어들었을 것이고

우리는 어떻게 되었을지 모른다.

그렇게 우리가 다시 서로를 보지 못할 수도 있었겠다는 생각을 하면

마음이 철렁 내려앉는다.

사랑하는 이를 떠나보낸 경험을

미리 해본 것 같아 마음이 미어진다.

상상만으로도 마음이 돌이 되는 느낌이다.

얼얼해지다 못해 숨조차 쉬기 힘들어지고

그렇게 죽을 것만 같은 고통을 느끼겠구나 싶었다.

그 밤에 나는 어두운 바다에 파도를 보며

사랑하는 이의 죽음을 미리 경험했다.

언젠가는 겪게 될 일이지만

너무나도 무섭고 고통스러운 순간이었다.

한 번씩 그날의 무서운 파도가 생각이 난다.

그리고 어쩌면 내게

한 걸음씩 파도를 향해 다가가고 싶은 마음이 들게 했던 것은

상상으로나마 누군가의 죽음을 미리 경험함으로써

곁에 있는 사람의 소중함을 깨닫게 함이 아니었을까 싶기도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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