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끌에 당사자가 될 줄은 꿈에도 몰랐다.

삼천갑자 동방삭이도 지 죽을 날은 몰랐다. (63번째 일일)

by 김로기

몇 해 전 아파트값이 천정부지로 오르면서

소득 수준에 맞지 않는 아파트를 장만하는 사람들이

논란의 중심이 되었던 적이 있다.

흔히 "영끌"이라는 신조어가 생길 정도로

많은 사람들이 투자목적의 아파트를 구입했다.

그리고 점점 대출이자에 대한 부담이 늘어가며

강제로 집을 팔거나

전세로 내놓는 일들이 허다했다.

그리고 그때는 몰랐다.

내가 그 논란의 중심의 그들과 같은 처지가 되어 있을 줄은.

맞벌이 부부였던 우리는

둘이 벌어 둘이 사는 생활에 만족했다.

한 번씩 해외여행도 가고

외식도 자주 했다.

부유하다고 할 수는 없어도

하루하루 여유롭고 만족스러운 삶을 살았다는 것은 확실했다.

하지만 지금은 그때와는 전혀 다른 삶을 살게 되었다.

외식도 최대한 자제해야 했고

해외여행은 말 그대로 꿈같은 일이 되었다.

아파트 매매를 앞두고

큰돈이 오가는 상황이 부담스러웠던 우리는

부디 이번 계약만 무사히 성사된다면

매달 갚아나갈 대출금은 문제 될 것이 없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그 생각도 오래가지 못했다.

이사 후 남편과 나는 번갈아 퇴직자가 되었고

게다가 우리 인생에는 없을 것 같던

또 다른 가족계획을 하면서부터

그 부담은 두 배, 아니 몇 배로 커져갔다.

이런 상황에서 일정금액 이상의 목돈이 없다는 것도

걱정스러운 일이었다.

매일같이 아끼고 사는 생각뿐인데도

생각에 비해 돈은 아껴지지 않았다.

이런 상황이 되다 보니

예전 무리한 재테크로 영끌하던 사람들을 향해

목소리를 높이던 때가 생각이 난다.

"매달 옥죄는 대출금에 사는 게 사는 것이 아닐 거라고."

다행히도 지금의 나는 사는 게 아닌 정도의 삶은 아니지만

예전에 비하면 삶이 꽤나 퍽퍽해졌다는 것만큼은 확실했다.

언제 이런 부담감이 좀 내려앉을지는

글쎄, 잘 모르겠다.

아마도 이 집에 사는 이상.

크게 달라지진 않을 것 같다는 것이 지금의 내 생각이다.

어느 순간이 되면 선택의 기로에 놓이게 될 것이다.

그때의 내가 지금보다 조금 더 현명한 선택을 하는 내가 되어 있기를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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