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랜만에 편지를 씁니다.

반짝이는 하루가 되리라는 사실은 변함이 없기에. (62번째 삼일)

by 김로기

나는 편지를 자주 쓰는 인간이다.

아니,이었다는 표현이 더 적절할지도 모르겠다.

내가 스무 살이 갓 넘었을 무렵

나의 마음속에 그리고 머릿속에도 편지지 위에 끄적일 문장들이 넘쳐났다.

그때는 이성 속에서도 감성이 피어나는 때였으니까.

매년 연말이 되면 적당한 가격의 크리스마스 카드를 준비했다.

스무 명이 넘는 지인들에게 카드를 보내야 했기 때문에

비싼 고급 카드는 부담스러웠다.

우체국의 소인이 찍힌 편지를 받는 일은

지루한 일상에서 반짝이는 하루를 얻은 느낌일 것이라고 생각했다.

그런 마음으로 나는 자주 편지를 썼다.

꼭 연말이 아닐지라도

의미 있는 날이나 그저 평범한 어제와 같은 오늘에도 편지를 썼었다.

지금 생각해 보면 그때 적었던 수많은 말들 중에

오래도록 의미 있는 말들은 얼마나 될까 싶지만

생각지 못한 편지를 받는 일만으로도 의미가 있을 것이라고 생각했다.

그렇게 십여 년이 지난 지금은

예전만큼 편지를 쓰는 일이 거의 없다.

10대, 20대의 아무대서나 피어나던 열정이 예전만 하지 못하다는 것.

그것이 나에게서 편지를 쓰는 일이 귀찮은 일이 되게 했다.

예쁜 편지지를 사모으는 일도.

올해는 누구에게 편지를 쓸지 정하는 일도.

각각에게 적어 보낼 말을 정리하는 일도.

모두 귀찮아졌다.

편지를 쓰는 일은

이성보다는 감성에 치우쳐 발생되는 결과라는 것이

내가 조금씩 감성적인 인간과는 멀어지고 있다는 뜻이 되기도 한다.

그렇다고 딱히 이성적인 인간이 되어가고 있다고는 볼 수 없지만.

그럼에도 여전히 내가 한 번씩 편지지를 꺼내드는 이유는

그때처럼 열정이 가득하지는 않아도

늘 반복되는 하루에 나의 손 편지 하나가

누군가의 기쁨이 될 것이라는 것은 달라지지 않았기 때문이다.

그 사실은 앞으로도 변하지 않을 것이라는 것을 알기에

나는 종종 편지를 쓴다.

그 시절 보내던 편지의 횟수보다는 훨씬 적겠지만

그래도 그때 적어 보내던 편지지 위의 말들보다는

깊은 의미의 말들이 많아졌을 것이다.

오랜만에 편지지를 꺼내어 본다.

그리고 생각한다.

그에게 전하고 싶은 나의 진심을.

그리고 웃는다.

그것을 받아볼 때의 그를 떠올리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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