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겁하고 미안하지만. (73번째 일일)
친한 친구가 있었다.
평생을 함께해도 좋겠다는 생각이 들 만큼 좋은 친구였다.
하지만 언제부터인가 그 친구와의 연락은 가급적 피하게 되었다.
친구에게 안 좋은 일이 닥친 후로
친구가 변해버렸다.
어쩌면 당연한 일이었다.
사람은 주변 환경에 영향을 많이 받는다.
환경이 너무나도 많이 변해버린 탓에
스스로도 감당할 수 없을 만큼 변해가고 있음이 분명했다.
몇 년은 변해가는 친구의 모습 또한 받아들이려고 노력했다.
그리고 친구가 처해있는 환경이 너무나도 안타까웠다.
모든 것을 공감할 수는 없었지만 이해하려고 노력했다.
하지만 시간이 갈수록 더해지는 친구의 어두움은
내게 괴로움으로 다가오기 시작했다.
모든 일에 부정적이고 불만이 가득했다.
스스로를 그 안에 가두고 나오지 못하는 것처럼 보였다.
괜찮다고 다독이고
잘 될 것이라고 응원했다.
하지만 내가 던진 모든 말들은
세상 물정 모르는 순진해 빠진 듯한 말일 뿐이었다.
모든 대화는 자신의 처지를 비난하는 결말로 이어졌고
나는 점점 지쳐갔다.
그 친구와의 만남을 앞둔 날에는
단단히 마음을 먹고 준비했지만
매일 그의 어두움에 물들어 집으로 돌아오곤 했다.
점점 그와의 만남도 일상의 대화도 힘들어졌다.
나는 조금씩 그와 거리를 두기 시작했다.
평생을 함께할지도 모른다고 생각했던 친구였지만
더 이상 그의 어두움을 나누고 싶지 않아 졌다.
나는 결국 친구를 버렸다.
다행히도 그는 나름대로의 삶을 선택해서 잘 살아가는 듯 보이지만
여전히 위태로워 보이는 것은 사실이다.
그런 그를 버렸다는 사실에 죄책감이 느껴지고 겁이 나지만
그의 불만과 부정을 더 이상 내게 전염시키고 싶지 않았다.
더 이상 그의 불안을 함께 안고 갈 자신이 없었다.
그렇게 나는 천천히 인연을 마무리하기로 했다.
모든 인연이 흐렸다 진했다를 반복하는 것처럼
그냥 그렇게 흘러갔다고 생각해 주길 바란다.
그리고 새롭게 쌓아 올린 그의 인연이
친구의 어둠을 조금 걷히게 할 수 있기를 진심으로 바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