뇌는 가장 가까운 사람을 또 다른 나로 여긴다. (82번째 삼일)
화풀이의 대상이 바뀌어 간다.
어릴 때는 엄마와 아빠.
그리고 지금은 남편.
다음은 과연 누구의 차례가 될까.
우리는 살아가면서
그때마다 가장 친한 사람들을 적과 같이 대하곤 한다.
어쩌면 유일하게
내가 갑이 될 수 있을만한 사람들에게 못되게 구는 것 같아
비겁하게 느껴지기도 한다.
그런데 우리의 뇌는 나와 가장 가까운 사람을
나의 영역과 가까이에 배치해둔다고 한다.
그래서 간혹 그들을 나로 인식하기도 한다는데
그런 또 다른 내가 된 사람들을 나 스스로가 통제할 수 없으니
이 얼마나 답답하고 미칠 노릇이겠는가.
그래서 우리는 종종 내가 아닌 나와 같은 사람들에게
화풀이를 해대고 있는 건지도 모른다.
그리고 그 대상이 바뀌어 간다는 것은
나와 가장 가까운 사람이 바뀌어 간다는 것과도 같다.
다음은 또 누가 될지 모르겠지만
그 사람 또한 나와 가장 친밀하고 유대가 깊은 사람일 것이 분명하다.
하지만 그런 사람들에게 어쩔 수 없다는 핑계를 대며
나를 감당하라고 말하기엔
내가 너무 이기적 것은 아닐까.
어쩌면 내게 가장 가까운 사람이라는 것은
그에게도 내가 그런 사람이 될 가능성이 높다는 뜻이기도 하다.
그런 사람들의 곁에서 나는 어떤 대우를 받으며 살아왔을까.
수 없이 변하는 관계 속에서 때마다의 그들은
내가 그들을 대하는 것과는 사뭇 다른 태도로 나를 대하고 있었다.
서로가 느낀 각자의 또 다른 나를
고작 화풀이의 대상으로만 여기고 있지는 않았다는 말이다.
단순히 뇌의 영역이 또 다른 나를 인식하고
그래서 어쩔 수 없다는 말은 정말 핑계에 불과한 말이었다.
어쩌면 나는 진짜 나 자신에게조차
애틋하고 사랑스럽게 대하는 법을 모르고 있었던 듯싶다.
그래서 또 다른 나를 대할 때마저
그런 나의 기준을 대입할 수밖에 없었는지도 모르겠다.
그렇게 생각하고 보니
스스로에게도.
나로 착각할 만큼 가까운 사람들에게도.
미안한 구석이 생긴다.
그리고 앞으로 해야 할 일이 한 가지 더 늘어난 듯싶다.
나를 아끼는 일.
그리고 또 다른 나를 아끼는 일까지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