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유일한 요새. (83번째 이일)
나는 왜 집 안에 있는 것을 좋아하는 걸까.
나는 집에 머무는 시간이 긴 편이다.
단순히 집이 좋아서.
아니면 있는 그대로의 나로 살 수 있기에
편안해서 그런 걸까 하고
생각해 본 적이 있다.
누군가에게 상처를 받으면 집에 숨어들고 싶고
여행이 조금 길어지면 집에 돌아오고 싶다.
흔히 집순이, 집돌이라고 불리는 사람들.
그들은 무엇 때문에 집에 숨어들기를 원하는 걸까.
쉼이 그 이유라면
나를 쉬게 할 적당한 공간은
꼭 집이 아니어도 충분히 많다.
고요한 차 안.
적당한 사람들의 적당한 소음이 들어찬 카페.
오히려 누군가의 잔소리나
나를 놓아주지 않는 아이들이 지키고 있는
집 안이 쉬기에는 더 적당하지 않을지도 모른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집을 유일한 나의 공간으로 여기는 사람들이 많다.
물론 나도 그중 한 사람이다.
그런 내게 사람들이 종종 묻곤 한다.
"집이 답답하지 않으냐고, 왜 그렇게 집이 좋으냐고."
그런 질문을 듣게 되면 나도 한 번씩 궁금해지곤 한다.
나는 왜 집에 있는 것을 좋아하는 걸까.
있는 그대로의 나로 살 수 있어 편안하고
문 밖에 환경에 비해 쾌적하고
가족들이 있고.
다 맞는 말이지만.
그때마다 내가 떠올린 가장 걸맞은 이유는
집 안이 가장 안전하다는 느낌이 들기 때문이었다.
어린 시절 시도 때도 없이 누군가가 찾아오는 집은
내게 좋은 집이 아니었다.
있는 그대로의 나도, 쾌적한 환경도 갖추고 있었지만
집에서 쉬어야 하는 공휴일이 싫었다.
그에 비해 지금 내가 살고 있는 집은
예상치 못한 손님은 거의 방문하지 않는다.
내가 문밖으로 나가지 않는 이상
집 안에서 나의 안전을 방해하는 것은 아무것도 없다.
나는 편하다는 이유를 넘어
겁이 많아 안전한 집을 좋아하는 것이었다.
아무것도 두려워할 것이 없어서.
집 안에서는 누구도 내게 상처 주지 않고
겁낼 것이 없어서.
그래서였다.
내가 집을 좋아하는 이유는
집만이 내게 유일한 요새였기 때문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