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효표를 날리는 것이 훨씬 낫다. (84번째 삼일)
12월.
긴박했던 그날 이후로
예상치 못한 6월의 투표를 하게 되었다.
장미꽃이 만발한 그날에
선거를 하게 되었다고 해서
'장미대선'이라고도 불린다고 한다.
그리고 우리는 뜻하지 않는 반가운 휴일도 하나 갖게 되었다.
마침 우편함에도 선거공약에 관한 책자가 도착했다.
이른 시간이라 그런지
모두의 우편함에 똑같은 모양새로 한권씩 꼿혀 있었다.
국가가 스스로 나서서 이토록 친절하고 다정하게
개인 한사람 한사람을 챙기는 일이 흔하지는 않은 것 같다.
그런데 꽤 많은 사람들이
몇년에 한번씩 건네받는 이 친절을 무시하는 것 같다.
공휴일로 지정 된다는 것이
그저 공식적인 쉼을 허락한 날이라고 여기는 건지.
아니면 그간 미뤄두었던 나들이를 계획하도록
부추기는 날이라고 착각하는 건지 모르겠다.
그들은 그저 정치에는 관심없다며
혹은 후보들을 무작정 비난해대며
투표를 포기한다고 말한다.
그 투표권 한장을 얻어내기 위해서
흘린 피가 수천만에 달한다.
그럼에도 그 피가 아까워서라고 말하기 보다
그 피로 쌓아올린
당신의 권리가 아깝다고 말하는 편이 맞겠다.
모든 집에 나란히 공평하게 꼿혀있던 책자처럼
만 18세 이상의 성인이라면
자리의 높낮음에 상관없이 모두가 공정한 한표를 가진다.
누구의 한표가 더 무겁거나 가볍지 않다.
어쩌면 불공평함이 당연해진 세상에서
나라는 사람하나가
모두와 동일한 권리를 갖게 되는 유일한 순간일지도 모른다.
어쩌면 누군가는
투표일이라기보다 공휴일이 하나 더 늘었음에
더 큰 의미를 부여하곤 하겠지만
적어도 나라는 사람을
국가에서 개인으로 존중하고 권리를 부여한만큼
그 권리를 반드시 행사함이 옳다고 본다.
혹시라도 정말 뽑고 싶은 사람이 없다면
무효표를 택하여
자신의 의사를 표현하는 것도 나쁘지 않다고 본다.
대신에 투표에 참여하여 그 무효표를 행사하는 것이 맞다.
어느 후보가 몇퍼센트의 지지율로
당선이 되었다는 사실만큼이나
투표참여율이 100%에 가까워 졌다는 것 또한
중요한 의미로 남겨질 것이라고 생각한다.
공정한 투표를 위해 개인이 주어진 권리를 행사하는 것이
모두에게 당연한 일이 되는 날이 오기를 바래본다.
나를 찍어 달라는 말보다
모두가 투표를 해야한다는 말이 우선이 되는
그날의 선거를 꿈꿔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