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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처 알지 못했다.

여태껏. (85번째 일일)

by 김로기

누군가와 설레는 시작을 앞두고

'날씨가 좋네.' 하고 쓰여진 흔한 안부에는

어떤 말을 해야

계속해서 대화가 이어질까 고민하며

한 자 한 자 써내려 가던 날들이 있었다.

그리고

길가에 핀 꽃과 나비가

초점이 흔들린 채 찍혀있는 사진과 함께 보낸

'햇빛 쨍쨍'이라는 네 글자 안부에는

별 고민 없이 '날씨 좋네' 하는 건조한 대답을 남기는 날도 있었다.

그날들에는 몰랐다.

모두 날씨가 좋아서.

그래서 내가 생각나서 보낸 문자들이었지만

하나는 잠시 나와 설레는 순간을 공유한 사이가 되었고

하나는 영원히 나를 생각하는 사람이었다는 것을.

그때는 몰라서

그 애씀을 알아보지 못했다.

초점은 흐릿하고 꽃의 색깔과 나비의 형체만을

간신히 알아볼 수 있던 그 사진 하나를 찍기 위해

아픈 무릎을 구부리고

바람에 날리는 꽃잎을 담기 위해 잠시 숨을 고르던 순간을.

그때는 알지 못했다.

하필이면 '햇빛 쨍쨍'이라는 한 자 한 자 치기도 어려운 말을 적어가며

어떤 말이 가장 너를 부담스럽지 않게 하고

그러면서도 가장 너의 대답을 들을 수 있는 말일까 고민했던 순간을.

그때는 알지 못했다.

내게 문자를 보내 놓고 한참을 벤치에 앉아

나의 답장만을 기다리던 그의 순간을.

그때는 알지 못했다.

내가 미처 알지 못한 순간이 이것 말고도 얼마나 더 많을지

여태껏 알지 못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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