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길 때 되면 생기겠지.

by 김로기

나는 생각보다 고전적이라고 해야 하나.

흔히 말하는 결혼 할 시기가 되면 결혼을 하고

아이를 낳을 시기가 되면 아이를 낳고

하나에서 둘 쯤?.

복닥거리며 넉넉하진 않지만 예상된 전개 속에서 행복을 느끼고 그렇게 살고 싶은 사람이었다.

자, 이제 결혼은 무사히 완료했고

그렇다면 다음은 너와 나를 반쯤 닮은 아이차례였다.

그 차례가 됐는데..

더 이상의 전개는 진행되지 않았다.

처음엔 기다렸고 다음엔 실망했고 그다음엔 불안했고 지금은 다독이는 중이라고 할까?

왜 더 이상 애쓰지 않냐고 묻는 사람들도 있다.

인공수정이나 시험관의 단계를 거치지 않냐고 나이 들어서 후회할 수도 있지 않냐고.

후회.. 할 수도 있을 것 같다.

아니할 것이다.

근데 그 시도에 실패하면 정말 끝이라는 두려운 생각이 강하다.

더 솔직한 한 방울을 보태자면 애를 써서 아이를 가졌는데

나의 생각과 의도를 벗어난 상황이 닥쳤을 때 올 후회다.

전자와 후자 모두에 후회가 따를 것이다.

한 가지는 죽을 때까지 후회로 망설이는 시간을 갖게 될 것이고

한 가지는 나와 남편의 선택으로 인해 생긴 아이를 향한 나의 후회이다.

나는 굉장히 개인적이고 방어적인 사람이다.

그런 태도가 그 아이에게까지 미칠까 하는 걱정이 벌써 앞서는 거다.

이런 마음들을 설명하고 있노라면 너무 멀리까지 생각하는 것이 아니냐고

손사래를 치는 사람도 분명 있겠지만 정말 만에 하나 아이를 향한 후회가 생기는 날에는

그 아이에게는 세상에서 가장 큰, 상상도 할 수 없던 잔인함이 되고야 말 것이다.

그리고 현실적으로 부딪혀야 하는 부분도 적지 않고.

시험관까지 갔을 때의 실패란

내가 그간 겪어보지 못한 정도의 실망을 넘어선 절망일 것이라는 점이다.

그래서 지금 이 순간 내가 내린 결정은 회피다.

언제까지 이 회피가 통할지 모르겠지만

지금의 나의 선택은 회피이다.

어느 날은 둘 다 너무 답답해서 난임병원에 방문했는데

사람이 많을 거라는 말이 많아서 진료 삼십 분 전에 도착했음에도

사람이 너무 많아 대기실에 조차 들어갈 수 없었다.

세상에. 아이가 안 생기는 사람들이 이렇게나 많다는 것을 그날 처음 알았다.

이런저런 검사를 하고 두 사람 모두 정상이며 별다른 문제가 없다고 했으니

우리는 병원의 시험관 권유를 마다하고 계속 기다리기로 했다.

그리고 생리가 늦어지면 조금 기대할 뿐이다.

그마저도 어느 순간이 되면 없어지겠지만.

결혼 후 한창 아이가 간절했을 때 직장을 그만둘 수가 없었다.

물론 그마저도 내 욕심이었겠지만

집과 직장이 가까운 곳으로 이직해서 근처에 있는 산부인과에 방문해

매달 나의 몸에 주기에 맞춰 주사를 맞고 약을 먹고 그게 최선이었다.

매번 편의점이나 약국에서 사서 쓰는 테스트기가 부담돼서

인터넷에서 저렴하게 판매하는 스틱형 테스트기를 구매해

정말 시도 때도 없이 테스트했던 것 같다.

생리가 조금 늦어지는 날이나 몸이 약간 이상하거나 한 날이면

어김없이 임신테스트기를 뜯었다.

심지어는 생리가 하루라도 늦어지는 날에는 회사에서 조차

일이 손에 잡히지 않아 외근을 빌미로 테스트기를 해보러 집에 들르기도 했다.

매직 아이처럼 들여다보고 있으면 두줄이 보이려나

한참을 들여다 보고, 시간이 조금 더 지나면 두줄이 나올까 싶어

올려둔 테스트기가 몇 개씩 집 안 화장실에 돌아다녔다.

아이가 잘 생긴다는 한약도 먹어보고

사람들은 둘 다 문제가 없으니 마음이 편해지면 생길 것이다

술을 먹는 날 생길 것이다

온갖 비법들을 전수해 주곤 했지만

그런 기대들은 결국 아무런 효과가 없었다.

태어나 처음 내 의지로 무너뜨릴 수 없는 벽을 만난 느낌이었다.

막막하다는 느낌이 이런 거구나 싶었다.

술도 담배도 전혀 안 하는 내게 왜 이런 시련이 닥쳤나 싶고

원망할 대상이 없는 원망이 생겼다.

그럴 때마다 본 적도 없는 삼신할머니를 욕했었다.

시댁에는 조카가 있어서 시부모님은 손자를 보셨지만

친정에는 손자를 안겨줄 수 없어 지은 죄 없이 미안하기도 했다.

혹시라도 아이 이야기만 나오면 빙빙 돌려가며 피했다.

한 번은 아이를 안 갖냐고 엄마가 묻는데 마음이 쿵 내려앉았다.

걱정할 것 같기도 하고 이상하게 미안한 마음도 들고 무슨 감정인지 잘 모르겠다.

"생길 때 되면 생기겠지." 하며 순간 모면하긴 했는데.

집에 와서 한참을 울었던 것 같다.

그때의 내 표정과 말투, 분위기를 엄마도 느꼈는지 더 이상은 묻지 않았다.

그저 둘만 행복하게 잘 살면 그만이라고 그뿐이라고 말했다.

그 뒤로도 여전히 그런 말들이 한 번씩 내 마음을 울렸다.

내 눈물 버튼이 되어버린 것 같았다.

시험관을 해보라는 말도

이렇게 저렇게 애써보면 생길 거라는

무심코 던 지 듯한 말도 별로 듣고 싶지 않았다.

그냥 그 감정이 무뎌지기만을 바랄 뿐이었다.

하지만 여전히 쉽지 않다.

지금은 아이를 꼭 가져야 한다는 말을 하는 사람들이 많이 없지만

결혼한 지 꽤 됐는데 아이가 없냐고 묻는 사람들은 종종 있다.

그땐 그냥 "생기면 나아야죠." 하며 두리뭉실하게 순간을 흘려보내곤 한다.

결혼기간이 길었음에도 원치 않는다는 말이 아니니까 대충 알아듣겠지 하며.

지금은 아이가 없는 것이 그다지 이상한 시대는 아니지만

우리는 그런 시대에 맞춰가는 것을 원했던 것은 아니기에.

하지만 어쩔 때는 그런 시대가 우리를 위로한다고 느껴질 때도 있기에.

드문 드문 예쁜 아이와 함께하는 가족들을 보거나

남편과 아이가 함께하는 상상이 갑자기 떠오를 때

그리고 먼 훗날 남편과 나 둘 중 하나는 혼자 남겨질 수밖에 없다는 생각이 들 때면

벌써부터 슬프고 두렵다.

앞으로도 테스트기를 계속 사기는 할 것이고

생리가 늦어지면 혹시나 하는 기대를 가질 것이고

아이가 곁에 있는 상상을 종종 하기는 하겠지만.

그것들에 적응하도록 할 거다.

조금 덜 기대하고, 조금 덜 실망하고

둘이기에 행복한 시간을 더 많이 가지며

그러다 생기면 감사히 낳을

하지만 그저 그런 순간에 무덤덤하게 웃어넘길 수 있는

난임부부로 살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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