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눈 앞에서 사라지고 불안이 시작된다.

결국 걱정은 나의 불안으로부터 생겨난다. (94번째 삼일)

by 김로기

한 번씩 남편에게 약속이 생겨 늦은 밤 외출을 할 때나

유난히 피곤한 모습으로 출근을 하는 날.

그렇게 내 눈밖을 벗어나게 될 때.

'문득'이라는 말이 나를 두렵게 하곤 한다.

내 눈앞에

내 손이 닿는 곳에 있는 남편은

내가 어떻게든 위험한 상황에

처하지 않게 할 수 있을 것만 같고

그래서 나는 때로 과하게 누군가를 통제하려 들기도 한다.

다분히 남편에게만 치중된 것은 아니다.

내가 아끼는 대상.

특히나 가족에 대해서는 이러한 통제가

아슬아슬 경계에 설때가 있다.

그러나 그들이 나의 통제 안에 있다고

아무런 사고가 일어나지 말라는 법은 없을 것이다.

어쩌면 내가 나 스스로에게만

더 짐을 지어주는 일이 되고 있을 뿐인지도 모른다.

하지만 그런 짐을 감당하면서 까지

내가 모두의 안전을 걱정하는 것은

아마도 내가 가진 불안 때문일 것이다.

내가 생각해도 나는 불안이 굉장히 높은 편이고

가끔씩 그 불안이 도를 넘을 때가 있다.

때문에 걱정이라는 핑계로 잔소리가 많다.

물론 내가 걱정하는 일의 대부분은 일어나지 않는 일에 불과하지만

내 눈앞에 안전한 모습으로 나타날 때까지

그 불안이 지속되기도 한다.

나의 이런 불안이 성가시게 여겨질 거라는 걸 잘 알기에

티 내지 않으려 애쓰는 날도 있지만

속에서는 말 그대로 전전긍긍일 뿐이다.

마흔이 넘은 성인에게도 이렇게 불안이 커져가는데

그보다 더 작고 소중한 존재가 생기면

그때는 이 불안을 어떻게 감당해 나가야 할지

막막할 때가 많다.

그 존재에게 나의 불안과 통제가 끼칠 영향이

좋지 않을 거라는 것도 물론 알고 있다.

어쩌면 대상이 누구냐의 문제가 아니라

나 스스로 불안을 다스리지 못하는 것이

가장 큰 원인일지도 모른다.

더 늦기 전에 내 안의 불안을

다스리는 방법을 찾아내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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