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애초에 혼자였더라면.

외로움 같은 건 느끼지 않았을지도 모른다. (98번째 삼일)

by 김로기

외로움은 언제나 지니고 있는 감정이지만

다행인 것은 아주 가끔 한 번씩 느낄 수 있다는 점이고

그러나 그럼에도 안타까운 것은

종종 한 번씩 느껴지는 그것은 좀처럼 적응이 안 된다는 것이다.

오히려 잊을만할 때 되살아나는 그 감정은

때로 나를 두렵게 만들기도 한다.

오랜만에 지인과 연락을 하면서

이렇게 오래간만에 나누는 대화에서는

어떤 주제가 우리의 대화를 매끄럽게 이어갈 수 있을까 고민하게 된다.

결국 이전의 대화들을 넘겨보며 대화를 이어나가려 애를 써보지만

예전 같지 않은 대화가 한 줄 한 줄을 더 고민하게 만든다.

이전의 대화를 나누던 때와 지금의 시간 사이에서

서로는 어떤 시간을 보냈었는지 알 수 없고

그 시간 안에서 서로가 느꼈을 감정과

그것들이 쌓인 지금의 알 수 없는 상태가

더욱 조심스러운 대화를 만들어간다.

같은 대화를 통해 내가 느끼는 감정을 상대에게 대입해 보며 추측하는 일이

고작 지금의 대화에서 할 수 있는 일의 전부가 된 느낌.

그러다가 영문을 모른 채 늦어지는 답장을 기다리는 일은

어쩐지 내게서 외로운 감정이 되살아나게 한다.

차라리 먼저 말을 걸지 않았더라면

그래서 이런 침묵 또한 없었더라면

지금의 외로움은 느끼지 않아도 될 것이었다.

이렇게 숨이 멎기 직전의 중환자실의 기계음과도 같은 대화가 이어지다가

결국 흔한 인사로 끝맺음을 맺고 나서야

조금 편히 숨을 쉴수 있게 된다.

애초에 혼자였더라면

어제와 그제와 같이 혼자인 하루를 보냈더라면

떠올리지 않아도 되었을 외로움은

결국 후회를 남게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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