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악의 신혼여행.

그럼에도 신혼여행은 신혼여행이었다. (107번째 이일)

by 김로기

남편과 나는 올해 결혼 10년 차를 맞이했다.

그냥 매일을 살았을 뿐인데

시간이 이토록 빠를 줄이야.

그동안 우리에게는 많은 일이 있었고

잊지 못할 일들도 많았다.

그중 하나는 바로 신혼여행이다.

나는 서너 번, 남편은 처음이었던 해외여행.

그렇게 우리는 서툴게 비행기를 탔다.

나 또한 해외가 익숙했던 친구들과의 여행이 전부였고

하물며 남편은 해외여행이 처음이었다.

그렇다고 둘 다 영어가 유창한 편도 아니었고

유창하기는커녕

가게마다 우리가 할 수 있는 유일한 말은 "디스 원" 뿐이었다.

그런 우리가 싱가포르를 경유해서 발리까지 일주일간의 여행이라니.

물론 발리에서의 일정은 가이드가 함께였기에 그다지 걱정이 없었지만

싱가포르에서의 이틀을 미리부터 너무 걱정하고 있었다.

나도 자신이 없었지만

난생처음인 남편을 책임져야 하는 신세가 되니

정신이 바짝 들 수밖에 없었다.

그래서였는지 싱가포르에서는 큰 무리 없이 잘 넘어갈 수 있었다.

그런데 진짜 문제는 발리였다.

싱가포르에서 발리로 넘어가는 비행기를 타고 이동하던 중에

어딘가 으슬으슬 한기가 몰려왔다.

나는 그저 비행기의 에어컨 바람이 너무 세서 그런가 싶어

기내의 담요를 턱밑까지 꽁꽁 싸매고 있을 뿐이었다.

그렇게 몇 시간 뒤 우리는 발리에 도착했고

비행기 안에서의 시원하고 쾌적한 공기와는 달리

발리의 날씨는 그야말로 숨도 쉬기 힘들었다.

낯선 도시의 낯선 모습의 가이드들이

각자 픽업할 커플들의 이름이 적힌 종이를 들고 서 있었고

우리는 그 수많은 가이드들 사이에서

선한 웃음과 함께 우리의 이름이 적힌 종이를 들고 있는 가이드를 발견했다.

처음에는 조금 낯설기도 했지만

무척 친절하고 상냥했다.

하지만 이제야 조금 마음을 놓아서일까

내 몸의 컨디션은 점점 극으로 달했다.

그 덥고 습한 발리가 입술이 바르르 떨릴 정도로 춥게 느껴졌다.

어쩌면 본격적으로 신혼여행을 즐길 차례였기에

나는 컨디션 따위는 곧 나아지겠지 싶은 마음으로

가이드가 안내하는 식당으로 향했다.

가이드를 통해 주문한 요리가 내어지고

그제서야 그 레스토랑의 분위기가 느껴졌다.

식당이라는 말보다 레스토랑이라는 외국어가 잘 어울리는 곳이었다.

우리는 앞에 놓인 치킨 스테이크를 먹고 숙소로 향했다.

덥고 습한 발리의 날씨를 피해 얼른 에어컨을 틀고 휴식을 취했다.

하지만 나의 컨디션은 시간이 갈수록 안 좋아지고 있었다.

얼른 씻고 쉬기 위해 욕실로 향했는데

밤하늘을 보기 위해 투명한 유리로 되어 있던 천정 위로 도마뱀들이 오가고 있었다.

징그러워 하기에도 몸이 받쳐주지 않아서 얼른 씻고 침대에 누웠다.

한결 나아진 몸이 되어 있는 다음날을 기대하며.

하지만 그 기대는 다음날도, 그다음 날에도 이뤄지지 않았다.

하물며 날이 갈수록 몸은 더 아파서

며칠 뒤에는 목소리조차 나오지 않았다.

한국에서도 잘 쉬지 않던 목소리였는데 먼 타지에서 몸살감기라니.

더운 나라에서의 감기는 생각지도 못했던 터라

가이드를 통해 현지에서 파는 감기약을 구해서 먹었다.

덕분에 조금 나아지나 싶으면 저녁엔 또다시 앓아누워야 했다.

호텔에서의 마사지도, 풀빌라에서의 수영도

모두 제대로 즐기지 못했다.

지금 생각하면 너무나도 아쉬운 것들이지만

그때는 정말 그럴 수밖에 없었다.

무엇보다 남편에게 많이 미안했다.

잘 때도 에어컨을 많이 켜지 못하고

옆에서 끙끙 앓던 나를 살피느냐 잠도 제대로 자지 못했을 것이다.

다시 한번만 그때의 신혼여행의 기회가 주어진다면

어느 하나 빠뜨리지 않고 즐길 수 있을 텐데.

생각할수록 아쉽기만 한 여행이었다.

신혼여행 후 목도 쉬고 야위어 있는 나를 보며

사람들은 그렇게 즐거웠냐며 놀리듯 말했지만

나는 그저 웃을 뿐이었다.

인생에서 가장 많은 비용을 들여 최고로 기대하며 떠난 여행이었지만

결국엔 최악의 컨디션으로 보내고 온 셈이다.

하지만 그렇게 아프고 힘들었던 신혼여행도

어쩔 수 없는 신혼여행이었던 건지

우리는 그 순간을 생각하면 웃음이 나곤 한다.

비록 많이 아쉬운 여행이었지만

그럼에도 우리에게 가장 행복했던 여행 중 하나로 기억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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