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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주를 좋아합니다.

나의 최애 여행지. (5번째 삼일)

by 김로기

스무 살이 조금 넘어서 처음 경주에 갔다.

경주는 역사적인 문화유산이 많은 곳이라

흔히들 수학여행으로 많이 찾는 곳인데

나는 초, 중, 고 모두 다른 곳으로 수학여행을 갔었다.

그 뒤로도 사실 경주에 대해 별 관심이 없었다.

그러던 어느 날 지인의 권유로 처음 경주 여행을 가게 되었다.

게스트 하우스라는 곳도 예약해보고

시외버스 티켓도 끊어 보고

그 이튿날 바로 경주로 향했다.

둘 다 처음 경주에 와본지라

경주역에 내려서 버스를 타고 시내까지 들어오는데

한참이 걸렸다.

신경주역으로 왔으면 빨랐겠지만

그 당시엔 경주역과 신경주역으로 나뉘어 있던 탓에 당연히 경주역으로 가면 되는 줄 알았다.

그리고 지금은 경주역이 없어지면서 신경주역이 경주역이 되었다고 한다.

이 글을 쓰면서 오늘 처음 알게 된 사실이다.

그렇게 돌고 돌아 시내로 들어와서 자전거 두대를 빌렸다.

그 당시 추석이 지난 지 얼마 되지 않았을 때라

아침저녁으로는 조금 쌀쌀했지만 낮에는 더워서 오래 걷기가 조금 힘들었다.

그렇게 우리는 자전거를 타고 경주여행을 시작했다.

가장 먼저 첨성대 부근으로 향했다.

왼쪽으로는 온통 초록의 넓은 벌판에 둘러 쌓여 가지런히 솟아있는 첨성대.

그 뒤로 적당히 높지만 둥글게 올라있는 왕릉들.

꼭 국산 텔레토비 동산 같다.

오른쪽으로는 첨성대의 풍경을 방해하지 않을 정도의 작은 건물들이 길게 늘어서 있었다.

웬만한 초록에는 모두 심장이 쿵쾅 대긴 하지만

그때의 무한한 초록과 아기자기한 건물들은

아직도 내게 가슴 벅찬 경주의 모습으로 남겨져 있다.

그 외에도 자전거를 타고 바람을 맞으며 달리던 돌담길과

골목골목 기품 있고 조용했던 한옥마을

자전거 페달을 세게 굴렀지만 중간에서 멈춰 걸어 올라갔던 석빙고 길 언덕까지

모두 너무나 아름다운 곳이다.

그 뒤로도 나의 최애 여행지는 언제나 경주였다.

기억 속에 남아있는 나의 고향은 늘 지금의 동네인데

나이를 좀 더 먹으면 경주로 이사해 살고 싶은 마음이 있을 정도였다.

요즘은 황리단길과 그 주변이 많이 알려지면서

사람도 많아지고 그에 맞게 변하고 있는 것 같아서 다행이긴 하지만

한편으론 내가 오랫동안 소중하게 간직하며 아껴왔던 느낌들이 사라질까 걱정도 된다.

많은 사람들에게 맞춰가기 위해

사람이 많이 찾는 다른 동네처럼 변해갈까 봐.

그래서 예전의 경주의 모습을 잃어갈까 걱정이기도 하다.

지금도 경주의 일부분은 지도가 필요 없을 정도로 구석구석 잘 알고 있지만

근래 몇 년은 경주에 가지 못했다.

사람이 너무 많아서.

내가 그리던

여유롭고 초록이던 경주를 보지 못할 것 같아서.

오랜만에 경주에 대한 이야기를 하다 보니

경주가 그리워진다.

올해는 시간을 내어 찾아가 봐야겠다.

변해가는 경주에도 변하지 않는 것이 있을 테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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