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키가 크고 뾰족한 나무.

드라코를 키우고 있습니다. (6번째 일일)

by 김로기

초록이라면 그저 오케이인 내가

이사하면서 가먼저 생각했던 인테리어는

화분이었다.

작은 화분보다는 나무가 심겨 있는 대형 화분을 원했다.

온갖 플랜테리어에 관한 사진들이 넘쳐나는 곳을 돌아다니며

거실 인테리어와 그에 맞춰 자리 잡은 나무들의 사진을 찾아봤다.

어느 집에나 있을 법한 흔한 나무 말고

유니크하면서도 키우기 쉬운 나무들 위주로 많이 찾아봤던 것 같다.

그중에서도 우리 집과 어울릴만한 나무는 뭐가 있는지 한동안 고민했었다.

그러다가 특이한 나무 하나를 발견하게 됐는데

마치 휴양지에 와 있는 것 같은 느낌을 주는 데다가 키우기도 어렵지 않다고 했었던 것 같다.

뾰족하고 길게 자란 녹색의 잎이 힘 있게 뻗어 있었다.

드라코였다.

드라세나 드라코.

용혈수라고도 불린다.

카페나 상가의 실내 인테리어로 많이 들여놓는 식물인데

그 당시에 가정집 인테리어 식물로도 인기를 끌었었다.

남편과 함께 양재동 꽃시장에 가서 눈으로 직접 보고 고르고 싶었다.

가격차이가 많이 나는 편은 아니었지만

맘에 쏙 드는 것을 찾기란 쉽지 않았다.

수형이 곧게 뻗고

천장에 닿지 않을 만큼 적당히 커야 했고

작은 새끼 자구가 함께 있는 것을 원했다.

힘든 줄도 모르고 들렀던 곳을 다시 들르기를 반복하며

두세 시간을 신중의 신중을 기해 나무를 골랐다.

오로지 나무만을 보면서 예쁘다 싶으면 냉큼 가게로 들어갔는데

"뭐가 맘에 들어서 또 오셨을까?" 하는

사장님의 말을 듣고

우리가 거기 있던 어떤 나무에 홀려

몇 번이나 그 가게로 다시 돌아왔다는 걸 알게 됐다.

우리는 결국 그 집에 있던 드라코로 결정했다.

예쁘게 뻗은 게 적당히 컸고, 마침 귀여운 새끼 자구도 달고 있었다.

그렇게 다음날 아침이 되고

우리는 오매불망 기다리던 드라코를 집으로 들였다.

꽃가게에 있을 때만큼 윤기가 흐르고 빛나 보이지는 않았지만

나름대로 내가 그리던 반려 식물의 모습을 갖추고 있었다.

그렇게 한 잎 한 잎 정성스레 닦아가며 나무에 활기를 불어넣었다.

그 정성에 보답하듯 안쪽부터 연하디 연한 초록의 새잎을 보여 주었다.

그렇게 반년쯤 같이 했을까.

집에 온 손님마다 꼭 한 마디씩 하는 말이 있었다.

"나무가 사람보다 크고, 뾰족하면 집 안에 안 좋은 일이 생긴데."

당연히 그런 말은 귀담아듣지 않으니 흘려버렸다.

내 눈에 예쁘고 정성을 다해 보살펴 키우는 중인데

그깟 풍수지리적인 관점에서 하는 말쯤이

믿는 사람에게나 통하는 법이라고.

별로 대수롭지 않게 생각했는데

요즘은 마음에 불편한 일이 생길 때마다 드라코를 떠올리게 된다.

무슨 일이 생길 때마다 핑곗거리를 찾게 되는 건지

아니면 나도 그 말을 믿게 된 건지.

당장 치워버리고 싶은 마음은 없지만

썩 마음이 편하지는 않다.

여전히 백 프로 그 말을 믿는 것은 아니지만

다음에 나무를 살 때는 키가 작고 둥근 잎을 가진 나무를 고를 것 같기는 하다.

굳이. 또 다른 핑곗거리를 만들고 싶지는 않으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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