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시는 꿈꾸지 못할.

그 시절 하루. (108번째 일일)

by 김로기

어린 시절을 기억하다 보면

대부분의 기억의 배경은 한 빌라에서 시작되곤 했다.

각 동마다 6 가구가 사는 3층짜리 건물이 서른 개쯤 되었던 곳.

그곳에 중간쯤 되는 곳에는 작은 놀이터가 하나 있었는데

구석구석 녹이 슨 철제 미끄럼틀과 철봉, 그네가 놀이기구의 전부였다.

그 놀이기구가 다리를 내린 곳에는 듬성듬성 패인 모래가 있었고

그 놀이터 바로 옆에는 낡고 좁은 건물의 경로당이 있었다.

하루 종일 얼굴에 꼬질꼬질 때를 잔뜩 묻혀가며 놀아도

어느 하나 나무라는 사람이 없었고

해가 떠있는 시간이면 그 빌라에 사는 어린이들은 모두 놀이터로 모여들곤 했다.

덕분에 부모들은 자기들만의 시간을 가질 수 있었다.

어디 갔나 걱정하지도 찾아 헤매지도 않았다.

당연히 그곳에 있을 것이라 생각했고 언제나 그곳에 있었다.

그 시절 부모들 자신의 시간이라고 해도

결국엔 비슷한 또래의 아이를 가진 엄마들끼리의 모임이었다.

한동네에서 유치원부터 초등학교까지 모두 같은 곳을 거친 아이들의 학부모들은

정말로 각자의 집에 작은 일까지도 모두 알고 있었다.

서로의 집에 숟가락이 몇 개인 줄 안다는 말은 과하지만

그날 저녁반찬이 무엇인지 정도는 모두 알고 있었다.

이른 점심을 먹고 느지막이 배가 고플 시간이면

어느 집에서 부침개라도 부쳐서 들고 나오곤 했다.

약속이라도 한 듯

어떤 날엔 다른 집 엄마가 줄줄이 요구르트를

어떤 날엔 또 다른 집 엄마가 손수 만든 깨강정을 잔뜩 들고 나와

놀이터에 있는 아이에게 먹이곤 했다.

그것이 남의 집 아이여도 달라질 것은 없었다.

그렇게 하루를 보내다 보면

놀이터에도 해가 저문다.

하늘이 붉게 물들기 시작할 무렵

매일 비슷한 시간이 되면

딸랑거리는 두부장사 아저씨의 종소리와 함께

부모들이 놀이터로 모인다.

한 손에는 저녁찬거리가 될 두부 한 봉지와

다른 한 손에는 때 구정물이 줄줄 흐르는 아이의 손이 붙들려있다.

아이는 더 놀고 싶어 계속해서 뒤를 돌아보지만

결국 엄마의 손아귀에는 더 힘이 들어가고 만다.

어린 시절의 그 하루가 한 번씩 생각이 난다.

한 아이를 키우려면 온 마을이 필요하다는 말처럼

그 시절 동네의 모든 부모는 서로의 자식을 지키는 눈이 되었고

좁은 상에 자리 하나 내어 남의 새끼 밥 한 끼 먹이는 일이 빈번했다.

그 시절 하루를 떠올리면 더 애틋하고 그리운 이유는

지금은 절대 꿈꾸지 못할 풍경이라는 것을 너무 잘 알고 있기 때문일 것이다.

모두의 사정이 있고 이미 변해버린 시대를 어찌할 수는 없지만

그 시절이 생각나고 그리운 것 또한 어쩔 수 없는 일이 되어버린 듯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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