첫데이트는 김밥천국.

제육덮밥과 오징어 덮밥. (110번째 삼일)

by 김로기

가끔 논란이 되는 글들이 모여있는 사이트에서

남녀간의 첫데이트에 관한 글들을 본적이 있다.

당연히 분위기 좋고

당연히 깔끔하고 세련된 곳.

거기에 맛까지 더해진 그런 곳에서의 첫 데이트를 상상했더니

왠 찌개집이나 백반집, 혹은 분식집을 방문했던 일들이다.

그러한 글들 아래에는

예의가 없다는 얘기부터 당장 헤어져야 한다는 등의

비난을 일삼는 댓글들이 넘쳐났다.

그런데 나는 그런 댓글을 보며 피식 웃음이 터져 나왔다.

사실 내 이야기와도 다를바 없기 때문이었다.

때는 바야흐로 16년 전.

나는 남편과 사내연애 중이었다.

아니, 이제 막 연애를 시작했을 무렵.

내 나이 스물 둘에 남편의 나이가 스물 여섯이었다.

사귀기로 한지 일주일이 채 지나지 않았을때

남편과 나는 퇴근 후 첫데이트에 나섰다.

첫데이트라는 말 자체도 너무나 수줍던 시절이었다.

누구나 다 그랬을지도 모르겠지만

그때 우리는 유난히 순수하고 어렸다.

손도 잡지 못하던 우리는

한뼘정도의 거리를 두고 천천히 걸었다.

그리고 이내 도착했다.

지금도 기억하는 우리의 첫데이트 장소에.

바로 '김밥천국' 이었다.

사실 그때 나는 어쩌면 첫데이트와는 어울리지 않을지도 모르는 그곳에 대해

아무런 생각이 없었다.

그저 떨리고 과연 밥이 넘어가기나 할까 싶은 두근대는 마음뿐이었다.

그때 남편은 제육덮밥을 나는 칼국수를 시키려다가

그마저도 남편이 밥을 먹으라며 오징어덮밥을 권했던 기억이 있다.

사실 맛 같은 건 전혀 기억이 나질 않는다.

그때 우리를 둘러싼 다른 이들의 공기는 여느때와 같이

정신없고 소탈했겠지만

우리 둘은 전혀

다른 곳에 있는 듯 했으니까.

지금생각하면 조금 서툰 첫데이트 장소였을지는 몰라도

그때 우리가 가졌던 마음이나 떨림만큼은

누구도 부정할 수 없는 풋풋한 첫데이트의 모습이었다.

김밥천국.

물론 맛있다.

그래서 좋아하는 메뉴 또한 다양한 곳이다.

더군다나 저렴한 메뉴들이 많아서 평소에 자주 찾는 곳이기도 하다.

하지만 아마 그때보다 조금 많은 것을 경험하고 알게 된 지금에서는

그 당시의 상황을 마냥 웃으며 받아 들일 수 있을까 싶기는 하지만

그 시절 우리에게는 사실 장소 같은 건 중요하지 않았다.

우리는 그날 처음으로 마주앉아 수줍게 밥을 먹었고

떨리는 마음으로 그 보다 더 떨리는 손을 잡았다.

그날만큼은 무엇이라고 한들

순수하고 설레는 우리를 비난하지는 못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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