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 칼과 낡은 칼.
새것의 설렘보다 익숙한 것의 유대가 더 끌리는 법. (31번째 삼일)
결혼할 때 칼세트를 샀다.
어떤 집은 시어머님이 주방용품을 사주시는 것이라고들 하는데
나는 그냥 내가 사고 싶은 칼세트를 샀다.
흔히 쌍둥이칼이라 하는 독일제 세트를 구매했었는데
결혼 후 처음 2년까지는 작은 과도만.
그 이후는 다른 칼 하나만 사용하고 있다.
몇 년을 같은 칼을 사용하다 보니
많이 무뎌지고 낡아 조금 불편한 감이 없지 않지만
그럼에도 다른 칼을 꺼내 쓰지 않는다.
사실 조금 무섭다.
당연히 새 칼이 잘 썰리고 편하겠지만
그래서 더 무섭다.
한편으로는 무딘 칼이 잘 썰리지 않기에 손이 베일 위험이 더 크다고 하던데
빛나는 새 칼의 위엄이 나를 여전히 낡은 칼로 손이 가게 만든다.
사용하는 용도에 따라 칼이 나뉘어 있겠지만
나는 내 손에 익숙해진 낡은 칼을
여러 가지 용도로 사용하고 있는 중이다.
결혼한 지 햇수로 십 년이 다되어가다 보니
집안 살림살이 중에 조금 오래된 것들이 꽤 있다.
예를 들면
앞서 말한 칼이라던지.
이가 조금 나간 유리컵.
그리고 균형이 안 맞아 비틀거리는 빨래건조대까지.
셋다 흔히 뽕을 뽑았다고 말할 수 있을 정도로 많이 사용했고
이제는 버려도 이상하지 않은 것들이지만
그렇기에 유난히 애착이 가는 것들이다.
이가 나간 그릇은 집안에 두는 것이 안 좋다고들 하고
빨래건조대도 더 큰 것으로 사는 것이 어떻냐고들 하지만
그럼에도 오래 함께한 것들은
쉽게 버릴 수가 없다.
새로운 것과 새롭게 시작하는 것도 물론 설레는 일이지만
그보다 나와 오랜 시간 함께한 것들은
설렘을 넘어선 깊은 유대가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