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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훌리아 Nov 07. 2015

쉬운 여자 - 박성경

용서하기 위해 용서하지 않겠어

#01_

우리가 자기 앞에 놓인 생에 예정된 고통을 미리 안다면, 너무 고통스러워 견딜 수 없을 것이다. 첫발을 내딛을 용기조차 생기지 않을 것이다. 하지만 우리는 모르기 때문에 용감하게 시험관 아기를 시도하고, 히말라야에 오르고, 사막을 횡단하고, 이혼을 서두른다. 그리고 이렇게 말하는 것이다. 이렇게 예쁠 줄 몰랐어. 당장 둘째 아기를 시도해야지. 이렇게 자유로울 줄 몰랐어. 다음엔 에베레스트를 정복해야지. 이렇게 멋진 줄 몰랐어. 다음엔 오아시스 없는 사막을 횡단해야지. 이렇게 외로울 줄 몰랐어. 당장 재혼해야지....



#02_

내 생의 목표는 자아를 잃고, 자아를 없애며, 자아에서 도피하는 것이었다. 나는 모든 성장영화와 성장소설과 텔레비전의 성장드라마를 혐오했다. 나는 정체성을 잃고 싶었다. 자아에서 어떻게든 도망치고 싶었다. 하지만 그럴수록 나는 바위에 부딪혔다가 부서져 내리는 파도처럼 물거품이 되어 흔적 없이 사라져갔다. 사람들은 모른다.  파도의 상처를 물거품이 되어 사라지는 순간 고통도 함께 사라지는 게 아님을....



#03_

사람들은 용서의 의미를 모른다. 용서의 시기도, 본질도, 정의도 모른다. 용서란 절대자가 용서하기 전에 내가 먼저 용서하는 것이 아니라, 절대자가 용서하고 난 다음에 뒤늦게 용서해주는 것이 아니라, 끝까지 절대로 용서하지 않는 것이다.


용서하고 싶은 마음이 목가지 치받쳐 올라와도 용서의 유혹을 뿌리치는 것이다. 그가 용서받지 못한 고통에 몸부림치며 죽어갈 때까지 두 눈을 똑바로 뜨고 지켜보는 것이다. 그리하여 그의 고통을 고스란히 내가 가져오는 것이다. 온전한 나의 고통으로. 그리곤 죽을 때까지 그를 용서하지 않았다는 죄책감에 시달리는 것이다. 고통과 죄책감의 팽팽한 시소놀이가 바로 용서다.


양쪽 모두  동등해지는 게임. 이 동등함이 용서의 본질이다. 하지만 우리는 죽을 때까지 용서의 본질에 다가가지 못한다. 용서를 하는 쪽이든, 받는 쪽이든 용서 뒤에는 분노와 억울함이라는 불균등한 감정만이 남는다. 나는 엄마에게 그리고 아버지에게 속으로 외친다....


당신들을 용서하기 위해 용서하지 않겠어



#04_

아가야, 사랑 때문에 불행하다고 해서 네가 사랑한 사실을 후회하진 말아라. 인생에서 중요한 건 오직 하나, 사랑했다는 사실. 그것뿐이란다...






 슬프게 웃음 짓게 만드는 책이었다. 가벼웠지만 결코 가볍지 않 이상한 책이다. 주인공 '나이지' 언제 행복해 줄 건가요?라고 생각하면서 읽었다.. 그렇게 하다간 행복할 수 없을 지도 모르니깐 정신 차리는 게 좋겠어...라고 속으로 좀 원망을 하면서... 이지는 삶을 즐기란다. 즐길 수 없을 때라도...






by 훌리아

http://m.blog.naver.com/roh222/22015221259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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