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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훌리아 Nov 10. 2015

아우라- 카를로스 푸엔테스

 환상문학

내가 죽어도 영원히 날 사랑할 거예요?


내게 명령하는 목소리 계략적이고 환상에 휩싸인 듯 내 이름 '펠리페 몬테로'라 부르지만 신문 어디에도 이름은 적혀있지 않다. 젊은 사학자를 구하는 신문광고에 마법을 부린 것처럼 '펠리페 몬테로'를 돈 셀레스 거리 815번지(멕시코시티 구시가지)로 오게 만든다. 카를로스 푸엔테스 <아우라>를 드디어 읽는다. 궁금증을 불러일으키는 리뷰였었다. 읽으면 어떤 기분이 들까? 궁금했었다...



스페인 식민지 시대 궁전들이 있던 터에 수선소, 시계방, 구둣방, 상점가로 변해버린 길을 지난다. <아우라> 책 표지만을 보고는 몇 세기 이전으로 가는 것일까? 궁금했는데 펠리페 몬테로는 버스를 탄다. 일단 버스는 있는 시대라니... 마법사라도 나오는 줄 알았기에 다소 아쉬움을 느꼈지만 곧 사라졌다. 나는 펠리페 몬테로라는 젊은 역사가가 되어 의식의 저편에서 들리는 목소리에 따라 천천히 도착할 그곳으로 간다. 시시해진 외부 세계 따윈 잊어버리고 이 책 속으로 끌려들어 가는 듯했다. 문이 닫히면 책을 덮으면 다시는 나오지 못할 곳이 아닐까 하는 상상이 들게 해서 재밌었다.


< 마법의 주문 >
남자는 사냥을 하고 투쟁을 한다. 여자는 계략을 짜고 꿈을 꾼다. 그녀는 환상의 어머니이자 신들의 어머니이다. 그녀에겐 또 다른 눈이 있고 욕망과 상상력을 펼칠 수 있는 무한정 비행할 수 있는 날개가 있다. 신은 남자와 같아서 여성 품속에서 태어나고 죽는다.


날카롭고 카랑카랑한 목소리, 온기 없는 손가락, 백발, 늙어서 오히려 어린아이처럼 보이는 얼굴을 한 부인의 모습은 썩은 화초의 축축한 냄새와 어둠 속에 있어야만 하는 오랜 된 집과 같았다. 그 노부인은 무슨 고집을 부렸던 것일까? 지켜온 고집을 버리고 신문광고를 내었다고 한다. 60년 전에 죽은 남편 요렌테 장군의 원고들을 정리해서 출판하는 일을 자신이 죽기 전에 끝내려 한다고 몬테로에게 얘기한다. 곧 남편 방식대로 편집하는 법을 습득하게 될 거라는 말과 함께...

예수 그리스도, 성모 마리아, 세바스티안 성인, 루시아 성녀, 미카엘 대천사와 웃는 악마들. (중략) 고통과 분노의 이미지 속에서 유일하게 미소 짓는 것은 악마들뿐이네. 촛불에 비치 해묵은 판화에서 죄인들의 피부에 삼지창을 쑤셔 대고, 그들에게 가마솥에서 끓는 물을 끼얹고, 여성들을 강간하고, 술을 진창 마시고, 성들에게 금지된 모든 자유의 과실을 따먹어.(중략) 고통에 신음하는 성모의 눈물과 십자가에 못 박힌 예수의 피, 악마 루시퍼의 향락, 대천사의 분노, 알코올을 가득 채운 플라스크에 보관한 창자들, 그리고 은으로 만든 심장 같은 것들로 가득 차 있어. (P27)



몬테로는 노부인의 조카이자 벗이며 아름다운 초록빛 눈을 가진 아우를 만나게 된다. 그는 미적거리던 마음을 확신으로 바꾸고 노부인의 집에 머물며 원고들을 정리하기로 마음먹는다. 그는 '아우라'라는 그 이름을 또 한번 되새긴다. 맑고 영롱한 녹색 눈에 현기증을 느끼기도 한다. 불순한 생각에 자신의 감정을 억제하려 애쓴다. 그녀 또한 그를 끈 떡지게 이곳에 붙잡아두려 한다...



노부인이 가지고 있는 열쇠와 열쇠가 없는 방으로 안내받은 몬테로... 소중한 추억이 가득한 곳이 이 집인지 이 육신인지 이 시간인지 알 수 없게 만들었다. 자신이 죽어야 여기서 끄집어낼 수 있다고 말하는 여기란 어디를 말하는 것일까? 이 집인지 이 육신인지 이 시간인지 모를.... 콘수엘로 부인은 그에게 열쇠를 맡긴다.



책을 끝까지 읽기도 전에 무척 슬픈 예감이 들었다. 이 집으로 들어갈 때 나올 것인지 말 것인지 그 선택을 하게 되리란 생각이 들었었다. 그 선택의 열쇠를 쥐여준 느낌이었다. 끄집어낼 것이 결국 '나'였을까? 이 집(공간)에서 이 육신에서 이 시간에서 끄집어 내야 할 존재는 바로 나....



돌아오는 것도 떠나려고 하는 것도 갑작스럽다. 실재한다고 믿을 수밖에 없는 눈으로 따라가는 것이 아니라 귀로 쫓을 뿐이다. 빛이 쏟아져 나와 소스라치게 놀란다. 어둠과 극명하게 대비되는 것을 새삼스럽게 깨닫는다. 세상이 사라지는 것은 왜 이리 더딘지 원망하고 주체할 수 없는 눈물을 쏟는다. 신앙에 의지해서 얻을 수 있는 것은 기쁨 밖에 없다. 빨간 눈의 토끼는 등 뒤로 나를 힐끔 보곤 어디론가 뛰어가 버렸다. 이 집은 미로 같은 생과 사의 터널 속으로 들어간 듯한 느낌이었다....



몬테로는 어서 원고를 읽고 좋은 문단을 베끼고 수당을 받아 자신의 연구에 매달리기를 바란다. 그 연구는 16세기 초부터 17세기 말에 이르는 작품을 정리하고 요약하는 것이다. 요렌테 장군의 원고를 출판하는 일을 끝내는 일이 우선이었지만 그는 그가 기록한 서술한 역사적 사건들은 뒤로 하고 초록 눈동자의 여인이 등장하는 대목을 찾아 읽을 뿐이었다.



이 올가미가 누구의 올가미인 것일까? 포로가 된 자, 자유를 달라는 사람은 대체 누구일까? 자신의 의지와 상관없이 갇혀 살고 있는 사람이 누구일까? 도망쳐 나오는 것은 알고 보면 너무나 쉬운 일.... 몬테로는 아우라의 기계적인 동작이 늙음, 불만, 고통, 중병, 근심, 외로움, 광기의 노파의 동작과 하나가 되는 것을 본다. 노파에게 젊음과 아름다움에 대한 허상을 지속시켜 주기 위한 것처럼 거울 속에 갇혀있다고 믿는다.

100년이 지나도록 항상 녹색 옷을 입고, 항상 아름다운 그녀.
너는 네 미모에 대해 워낙 자신이 있잖아, 젊어 보이기 위해서는 무슨 일인들 못 할까?(p41)



별빛도 없는 밤의 어둠 속에서의 기억, 그 촉감, 그 육체, 그 전율, 간직하고픈 몬테로는 아우라를 욕망하면서 해방시키려 하면서 아무것도 못한 채 요렌테 장군의 원고를 읽는다. 그녀가 고양이를 양을 짐승을... 고문하는 것을 발견한다. 요렌테 장군이 그랬던 것처럼 몬테로가 그랬다. 몬테로는 아우라와 노파를 동시에 보고서 확신했다. 참혹한 광경을 잊기 위해 꿈으로 빠져든다.

**

언제까지고 저를 사랑할 거예요?

영원히, 아우라, 영원히 널 사랑할 거야.

영원히라고요? 내게 맹세할 수 있나요?

맹세하지.

내가 늙어도? 미모를 잃어도? 백발이 되어도?

내 사랑, 널 영원히 사랑할 거야.

내가 죽어도 영원히 날 사랑할 거예요?

정말 죽어도 날 사랑할 거예요?

영원히, 항상. 너에게 맹세하지.

그 어떤 것도 너와 날 갈라놓을 수 없어.(p49)



아우라가 네게 바라는 것이 무엇일까? 사랑의 맹세? 자식을 갖지 못한 요렌테 장군은 콘수엘로가 자신의 사랑만으로 충분하기를 바라지만 콘수엘로 부인은 그러지 못 했다. 자신의 생명으로 또 다른 생명을 만들어 내어 청춘이 오고 있다고 여겼다....



고독 속에 누워 있는 몬테로 유혹을 이겨내지 못 했다. 알 수 없는 우수, 횡격막을 누르는 압박감, 까닭 모를 슬픔을 온전히 느꼈다. 이중적인 어떤 존재, 너 자신의 분신, 너의 또 다른 반쪽을 찾으라고 속삭인다. 언제나 너를 타성에 젖게 하는 상상보다 더 강한 존재를 느낀다. 아우라가 노인과 함께 있는 사진을 본다. 그런데 그 노인은... 바로 당신... 자신을 지우고 잃어버린 채 살아온 것은 바로 나...

**

너는 이제 다시 시계를 보지 않을 거야. 그 쓸모없는 물건은 인간의 허영심에 맞게 조정되어 거짓 시간을 재고, 지겹도록 긴 시간을 표시하는 바늘들도 진정한 시간, 즉 모욕적이고 치명적으로 흘러서 그 어떤 시계로도 잴 수 없는 시간을 속이는 것에 불과해. 한 평생, 한 세기, 반백년.(p59)



키냐르 소설을 읽고 나서는 모든 소설이 키냐르 보여준 환상처럼 느껴진다. 물 아래로 떨어지는 돌멩이 하나가 사라진다. 물에서 동심원들이 퍼진다. 원들이 사라졌지만 완전히 사라진 게 아니다. 그 자리에 또 하나의 돌멩이가 떨어지고 있다.. 모든 작품은 물속에서 납작해지는 바위의 한 면에 비유될 수 있다고 말한다. 과거에 그랬듯이 되풀이되는 미래에서 사라진다..



콘수엘로가 고집부린 것은 아마도 망각 속에서 아우라를 몬테로를 부른 것일테다. 우리는 순서가 거꾸로 된 것도 모르고 처음엔 눈치채지 못한다. 깊은 심연 속에서, 고요한 꿈속에서, 침묵 속에서.... 경계가 희미한 황금색 빛이 어디서부터 나오는지 그 빛의 근원을 찾으려고 위로 쳐다볼 뿐이다. 우리가 힘겹게 삼킨 것... 본능에 따라 움직이고 자연스럽고 자유로운 존재다.. 이 모든 게 네가 상상해 낸 이미지에 불과할지라도...

하늘은 높거나 낮지도 않아요. 우리 바로 위에 있으면서 동시에 우리 아래 있어요.(p47)



이야기는 정말 빨리 끝나버린다. 62페이지에서.. 작가 자신의 읽고 쓰기에 관한 이야기가 책의 절반쯤이다. 읽지 않고 넘겨버렸다. 신은 남자와 같아서 여성 품속에서 태어나고 죽는다... 이 주문 같은 글이 책의 전체를 지배하는 그 목소리란 느낌이었다. 몬테로가 그 집에서 나오는 것은 너무나 쉬운 일이지만 그는 육신과도 같은 그 집에서 몬테로가 아우라를 사랑한 채 잠들 거란 생각이 들었다. 책을 읽으면 계속 같은 이야기를 반복하는 것 같아서 슬퍼진다...




by 훌리아

http://m.blog.naver.com/roh222/22015221259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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