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명(共鳴)
'공명(共鳴)'
남의 사상이나 감정, 행동 따위에 공감하여 자기도 그와 같이 따르려 함.
일본 소설 특유의 조심스러운 여성의 읊조림을 듣게 된다. 스스로 자기 목숨을 끊는 것에 대한 단 '두 글자'를 내 입을 통해 나와버리는 것은 안타까움만 남는다. 담기 어렵고 마음이 무겁다. 남은 가족들은 그 사람을 어떻게 떠올리고 있을까? 잃어버린 존재에 대한 귀 기울임이 이어지고 있었다. 울고 싶은 기분이 들었다.
당신이 자살할 만한 어떤 이유도 짐작할 수 없었습니다.(p22)
가난에서 한 발자국도 벗어나지 못한 채 살고 있었지만 그녀는 만족했다. 전 남편은 전차를 피하지 않았고 치이는 순간까지 똑바로 걷고 있었다고 한다. 그녀는 그의 잔상이 남은 풍경과 소리와 냄새에서 도망쳤다. 오쿠노토의 최북단에 있는 쇠락한 어촌으로 온다. 자신의 아들 유이치, 자상한 지금의 남편 다미오, 전 부인 사이의 딸 도모코, 68세 시부와 함께 살게 된다. 시집온 지 3년째, 32살 유미코의 일생은 아직 진행 중이다. 그가 죽은 지 7년이 지났다.
내내 바깥에 시선을 둔 채 죽어버린 당신과 이야기를 했습니다.(p45)
죽은 자를 자꾸만 떠올리면 안 된다고 하는 이야기를 들어서 알고 있다. 불려간다는 이야기.. 그래서 속된 말로 그렇게 죽어버린 사람들의 가족들 또한 멀리하라고.... 주변의 부정적인 시선에 또 다른 의미로 피해자가 된다는 이야기를 들어서 알고 있다. 유미코는 이유라도 알 수 있다면 그를 쫓지 않았을지 모른다. 이유를 모르기 때문에 그의 마음을 알고 싶기 때문에 그를 부르는 것일까?
대체 당신은 그렇게 해서 어디로 가고 싶었던 것일까.(p57)
이해할 수 없다. 생은 그런 것이다. 죽음은 영원히 알 수 없는 채 다다른다. 비로소 알게 된 순간 사라진다. 죽음은 그런 것이리라 생각한다. 그런데 어떤 절망, 어떤 회한, 또 무엇이 있을까 죽음을 선택한 사람들의 마음은 복잡한 것일까 단순한 것일까 그것을 알고자 하는 것도 산사람의 몫인가 하는 생각이 들었다.
이것이 해명(海鳴) 인가, 하고 저는 진지하게 귀를 기울였습니다.(p51)
피를 나눈 자의 애원하는 소리에도 절대 귀를 기울여주지 않는 뒷모습이었습니다.(p59)
해명의 울림에도, 바람소리에도, 멀리 바라다볼 뿐인 거친 바다에도, 뒤쪽에 있는 좀 더 높은 이시구로 산의 나뭇잎이 흔들리는 쓸쓸함에도, 그리고 그것들에 휩싸여 고요히 흩어져 있는 민가의 분위기에도 어느새 위화감을 느끼지 않게 되었습니다.(p53)
폭풍은 잦아들었지만 한겨울 소소기 해안은 눈이 섞인 파도와 바람에 뒤덮입니다. 귀청을 찢는 듯한 해명도 그 한복판에서 살고 있는 사람에게는 이미 소리가 아닙니다. 그저 익숙해진 평범한 소리 같은 것으로....(p77)
이 책 속엔 4개의 단편이 있다. <환상의 빛> <밤의 벚꽃> <박쥐> <침대차> 그중에서도 첫 번째 <환상의 빛> 유미코의 이야기가 가장 기억에 남는다.. 이웃분의 리뷰가 인상적이어서 오랜만에 일본 소설을 읽게 되었다. 5월의 푸른 날 읽기엔 다소 무겁고 슬픈 것이었지만 또 내가 모르는 슬픈 자들의 마음을 헤아릴 수 있지 않을까 생각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