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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훌리아 Dec 02. 2015

프랑스 상스에 은둔해 있는 파스칼 키냐르를 찾아서

독서와 글쓰기 영감의 원천

사회와 철저히 단절한 채 은둔하는 파스칼 키냐르의 '은밀한' 삶의 방식

Pascal Quignard


파리에서 110킬로미터 떨어진 상스의 욘 강변은 작품 속에서 종종 등장한다. 번역가 송의경(여성)씨가 직접 키냐르 만난 후기가 <떠도는 그림자들> 뒤편에 실려있다. 나는 123페이지를 읽다 말고 뒤편을 읽기 시작했다. 이 책을 오래 보던 터라 기분전환이 필요했다. 하루만이라도 읽어버리고 말 책을 이토록 오래 읽도록 만드는 작가라니 궁금했고 언제나 궁금하다!


실제 키냐르 정원의 잔디밭은 욘 강에 바로 맞닿아 있었는데 <빌라 아말리아> 여주인공 '안'이 떠오른다. 그녀는 조르주의 오두막을 은신처로 삼고 생의 마지막까지 홀로 저무는 해를 바라본다. 작품 속에서도 욘 강이 때때로 그려졌었다.... 그와 그의 누이 마리안이 살고있는 곳이라고 했던가? 꼭 <신비한 결속>에서 클레르와 폴처럼 느껴졌다. 그들은 (키냐르를 포함해서) 풍경속으로 사라질 준비를 이미 끝낸 것 처럼 느껴졌다...


오랜 시간을 침묵과 고독 속에서 살아온 사람이지만 인터뷰도 하고 책 소개도 하고 사람도  만나겠지?라고 생각했다. 그렇지 않고서야 세상 밖으로 이 책이 어떻게 나왔을까? 번역가 송의경 씨는 키냐르 첫인상을 한없이 맑고 깊은 눈길, 피로를 견디지 못해 갈라지는 낮은 목소리, 단어 하나하나를 애정으로 어루만지듯 발음했고 질문에 막힘없이 답변했다고 한다.


개인의 삶, 어린애가 18개월쯤 언어를 체득하기 시작한 것으로 우리는 간주한다. 이 때까지가 대략 최초의 왕국과 마지막 왕국의 사이의 통로가 되는 시기다. 길게는 3~4살까지 '옛날'이라고 부르는 무엇과 직접적인 연속성을 가질 수 있는 시기다. 우주의 시초에는 시간성이 없으며, 이 원초적 분출은 지금 이 순간에도 계속되고 있다. 최초의 왕국은 원초적 분출 혹은 옛날과 연속성이 있다.


그는 최초의 왕국과 마지막 왕국만 있다. 우리에게 익숙한 '시간'의 개념(과거-현재-미래)과 다른 형태로 재구축했다. 원초적 분출이 일어난 상류에는 모든 것들이 혼재된 '옛날'이다. 과거-현재-미래는 옛날-과거(마지막 왕국의 거주민, 나)로만 존재한다.


<최초의 왕국에 접근할 방법>
1) 독서는 이상한 경험이다. 독서는 다른 정체성과 결합한다는 점에서 무모한 경험이다. 우리의 언어가 다른 언어 속으로 들어가 태아처럼 변하기 시작한다.  말없이 온전히 자신을 맡긴다.
2) 글쓰기에는 의지가 개입되기 때문에 훨씬 덜 흥미롭다. 독서보다는 수동적으로 자신을 맡긴다.
3) 자연의 관조, 몰아의 경지
4) 첫눈에 서로 강렬한 사랑에 빠지는 그런 사랑을 꿈꾼다. 사회 혹은 공동체는 두 구성원(남과 여)이 등을 돌린 채 그들만의 결속을 이루는 것을 참지 못한다. 각 계급의 구성은 규칙에 따라 결혼하고 자식 낳아 재생산에 참여한다. 비극은 사랑에  있다기보다 사회의 구성원에 있다.


내가 음악에 대해서 모르는 것이 유감이다. 키냐르는 두 단어를 놓고 망설일 때 언제나 음의 울림이 좋은 쪽을 택한다고 한다. 그의 작품에서도 그렇고 쿤데라의 <소설의 기술>에서도 느꼈지만 음악의 구성처럼 글을 구성한다는 느낌이 든다. 몰아가는 글, 빠르게 느리게 때론 작은 공백을 두는 것, 그리고 보조 선율을 넣는  것처럼 글을 쓴다는 느낌이 들었다. 본문에 제목이 없는 것도 모든 나날을  이야기하겠다는 것도 불쑥 나타났다 사라지는 이미지도 음악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흐르는 강물을 보며 작업합니다. 나는 내가 쓰는 글이, 비록 단장 형식을 취하고 있지만, 저 강물처럼 융합되어 흐르기를 바랍니다.(p238)



그는 자신처럼 독서를 생명 유지에 필수적인 욕구로 느끼는 단 한 사람의 독자를, 그의 두 눈을 떠올리며 글을 쓴다고 한다. 그는 번역가 송의경 씨에게 번역하다가 흐름이 방해되면 과감히 삭제해도 무방하다고 한다. 그의 글은 한 문장 거의 완성에 가깝다고 느끼기도 하는데.. 이 한 문장이면 충분하니깐 방해되면 다음 문장은 삭제해도 상관이 없다고 말하는 것 같았다..


영감의 원천.. 그는 종종 사전에서도 사라진 단어들을 불러낸다. 사라진 언어를 불러낸다는 것은 그 언어뿐만 아니라 그 언어를 사용하던 문명을 부활시키는 것이기도 하다. 작가가 왜 원어로 읽고 싶어 하는지에 대한 이유라고 하면 좋을까? 김운하 작가가 희랍어를 배워서 원어로 읽고 싶은 이유가 궁금했는데 해소되는 것 같다.


키냐르는 인류 전체의 진실을 다룰 수 있다고 믿지 않는다. (진실은 밝혀지지 않은 채 유죄를 받는 삶이라고 하지 않았던가...) 그는 진실을 문제시함으로써 접근하고 싶었다고 한다. <은밀한 생> 작품은 그가 인류 역사의 2천 년을 조망해 보려는 시도였다고 말한다. 그리고 마지막 왕국 의도된 순서대로 독자들이 가급적 따라주길 바랐다는데.. 나 2-3-1 순서로 읽어버렸다. 전체가 15~16권이라고 한다. 그리고 <은밀한 생>이 8권 9권에 해당한다고 한다. 이건 뭐지? ^^; 자신도 그 당시에는 알지 못했다는 말이 참 재밌다. 강요할만한 순서 따윈 없던 걸로!


<글이 지닌 장점>
무엇에 대해 쓴다는 것이 다시 체험하는 것이 아니라 그 고통에서 멀어지는 방법이기도 하며 몰아내기 위한 글쓰기, 떼어놓기 위한 글쓰기라 읽는 자에게 고통이 채워지지 않고 쓰는 자에게는 빠져나가는 것이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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