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랑과 죽음 그리고 글쓰기'
Y. A. 누가 당신을 기억할까요?
M. D. 젊은 독자들. 어린 학생들.
M. D.는 마르그리트 뒤라스 Marguerite Duras를, Y. A.는 얀 앙드레아 Yann Andrea를 지칭한다. 얀 앙드레아는 뒤라스와 십오 년간 함께한 서른다섯 살 연하의 연인이다. <이게 다예요>는 뒤라스가 죽기 일 년 전이 1955년에 발표한 작품이다. '가장 뒤라스적인 작품'이라는 평을 받았다고 한다.
마르그리트 뒤라스
뒤라스는 1941년 프랑스 식민지였던 베트남 남부의 지아딘에서 태어났다. 18살 되어서 프랑스로 건너와 소르본 대학에서 수학, 법학, 정치학을 공부한다. 1943년 <철면피들>작품으로 소설가 데뷔, <태평양을 막는 방파제> <모데라토 칸타빌레> <부영사> 등을 발표한다. 1984년 <연인> 작품으로 콩쿠르 상을 받고 장 자크 아노 감독의 영화로 제작되어 세계적인 성공을 거둔다.
세계대전 중 레지스탕스 활동을 했고 종전 후 알제리 전쟁을 반대해 드골 정권에 반기를 들기도 했다. 뒤라스는 정치, 사회활동 활발히 참여했다. 뒤라스는 1960년 <히로시마 내 사랑> 시나리오를 쓰며 영화와 연을 맺게 된다. 1966년 <라 뮤지카> 이후 <대표작 <이디아 송>(1974), <나탈리 그랑제>(1972), <트럭>(1977>, <캘커타 사막의 베니스라는 그의 이름>(1976) 등의 영화를 발표했다. 그녀의 영화 작업들은 유럽 영화사에서 독보적인 위치를 점한다.
<말의 색채 - 마르그리트 뒤라스가 말하는 나의 영화들>는 도미니크 노게즈-문학과 영상미학 강의자이자 여러 작가들의 작가론 집필, 페미나상 수상하며 단편영화를 제작하기도 함- 와 가진 대담을 기초한 것이며 뒤라스의 육성으로 듣는 영화의 탄생 배경과 제작 과정, 작가이자 영화감독으로서의 자신에 대한 솔직하고 담백한 증언들이 담겨있다.
집의 침묵, 말해지지 않은 것, 표현되지 않은 것을...... 내가 항상 어떤 것을 표현하고, 시도하고 싶어 하기 때문이에요. 아니 그보다는 여성들이 보여 주는 연속성 때문이라고 해야 하겠죠. 그 집을 거쳐 가고, 그곳에서 죽고, 아무 말도 하지 않았으며 결국 우리와 마찬가지의 삶을 살았던 여성들의 연속성 말이에요. (중략) 그 영화가 페미니즘적이라고 말하는 것은 쉽지만 사실은 아니에요. 우리는 여기에서 대단히 중요한 사실, 즉 여성적인 재료에 의한 공간의 점유, 여성의 출발점을 마주하고 있어요. (중략) 여자들은 단순하게 살아가죠. 우리의 불안, 아이의 고통에 대해 말할 때, 우리도 그렇게 말한다는 것을 인식하게 돼요. 우리는 삶을 창조하면서 죽음을 창조한다는 것을 알고 있어요. 왜냐하면 우리는 죽음을 피할 수 없는 대상들 밖에 만들 수 없으니까. 그리고 우리는 고통을 창조해요. 여성들이란 그런 존재죠. (중략) 집이라는 것은 주거 공간인데, 인간의 첫 번째 주거 공간이 바로 여성의 배니까요. - <말의 색채>에서 나탈리 그랑제 속 '집'에 대한 뒤라스의 말 -
아시아에서 유년기를 보낸 경험이 작품의 전반에 영향을 주었다는 인상을 받았다. 법학과 정치학을 배우고 실현한 그녀의 사상은 폭넓다는 생각도 들었다. 문학 외부에서 활동을 적극적으로 했고 자신의 영역을 영화로 확장시킨 것도 멋지다. 작가의 연혁은 그만 더듬자고 생각했는데 고쳐지지 않는다. 약간의 궁금한 점들 있지만 남겨두고 넘겨야겠다....
연인 얀 앙드레아를 모른다. 두 사람이 어떤 사랑을 이루려 했는지 모른다. 솔직히 이해는 어렵다고 생각했다. <이게 다예요>는 연인 얀과의 대화 또는 남기는 편지, 유서와도 같았다. 알 수 없는, 텅 비어버린, 신원이 없는, 얼마쯤 죽어 있는, 내가 없는, 존재하지 않는. 사라져버릴, 소용없는 일, 무관한 일, 무의미가 큰, 아무런 생각이 없는, 의욕도 용기도 잃은 뒤라스의 남겨진 흔적이었다.
뒤라스는 고독을 향해 직진하는 얀이 '죽음과 사랑'이 되고 싶어한다고 생각한다. 사랑의 종말의 시작을 서둘러 생각하라고 말하는 듯했다. 자신의 불확실한 삶을 그만 끝내고 싶다가도 그의 죽음과 삶에 대한 생각으로 멈춘다. 네가 사는 것 불행에 의해서가 아니라 절망이라고 네 짧은 편지들이 짜증스럽다고 말하여 준다. 나도 곧잘 어떤 의미를 담아 상대방과 나를 시험한다. 결백한 사랑이라고....
나는 당신에게 말하고 싶었지요.
당신을 사랑한다고.
그렇게 외치고 싶었지요.
그게 다예요. p13
뒤라스와 얀
뒤라스는 삶의 흐름에 관련된 일에 몰두하였다. 또 글 쓰는 일, 비극적인 일 속에 있었다. 그녀에게 글은 침묵이고 노래고 춤추는 것이다. 쓴다는 것은 말의 리듬과 아주 가깝다고 말한다. 자신에게 본보기는 없었고 언제나 복종하면서 불복종했다 한다. 글을 쓸 때 광기에 휩싸였다고.... 말은 이중의 무게를 지닌다고.... 뒤라스 스스로 원시적인, 예상 밖의 작가라 한다. 일생 동안 쓰는 것이 쓰는 것을 가르쳤다 한다.
그녀는 헛됨과 바람을 뒤쫓았을 뿐이다. 그리고 존재하느라 으깨진 채로 사물들의 끝에 서 있었다. 이제 마지막 새 텍스트 하나 쓰려고 있었다......
욕망의 미지未知를 죽도록 읽고 싶어 했던, 한 어린아이의 몸내음을 맡았던 방향 없는 사랑. 독서 텍스트가 지워질 때 모든 것이 사라지리라. p27
<마무리>
책의 끝으로 갈수록 가슴이 떨렸다. 무겁게 짓누르는 것도 같았다. 이 짧은 글들이 그녀의 마지막이라고 생각하니깐 그래서 슬펐나 보다.... 다른 이유가 또 있을까?..... 그녀는 죽음을 기쁘게도 부르는 것처럼 들렸다. 글을 쓰겠다는 욕망이 그녀를 살게 했는지도 모른다. 얀이 아니라 사랑 Amour의 결정체를 두고 말하는 것처럼 들렸다.
그녀는 하고 싶은 말을 다 하였을까. 이게 다라고.. 더 이상 할 말이 없다고... 말한다. 사랑한다고 외치고, 죽음 속으로 뛰어들지 말라고 말하여 준다. 마지막엔 사랑은 남겨두고 홀로인채 죽음의 kiss를 기다린다.(내가 한 상상이다) 그런 상상을 불러오는 뒤라스의 마지막 인사였다고 나는 생각했다.
<이게 다예요> <말의 색채>를 함께 읽었다. 뒤라스에 대해 전혀 아는 바 없어서 좀 더 알고 싶었다. 영화에 관한 이야기는 낯설고 집중이 되지 않았다. 가볍게 넘겼다. 나탈리 그랑제 속 여성과 집에 대한 뒤라스의 말이 기억에 남았다. "페미니즘적이라고 말하는 것은 쉽지만 사실은 아니에요. 우리는 여기에서 대단히 중요한 사실, 즉 여성적인 재료에 의한 공간의 점유, 여성의 출발점을 마주하고 있어요" 이 말은 내가 꼭 듣고 싶었던 말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