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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훌리아 Mar 26. 2016

밀란 쿤데라 '오해의 원인은 유머다'

 1부 파뉘르주가 더는 웃기지 않는 날 中

밀란 쿤데라
'독자들과 나 사이에 가장 빈번히 생기는 오해의 원인은 바로 유머다. '


밀란 쿤데라 전집 <배신당한 유언들>

1부  파뉘르주가 더는 웃기지 않는 날 中

 

0. 유머의 발명

유머는 까마득히 먼 옛날부터 인간이 실천해 온 게 아니라 소설의 탄생과 관계된 하나의 발명이라는 것, 웃음이나 조소, 풍자가 아니라 희극성의 특별한 한 종류라는 것.


1. 소설사회

소설의 도덕은 도덕적 판단을 중지하는 것이다. 소설의 지혜는 이해하기 앞서 판단하지 않는 것이다. 소설가는 도덕적 판단을 소설 저 너머로 보내 버린다. 비난은 독자의 일이다. 소설 행위란 타인에게 호기심을 품고, 자기 것과 다른 진실들을 이해하도록 노력하는 법을 가르쳐 준다.

도덕적인 판단이 중지된 상상적 장場의 창조는 엄청난 영향력을 가진 위업이다.
자기 고유의 도덕과 고유 법칙들을 토대로 하는 자율적 존재로 구상된다.



2. 탈 신격화

탈 신격화는 무신론이 아니다. 개인이라는 생각하는 자아가 만물의 토대로서 신을 대체하는 상황이다. 신앙심 또한 그의 주관적 세계에 속할 뿐이다. 현대를 거치면서 무신론의 세속화가 풍속의 일부가 되었다. 스탈린주의의 충격, 기독교의 기억을 지우려다 오히려 우리의 뿌리내린 동일 문화를 밝혔을 뿐이다.

과거가 없다면 우리는 실체 없는 그림자, 어휘 없는 추론가, 영적 무국적자들일 뿐이다.



3. 개인의 정체성, 자아의 정의

우리는 행동한다고 생각하며, 생각한다고 생각하지만, 우리 안에서 생각하고 행동하는 타자나 타자들이 따로 있다. "과거의 우물 "에서 우리를 원격조종하는 까마득히 먼 옛날의 습관들이다.

고통조차도 모방과 연장일 뿐이다.


4. 멋진 무질서

소설이 성찰과 일화가 나란히 펼쳐지고 한 이야기 속에 다른 이야기가 삽입되는 등, 규칙에 얽매이지 않는 그 혼합적 양식의 풍요로움과, 사건의 일치라는 규칙을 조롱하는 구성의 자유... 정교하게 계산된 기막힌 구성에서 오는 것일까, 아니면 순수한 즉흥의 도취에서 연유하는 것일까?

19세기는 구성의 예술을 만들어 냈지만 이 예술에 음악성을 부여한 것은 우리 세기.


5. 문학 비평

<명상으로서, 분석으로서의 문학 비평>

- 논하고 싶은 책을 여러 번 읽을 줄 아는 문학 비평

- 일 년 전, 삼십 년 전, 삼백 년 전에 탄생한 작품들을 논할 줄 아는 문학 비평

- 어떤 작품의 독창성을 파악하여 이를 역사의 기억 속에 기록하고자 하는 문학 비평


오늘날 문학 비평은 별생각 없이, 세상사의 흐름에 따라, 사회의 변화, 언론의 변화에 따라, 문학 뉴스에 관한 하나의 단순 정보로 탈바꿈해 버린 것이다.



6. 슬픈 이야기

소설은 다른 세계다. 유일 진리가 맥을 못 추는 곳, 악마적 모호성이 모든 확실성을 수수께끼로 만들어 버리는 지옥 같은 곳이다. 거대한 상대성의 사육제 같은 <악마의 시> 작품에서는 누구도 옳지 않고 누구도 완전히 틀린 게 아니다. 소설사회인 유럽은 자기 고유의 문화를 설명하고 옹호해야 한다. 소설의 아들들은 자신과 예술을 지키고 사랑해야 한다. 그렇지 않다면... 새로운 시대에 소설은...


악마의 시 저자 살만 루시디


<악마의 시>1988년 출간되고 1년 후 이란의 정치 종교 지도자 호메이니는 루시디에게 이슬람교 모독죄를 적용하고 이슬람교도들에게 루시디의 처형을 명령한다. 그 이후 작가 루시디뿐 아니라 관련 출판사, 신문사, 번역자들에게 수많은 테러를 일으키며 아직까지도 도피생활을 벗어나지 못하고 있는 바로 그 문제작이다.



7. 유럽 소설

유럽에서 근대의 새벽에 시작된 소설의 역사에 참여하는 소설들을 가리킨다. 이 소설들은 진화의 어떤 연속성 라블레나 세르반테스와 더불어 탄생한 그 역사적 기록에 연결되어 있다.


<소설의 발달단계>

#14~20세기 유럽 안

1) 위대한 선구자 보카치오의 이탈리아

2) 라블레의 프랑스

3) 세르반테스와 악당 소설의 에스파냐

4) 18세기에는 대하소설의 영국

5) 18세기 말경 괴테의 독일

6) 19세기 전적으로 프랑스

7) 19세기 3/4분기 때 러시아

8) 19세기 4/4분기 때 스칸디나비아

9) 20세기 카프카, 무질, 브로흐, 곰브로비치 등 중앙 유럽


#20, 21세기 유럽 바깥

10) 1920~1930년대 북아메리카

11) 1960년대 라틴아메리카

12) 생소한 남국 소설 (서인도제도, 인도)


소설사가 자신의 도정을 거치는 동안 유럽 여러 부분들을 하나씩 차례로 일깨우면서, 각각의 특수성을 추인함과 동시에 하나의 공통된 유럽 의식 안에 통합해 온 것 같다. 라블레는 비유럽 소설가들의 작품 속에서 흐른다.

*프랑수아 라블레
프랑스의 작가·의사·인문주의 학자. 프랑스 르네상스의 최대 걸작인 《가르강튀아와 팡타그뤼엘 이야기》을 썼다. 몽테뉴와 함께 16세기 프랑스 르네상스 문학의 대표적 작가이다. 영국의 셰익스피어, 에스파냐의 세르반테스에 비견된다.


8. 나는 파뉘르주가 더는 웃기지 않을 날을 생각하며 가슴 졸인다. -밀란 쿤데라 -


가르강튀아와 팡타그뤼엘

소설 문학의 아버지를 들라면 주저 없이 라블레를 꼽아도 좋다. 물론 그 이전에도 몇몇 “소설 비슷한” 시도가 있었지만, 라블레의 『가르강튀아와 팡타그뤼엘』이야말로 수사학적 에너지와 해박한 지식을 바탕으로 한 재치, 언어 유희, 유머 등이 모두 어우러져 있으며, ‘소설’이라는 새로운 장르의 주춧돌을 놓은 작품이라 해도 과언이 아니다.

<<질문>>

파뉘르주는 한 부인을 사랑하게 되어 미사 진행 동안 외설들을 속삭이다. 부인이 듣지 않자 발정 난 암캐의 분비물을 뿌려 놓는다. 그녀가 교회를 나서자 주변 모든 개 60만 열네 마리가 쫓아와 오줌을 갈긴다.


무엇에 공감하는가? 수줍음에? 파렴치에? 파뉘르주에게? 그 부인? 그 개들?


<유머란>

- 이 세계의 도덕적 모호성을 드러낸다.

- 인간이 얼마나 다른 사람을 심판할 수 없는 존재인지를 드러내는 신성한 빛이다.

- 인간사의 상대성에 대한 도취다.

- 확실한 건 없다는 확신에서 오는 기이한 즐거움이다.

- 현대 정신의 위대한 발명품

- 늘 여기 있었던 게 아니요, 늘 여기 있을 것도 아니다.




쿤데라의 <소설의 기술>도 그렇고 이 <배신당한 유언들>도 그렇고 뭔가 설명해 주어서 좋다.

쿤데라의 교과서 같아서 요점정리했다. 소설의 이해를 돕는다. 저 의미를 다 알지 못할지라도...


근대, 유럽이 낳은 역사에 참여한 소설작가들 그리고 독자, 그 사회라면 외면하지 말라는 말같았다. 로맹 가리식 유머 밖에 모르고 그 마저도 다 모르지만.... 이것만은 희미하게 기억한다. 게토의 생활 속에세 희망을 잃지않는게 꿈이란걸... 유머가 희극이 될수밖에 없는 그런 시대고 역사다.


쿤데라 소설은 나중에 익숙해진 다음에 소화하고싶다. 지금은 거리를 두고 조금씩 가까워지길 바란다. 문학비평은 샤를 단치처럼이 좋은거구나 하는 생각을 했다. 쿤데라가 지목한대로 비평하는 사람이다싶었다.


소설의 음악성, 소설의 발달단계 흥미로웠다. 좋아하고싶은 소설장르이고 싶다. 또 지금 읽는 소설들이 저기 어디쯤 지나고 있구나 하는 생각이 들어서 언젠가는 꼭 다 만나고 싶다는 생각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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