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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훌리아 Apr 09. 2016

카프카의 친구 브로트

밀란 쿤테라 <배신당한 유언들>  2부 가르타의 망령

(밀란 쿤데라의 말) 브로트가 없었다면 오늘날 카프카의 이름조차 알지 못했을 것이다. 친구가 죽자 곧바로 브로트는 그의 장편소설 세 편을 출간했다. 하지만 무반응. 그는 카프카의 작품을 인정받으려면 오랫동안 진짜 전쟁을 치러야 함을 깨달았다. 어떤 작품의 가치를 인정받으려 한다는 것은 곧 그 작품을 소개하고 해설하는 것을 의미한다.



<브로트와 카프카>



브로트가 서문을 쓴 카프카의 작품


1925년 소송

1926년 성

1927년 아메리카

1936년 전투묘사

1937년 일기와 편지 모음집

1946년 단편집

1952 야노우흐의 대화들




브로트가 해설한 카프카의 작품


1937년 프란츠 카프카 전기

1946년 프란츠 카프카의 신양과 교시

1951년 길을 가리키는 자, 프란츠 카프카

1959년 프란츠 카프카 작품에서의 절망과 구원



우리는 카프카의 철학을 그의 작품, 특히 그의 잠언들에서 끌어낼 수 있고, 뿐만 아니라 그의 시, 그의 편지들, 그의 일기들은 물론 그의 생활방식(특히 여기서)에서도 끌어낼 수 있다.




카프카의 작품에서 두 가지 주된 흐름을 구분


첫째는 잠언들

das posotive Wort, 적극적인 말씀, 즉 그의 신앙, 개개인의 사생활을 바꾸게 하려는 그의 엄격한 호소를 개진한다.


둘째는 서사 텍스트들(장편과 단편소설)

das Wort , 말씀을 듣으려 하지 않고 바른 길을 따르지 않는 자들이 겪게 될 끔찍한 형벌들을 묘사한다.




카프카의 서열관계 유의하기


1) 카프카의 생애

2) 잠언들(그의 일기에 기록된 모든 '철학적'인 격언 같은 문구들)

3) 서사 작품



브로트는 남다른 에너지를 지닌 총명한 지식인이었다. 남을 위해 싸움도 마다하지 않는 고귀한 영혼을 지닌 사람이요, 카프카에 대한 그의 애착은 열정적이고 사심이 없었다. 불행은 다만 그의 예술적 소양에 있었다. 관념을 중시한 그는 형식에 대한 열정이 뭔지 알지 못했다. 특히 그는 현대 예술을 전혀 이해하지 못했다.


당신이라면 당신의 둘도 없는 친구가
엉터리 시들을 써 댄다고
그를 좋아하지 않게 되는가?



하지만 엉터리 시를 쓰는 자는 시인 친구의 작품을 출간하려 드는 순간부터 위험한 존재가 된다. 가장 영향력 있는 피카소 해설가가 입체파를 전혀 이해하지 못하는 화가라고 상상해 보자. 그가 피카소의 작품에 대해 고 말하겠는가? 아마도 브로트가 카프카 작품에 대해 했던 말과 똑같은 말을 할 것이다.

그의 작품들은 '바른 길을 따르지 않는 자들이 겪게 될 끔찍한 형벌들'을 묘사한다고 말이다.








밀란 쿤데라의 말을 거의 전부 옮겨와 적었다. 내가 리뷰를 쓰고 시를 읽으며 감상문을 쓰면서 같은 작품을 개인들 마다 얼마다 다른 시각으로 보는지 아니면 얼마나 같은 시각으로 보는지 놀라울 때가 많다. 나 스스로도 놓치는 부분이 없는지 확인하기 위해서 해설 편과 다른 이의 리뷰를 찾아서 여러 편 보고 이해하려고 하는 편인데 실망과 놀라움이 교차된다.


장르소설 폄하하는 것은 절대 아니지만 문학에서는 다른 깊이와 시각으로 읽는 것이 아니라 보아야 하는 부분이 있다. 나도 겨우 1년 된 신참이다. 아직 엄두도 나지 않는 작품이 수두룩하다. 그 작품들 읽으려면 '내공'부터 쌓아야겠구나 하는 막연한 생각도 한다.


시詩집을 한 편 읽고 거의 절반도 채 이해하지 못했다는 생각이 들었다. 하지만 내가 느낀 놀라움과 황량함을 다른 이에게 전달하고픈 마음이 브로트와 같은 것이라면 나는 얼마나 끔찍한 형벌들을 묘사하고 있겠느냐 하는 점이다. 한마디로 너무나 썸뜩하다.


좋게야 봐주시겠지만 나는 제대로 전달하지 못했을게 분명하다. 브로트는 좋은 친구지만 카프카를 온전히 이해하지 못한 채로 서문을 쓰고 해설서를 쓰고 평한다. 쿤데라도 이 부분을 지적한 것일 테다.. 많은 문인들을 다수의 독자가 새로움의 발견, 한 눈에 알아봄 그래서 뭔가 걸작의 발견을 알아차리지만 그것을 단번에 알리기가 어렵다. 서서히 퍼져 나가는 그러다 불씨가 꺼져버려 묻히기 일쑤다.


이름 있는 작가가 좋아하는 작가로 소개가 되거나 비평가의 눈에 띄거나 출판사와 언론의 힘을 빌어 알려지는 것이 정석일 텐데... 그럼에도 불구하고 내 작은 소견으로 뭔가를 대신하려고 하는 작은 노력을 하찮게 볼 수 있느냐는 것이다. 나는 분명 후자인데... 후자이지만 좀 더 괜찮은 리뷰가가 되어야 할 텐데... 란 생각이 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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