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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훌리아 Jun 15. 2016

언어가 우스꽝스러워지는 이런 밤들...

파스칼 키냐르 <은밀한 생> p90~133 중에서

                                                                                   

*
텍스트들이 묘사한 혼합된 의미
힘을 지녔던 언어의 질료를
다른allos 것으로 만들지 않는 것이 무엇보다 중요하다.
고어들을 번역하면 그 단어들은 힘을 잃는다.


신의 진짜 이름은 소라게Bernat l'ermito이다.
소라게 속屬pagure은 한 촌락pagus의 족장이다.
그것은 버려진 소라 껍데기의 주인이다.
모든 언어는 버려진 소라 껍데기이다.


텅 빈 입에 언어는 감은 눈에 꿈인 것처럼.
노예들의 눈처럼 sicut oculi servorum.....
우리는 사랑하고 책을 읽고 연주하며 살아간다.
우리는 절대로 떠나지 않는다.


기억 이전의 흔적
입술에서 입술로 전해지는 것처럼
그 누구도 자기 자신의 열정의 대양에서
영원히 벗어나지 못한다.




*
꿈은 순수상태다.
절대로 잠에서 해방되지 못한다.
인간은 하루에 90분 꿈을 꾸고
호랑이는 (고양이와 마찬가지로) 200분이나 꿈을 꾼다.


최초와 최후의 장면은 보이지 않는다.
우리의 형상화가 우리의 육체였다.
매혹과 태초의 꿈은 같은 것이다.
사랑의 근접은 혼동으로서 꿈꾸어진다.


생명은 스스로에게 매혹된다.
봄primus tempus의 부활이다.
태어남은 선택이 아니다.
사랑이 되살리는 것은 입술의 언어다.


잃은 자는 사랑을 추모한다.
사랑의 원천이 상실의 경험이기 때문이다.
과거가 우리를 사로잡는다.
매혹은 시간을 모른다.




*
사랑의 첫 번째 특징은
사랑받는 자l'aime는 사랑하는 자l'amant를 자화磁化시킨다.
서로 잡아먹는 이 관계는 자신의 시선까지도 삼켜버린다.
황홀경에 빠진 한 순간, 사랑은 매혹에서 발원하고 닮아진다.


두 연인이 서로 헤어지면, 둘 다 영원히 욕망한다.
욕망이 우리를 버렸다고 비난할 때, 살아 있는 욕망을 배척하는 것은 바로 우리다.
바다 위 끝, 발 밑에서 입을 벌리고 있는 심연.
떠남으로써 사랑에 불성실했던 것은 바로 우리다.


최초의 매혹은 죽음도 불사하는 절대적인 신뢰다.
최후의 불연속을 손에 내밀어주듯이
진정한 사랑은 준비되지 않고 협상되지 않은 관계며
시간을 정지시켜버린다.

                                              




파스칼 키냐르의 <은밀한 생> 중에서 발췌한 글이다. 한 문장이 거의 완성된 글이다. 페이지 90~133 사이 글들을 건져 내가 본 이미지대로 나열한다. 그것이 옳은 아닌지 나로서는 알 길이 없다. 누가 아니라고 지적할 수도 없다.


작가의 자전적 이야기 그의 유년기의 사랑, 불륜의 사랑 그리고 이별 후를 그리고 있었다. 태초의 사랑이 어디에 온 것인지 언어 이전의 언어, 입술에서 입술로 이어지는 언어, 소리 나지 않는 언어, 매혹되는 것들, 생명이 매혹되는 것들, 꿈은 그것과 같은 것이고 우리는 꿈을 꾼다는 것, 잠들지 않을 수 없다는 것, 사랑한 것들에서 사랑을 외면한 것이 우리라는 것을, 다시 그 심연으로 가는 우리, 떠나지 않고 영원한 것, 시간을 모르고 시간을 정지시키는 것을 가리키고 있다.


그녀 네미는 그에게 어머니 입술에서 배웠던 언어처럼 매혹된 그것이고 자신의 혈관 속에 떠돌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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