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훌리아 Aug 23. 2016

움베르토 에코 <장미의 이름> 창작 노트

소설의 세계 - 작가노트

                                                                                                                                            

어떤 사람이 낯선 수도원에 들어가 이레를 묵을 작정을 한다면 그 수도원 자체가 지닌 행보pace를 받아들여야  하지 않겠느냐고 주장했다.
그런 수고도 할 생각이 없는 사람이라면 내 책을 읽어 낼 수 없다. 첫 백 페이지는 고행, 혹은 입문 의례와 같은 것이다.

- 편집자들이 처음의 백 페이지를 줄일 수 없느냐고 했을 때 움베르토 에코의 대답-



때때로 예술의 제작 과정에 대해 가장 뛰어난 글을 남긴 사람은 거장이라기보다는 군소 예술가들이었다.
자신의 창작과정에 대해서는 깊이 생각할 줄 알았던 사람들... 
바자리, 호레이쇼 그리노, 아론 코플란드...




장미의 이름 창작노트 / 장미의 이름 / 움베르토 에코




# 소설의 재미
자신의 삶에 관해 더 많은 것을 이해하고 전혀 다른 사람이 되어야 한다. 소설사의 각 계절에는 각기 다른, 재미를 누리는 방법과 누리게 하는 방법이 있다.


# 소설 입문
소설로 들어간다는 것은 산을 오르는 것과 같다. 산을 오르자면 호흡법을 배우고, 행보를 익혀야 한다. 순진한 독자들은 명상하지 않고 곁가지 이야기로 본질을 바로 꿰뚫어 버린다. 가장 소박한 독법이 가장 <구조적>인 독법이기도 하다.


# 소설의 다양한 해석
소설이라는 것은 수많은 해석을 발생시키는 기계다.
제목은 독자를 헷갈리게 하는 것이어야지, 독자가 정합적인 사고를 할 수 있게 해주는 것이어서는 안 된다.
작품이 끝나면 작가는 죽어야 한다. 죽음으로써 그 작품의 해석을 가로 막지 않아야 하는 것이다.


# 소설이라는 시
시적 효과는 계속해서 다른 독법을 생성시키는 텍스트의 기능이라고 정의하고 싶다.
중세는 나의 취미로, 끊임없는 유혹으로 내 곁을 떠나지 않았다.


# 소설 설계
소설은, 도시의 설계도 와도 겨룰 수 있어야 한다. 각 건물 간의 거리를 정하고, 나선형 계단의 계단 수를 정하기 위해 건축할 연구에 몰두했는가 하면 건축 백과 같은 책에 나오는 사진과 바닥 그림을 일일이 조사했다. 내 소설에 나오는 대화의 길이는 대화에 허용된 시간과 정확하게 일치하더라는 말을 들은 적이 있다.

-. 소설로 존재하려면 처음에 정의된 구조에 따라야 한다. 
-. 소설 세계의 가장 중요한 한 요소는 역사다. 
-. 예술이란 사적인 감정으로부터의 도피이다.


# 물리적 행위로서의 글쓰기
손가락이 타이프라이터의 자판을 두두리고 있을 때에도 나름의 생명력을 지닌 채 생각에 몰두하는 총체적 사고 작용이라는 것이 존재한다. 감정의 리듬이 아닌 몸의 리듬을 말한다.


# 독자의 역할
저자는 책을 쓸 때 마음속에 어떤 경험적인 독자를 상정하고 쓴다. 글쓰기라는 것은 곧 텍스트를 통하여 자기 나름의 독자를 확보하는 작업이다. (움베르토 에코 - 독자들은 내 것이 되어야 한다. 내 것이 되어, 하느님의 무소부재와 전지전능에 스릴을 느끼게 된다. 단계단계마다, 틈날 때마다 독자들에게 조심스럽게, 독자들을 파멸로 이끌고 있다고 경고했다)



독자의 꿈을 사로잡는다는 것은
독자의 머리에서 떠나지 않는다는 것을 의미한다.

책이라고 하는 것은
스스로 말하는 것이라는 생각이고, 결국 범인을 캐고
들어가면 우리 모두가 유죄라고 하는 생각이다.







장미의 이름 창작노트   / 움베르토 에코                                                 



<마무리>


나에게 독서는 '어떻게 읽을 것인지'가 중요하다. 처음 백 페이지에 거의 비밀의 열쇠를 쥐고 있다고 여긴다. 빠르면 50페이지 안에서도 만난다. 나에게 어렵다면 100페이지가 고비다. 거기에서 어떤 힌트도 얻지 못한다면 소설의 끝까지 고행으로 이어지고 만다. 백 페이지를 잘 넘기고 나면 그다음은 주변의 풍경 둘러보면서 지나갈 수 있는 여유도 있다. 마지막까지 그런 틈도 주지 않고 끌려가고 말땐 아마 오기로 읽고 있을 때다.

첫 페이지도 무척 중요하다. 작가의 목소리가 특별하길 바란다. 첫 페이지의 첫 문장이 얼마만큼 중요한지 작가들도 무척 잘 알고 있으리란 생각을 한다. 거기에서 자신의 독자를 끌고 들어가느냐 마느냐 그 모든 성과가 달렸을지도 모르니깐... 그의 말처럼 작가는 자신의 책이 새로운 많은 독자를 만들 수 있게 되었으면 하는 바람이 있다. (아주 먼 곳을 바라보고 있다.) 시대 정신의 흐름을 간취하는 철학자가 되어 대중이 <원해야 하는> 것을 드러내고자 한다. 

작가 움베르토 에코 <장미의 이름>을  여름에 읽어보려고 했는데 이번 여름은 이 책 두고 두고 읽을 수 없을 것 같아 작가의 노트를 찾아 읽었다. 역시나 재밌는 작가다. 나에게도 백 페이지는 의미가 있는데 이 작가도 그 백 페이지에 대해 한참을 이야기하고 있다. 나는 아이같이 신이 나면서도 조심스러워진다. (우스운 생각이지만) 파멸로 이끈다고 하니 잘 피해야 할까를 생각했다. <'장미의 이름' 창작노트>는 작가의 소설 구축을 들여다 볼 수 있다.  곁들여서 그의 소설에 대한 생각도 들여다 봤다.

모르는 것은 분명한채 둔다. 아는 것도 모르는 것에 놓아둔다. 그래야 마음이 편하다. 아는 것도 다시 보아야지만 안심이 된다. 내가 정말 알았는지 언제나 확실치가 않다. 내가 하고 싶은 말은 작가들이 말하여 준다. 내가 정말 하고 싶은 말을 찾아서 읽고 싶다는 (말도 안되는) 생각도 한다. 내 생각인 것처럼 말하지만 내 생각이 아니겠구나 하는 생각도 한다. 패턴을 따라가듯이. (자신의 삶에 관해 더 많은 것을 이해하고 전혀 다른 사람이 되어야 한다는 것이 가능한 것일까...)



풀섶에서 자라는 붉은 장미여,
빛에 씻긴 진홍 색깔과,
그 농염하고 향기로운 자태를 자랑한다만,
아니다. 내 바르게 이르거니와,
너의 불행은 목전이다.

- 후아나 이네스 데 라 크루스 -

                                                                                  
매거진의 이전글 문학은 변신이다. 샤를 단치 <걸작에 관하여>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