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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훌리아 Aug 26. 2016

진정한 책이라면. <너무 시끄러운 고독> 보후밀 흐라발

나의 생각을 언제나 더 크고 새로운 감탄으로 차오르게 하는 두 가지가 있다...... 내 머리 위의 별이 총총한 하늘과, 내 마음속에 살아 있는 도덕률이다.....


여름밤의 떨리는 미광이 반짝이는 별들로 가득하고 달의 형태가 정점에 이르는 순간, 나는 세상에 대한 경멸과 우정, 영원으로 형성된 고도의 감각 속으로 서서히 빠져든다.....

이마누엘 칸트의 아름다운 글귀 / 젊은 칸트의 더 아름다운 문장






첫 장을 모두 옮겨 적었다. 그러고 싶은 책을 만났다. 이 얇은 책, 리뷰도 아까운 책, 보후밀 흐라발이 궁금하다. 우연히 밀란 쿤데라 에세이 <만남>에서 보후밀 흐라발을 다시 만났다. 그가 말하는 보후밀 흐라발은 체코에서 가장 위대한 생존 작가였다. 끝없는 상상력으로 서민 경험에 심취한 그는 사랑받던 작가였다. 마음속 깊이 정치에 무관심했고 그 덕택에 몇 권의 책을 출간할 수 있었다.



체코는 제2차 세계대전 종전 후 체코는 공산당이 정권을 잡으면서 인민공화국 체제가 선포되었고, 1989년 시민혁명으로 민주화될 때까지 공산주의 정권이 지속되었다. 그가 정치에 무관심할수록 그를 향한 시선은 싸늘했다. (그가 친러파인가?) 쿤데라는 침을 튀어가며 그를 옹호하기에 나선다. 흐라발의 책들에 담긴 정신, 유머, 상상력을 들을 수 있는 세상은 들을 수 없는 세상과 다른 세상이며 정신 자유에 기여한 공이 크다고 말한다.



제목부터 참 매력 있었다. 너무 시끄러운 고독, 아.. 이런 고독도 있구나. 자신 안에서 넘치고 넘치는 속삭임일까 생각했다. 이 책은 그의 온전한 러브 스토리이다. 읽으면 읽을수록 눈물이 저절로 차올랐다 마른다. 이야기는 이해할 수 없는 지경으로 다다르기도 하지만 그게 어때서?라는 물음이 떠올랐다. 나는 이런 식이 무척이나 마음에 들었다. 리뷰도 남기지 않을 만큼 통째 이 책을 한 줄 한 줄 뽑아서 상상하고 싶었다.



그래도 이 기분 놓칠 수가 없어서 여기에 감상문 쓰고 있다. 시간은 애석하게도 내 기억을 모조리 앗아가니깐... 나중에 내가 이렇게 이 책을 이 작가를 만났구나 기억할 수 있게 나의 마음을 담아두고 싶다. 체코를 떠난 사람들 (나는 카프카와 쿤데라)만 알고 있다. 그리고 망명한 작가들 네루다, 마리나 츠베타예바, 베케트, 스트라빈스키, 곰브로비치 등을 알고 있다. 그래서 상황이 그러하면 떠날 수도 있구나 생각했고 당연한 것처럼 받아들이고 있었다.



나는 조롱거리가 되는 것으로도 모자라 구덩이 속에 처넣겠다는 협박까지 받았다.
귀중한 장서들은 스위스나 오스트리아행 화물열차에 실려 팔려갔다.
기차가 떠나가는 모습을 지켜보며 나는 미소를 지었다.
내 안에는 이미 불행을 냉정하게 응시하고 감정을 다스릴 수 있는 힘이 자리했다.

 


보후밀 흐라발은 체코를 자신의 첫사랑, 자신의 죽음을 체험할 때도 거부하지 않고 방패로 삼았다. 독특한 사랑인지 집착인지 모르겠다. 그의 알 수 없는 사랑이 궁금했다. 그런 사랑법을 가진 그가 아주 대단해 보였다.                                                               


너무 시끄러운 고독  / 보후밀 흐라발                                                 

                                                                                                                                                                            읽는 순간, 보후밀 흐라발의 매력에 흠뻑 빠져들 수밖에 없다....  

삼십오 년째 나는 폐지 더미 속에서 일하고 있다.
이 일이야말로 나의 온전한 러브 스토리다.
삼십오 년째 책과 폐지를 압축하느라 삼십오 년간 활자에 찌든 나는, 그동안 내 손으로 족히 3톤은 압축했을 백과사전들과 흡사한 모습이 되어버렸다.
나는 맑은 샘물과 고인 물이 가득한 항아리여서 조금만 몸을 기울여도 근사한 생각의 물줄기가 흘러나온다.
뜻하지 않게 교양을 쌓게 된 나는 이제 어느 것이 내 생각이고 어느 것이 책에서 읽은 건지도 명확히 구분할 수 없게 되었다.
지난 삼십오 년간 나는 그렇게 주변 세계에 적응해왔다.
사실 내 독서는 딱히 읽는 행위라고 말할 수 없다.
나는 근사한 문장을 통째로 쪼아 사탕처럼 빨아먹고, 작은 잔에 든 리큐어처럼 홀짝대며 음미한다.
사상이 내 안에 알코올처럼 녹아들 때까지.
문장은 천천히 스며들어 나의 뇌와 심장을 적실뿐 아니라 혈관 깊숙이 모세혈관까지 비집고 들어온다.
그런 식으로 나는 단 한 달 만에 2톤의 책을 압축한다.
하지만 일을, 신께서 축복하신 이 작업을 완수할 힘을 얻기 위해 엄청나게 많은 맥주를 마셨다.
지난 삼십오 년 동안 내가 마신 맥주의 양이면 올림픽 경기장의 풀이나 잉어 양식장도 가득 채울 수 있을 것이다.
그렇게 나는 뜻하지 않게 현자가 되었고, 이제는 내 뇌가 압축기가 만들어놓은 수많은 사고로 형성돼 있다는 걸 깨닫는다.
머리털이 모두 빠져버린 내 머리는 알리바바의 동굴이다.
모든 사고가 오로지 인간의 기억 속에만 각인되어 있던 시절은 지금보다 훨씬 근사했을 것이다.
그 시절엔 책을 압축하는 대신 인간의 머리를 짜내야 했겠지.
하지만 그래 봐야 부질없는 짓이다.

진정한 생각들은 바깥에서 오니까.
그것들은 국수 그릇처럼 여기, 우리 곁에 놓여 있다.
세상의 종교재판관들이 책을 태우는 것도 헛일이다.
가치 있는 무언가가 담긴 책이라면 분서의 화염 속에서도 조용한 웃음소리가 들려온다.

진정한 책이라면 어김없이 자신을 넘어서는 다른 무언가를 가리킬 테니까.

9-11page                   





살아있기에 글을 썼던 실존 기록자, 작가 보후밀 흐라발 Bohumil Hrabal(1914-1997)



<작가 소개 >                                             

보후밀 흐라발은 1914년 체코의 브르노에서 태어나 프라하 카렐 대학교에서 법학을 전공했다. 젊은 시절, 시를 쓰기도 했으나 독일군에 의해 대학이 폐쇄되자 학교를 떠나 철도원, 보험사 직원, 제철소 잡역부, 단역 배우, 폐지 인부 등 다양한 직업을 전전했다. 법학학위를 취득하나 법조인으로 일한 적은 없다. 마흔아홉 살이 되던 해, 뒤늦게 소설을 쓰기로 결심하고 1963년 첫 소설집 『바닥의 작은 진주』를 출간(말년에 이르기 까지 출판 금지)하며 작가로 데뷔, 이듬해 발표한 첫 장편소설 『엄중히 감시받는 열차』로 국제적 명성을 얻었다.


‘프라하의 봄’ 이후 1989년까지 정부의 검열과 감시로 자신의 많은 작품이 이십여 년간 출판 금지되었음에도 조국을 떠나지 않았다. 프랑스로 망명해 프랑스어로 작품을 쓴 밀란쿤데라와는 대조적이라 할 수 있다. 그는 해외 언론과 작가들로부터 ‘체코 소설의 슬픈 왕’으로 불리는 한편, 지하 출판을 통한 작품 활동으로 사회 낙오자, 주정뱅이, 가난한 예술가 등 주변부의 삶을 그려냄으로써 체코의 국민작가로 각광받았다.


오늘날 ‘가장 중요한 현대 작가’로 평가받는 흐라발의 작품들은 체코에서만 무려 삼백만 부 이상 팔려나갔고 30여 개국 언어로 번역, 출간되었다. 또 여덟 편의 작품이 영화화되었는데 그중 이르지 멘젤이 감독한 두 편의 영화 [엄중히 감시받는 열차]와 [영국 왕을 모셨지]는 각각 아카데미상 외국어영화 부문(1967)과 체코영화제 사자상(2006), 베를린영화제 국제평론가상(2007)을 수상하는 영예를 누리기도 했다.


체코를 방문한 전 미국 대통령 빌 클린턴이 작가가 자주 찾던 선술집을 방문할 정도로 세계적인 작가로 인정받은 흐라발은, 1997년 자신의 소설 속 한 장면처럼 프라하의 병원에서 치료를 받던 중 비둘기에게 먹이를 주려다가 5층 창문에서 떨어져 사망했다. 주요 작품으로 『영국 왕을 모셨지』(문학동네, 2009) 『너무 시끄러운 고독』 『시간이 멈춘 작은 마을』 등이 있다.



<작품 소개>

주인공 햔타는 자신의 압축기와 맨손으로 폐지를 압축한다. 파괴될 운명인 종이 더미에서 그가 찾아낸 아름다운 문장을 가진 책들을 추려 내기도 한다. 뜻하지 않게 교양을 쌓게된 한타는 자신의 고독한 상황에도 책을 읽을 수 있다는 것만으로도 행복해 한다. 압축하는 행위는 신성한 것과도 같다. 그를 그 지하실의 노동에서 구원하고 있다. 작가나 철학자들이 언제나 동반자가 되어 버팀목이 되어주니깐...  그가 맞서고자 하는 것들은 바깥세상이다. 자신의 세계에 머물 수 조차 없을 때 그는 어떤 선택을 하게 될까....




<마무리>

책의 인상 깊은 구절을 옮기려면 이 책을 통째 여기다 들이부어야 할지도 모른다. 책은 150페이지도 못 다 채우는 얇은 책자다. 나는 틈나는 데로가 아니라 틈이나도 성급하게 읽으러 달려가지 않았다. 멈추고, 다시 읽고, 다시 읽었다. 그리고 나서야 조금씩 전진했다. 아직 못 다 읽은 채로 책을 끼고 있다. 쉽게 다 읽어버리지 않아야지. 생각하고 있다.


24페이지쯤... 너무 슬픈데 슬픔은 통째 삼켰다 뱉어내는 느낌이다. 61페이지쯤... 사랑과 허무 앞에 선 그의 모습은 간신히 정신력으로 버티고 있다. 감정이 몹시 풍부한 사람들, 인간적인 분위기, 문화의 지혜가 그들의 커다란 눈 속에 있다는 걸 그는 알았고 얼어붙었다.


그처럼 나도, 그처럼 나도 그랬으면...

그는 다음과 같이 되풀이해서 말할 뿐이다.


뜻하지 않게 교양을 쌓게 된 나는 행복이라는 불행을 짊어진 사람인데, 프로그레수스 아드 오리기넴*(progressus ad orifinem 근원으로의 전진)과 레그레수스 아드 푸투룸**(regressus ad futurum 미래로의 후퇴)도 충분히 가능하다는 걸 이제야 깨닫기 시작한다.

- 보후밀 흐라발 -



https://brunch.co.kr/@roh222/49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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