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단한 독서
단단한 독서란?
거장들의 독서방법, 독서력
2015년 9월 22일부터 ~ 2016년 7월 19일까지 어떻게 하면 더욱 독서를 잘 할 수 있을 것인지 저 스스로 묻고 답하는 시간을 갖었습니다. 그리고 작가들이 말하는 독서와 글쓰기에 관한 이야기도 다시한번 되짚어 보았습니다. 거의 1년여 동안 저의 독서 기록이며, 그 기록을 바탕으로 저의 짧은 견해를 밝혀 보고자 합니다.
1) 오에 겐자부로 <읽는 인간>
2) 마쓰오카 세이고 <창조적 책읽기, 다독술이 답이다>
3) 샤를 단치 <왜 책을 읽는가>
4) 정민 <오직 독서뿐>
5) 알베르토 망구엘 <밤의 도서관>
6) 에밀 파게 <단단한 독서>
7) 김현수 <현자들의 평생공부법>
8) 오카자키 다케시 <독서실력>
9) 어수웅 <탐독>
오에 겐자부로 / 마쓰오카 세이고 / 샤를 단치
작가는 어떤 정신 작용으로 글을 쓰는 것일까?
책을 읽으므로서 작가의 정신이 어떻게 움직이는지,
그 정신이 어떻게 작용하는지 느끼고
이를 통해 독자는 발견하고 스스로의 문제를 깨닫고
진정한 '나'를 만나는 것이다
<읽는 인간> 오에 겐자부로
오에 겐자부로가 20세기 불행한 작가 맬컴 라우리를 읽다가 윌리엄 블레이크(1757~1827) 시를 옮겨 읽게 되는 과정은 무척 마음을 무겁게 했다. 그는 블레이크가 '슬픔'이라고 영어 어휘로 쓸 때 'woe(비애)', 'sorrow(슬픔)', 'grief(비탄)'를 쓰는데 자신은 '비탄', grief라는 단어를 가져와 소설에 쓰고 싶어 했다고 한다. 블레이크와 통하면서 맬컴 라우리와도 통할 수 있는 그런 걸 쓰고 싶었다고 한다. 블레이크의 짧은 시에 지닌 아름다움에 마음을 빼앗기기도 했지만 자신의 장남 히카리가 장애를 갖고 태어나 힘든 시기여서 이 글들과 함께 버티었다고 한다. '절망적으로 취했다'는 글 뒤로 1부가 끝나는 한 페이지가 무척 가슴 아프게 다가왔다. 작가는 이렇게 글을 썼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진정한 독서란 단순히 책을 읽는 것이 아니라
다양한 방법으로 책을 즐기는 것,
독자 스스로 독서를 통해 지식을
편집하는 방법론을 터득해야 한다.
<창조적 책읽기, 다독술이 답이다> 마쓰오카 세이고
독서는 '그 사람이 무엇을 읽고 있는지는 알 수 있지만, 그 사람이 어떻게 읽고 있는지는 알 수 없다' 마쓰오카 세이고 작가는 지금도 1년에 300일 정도는 새벽 3시 이전에 잠자리에 들지 않는다. 항상 뭔가를 읽든지, 스포츠 프로그램이나 다큐멘터리를 보든지, 뭔가를 쓴다. 독서라는 행위는 책에 씌어 있는 것과 자신이 느끼는 것이 '섞이는' 것이다. 쓰는 것과 읽는 것은 연결되어있다. '독서한다'라는 측면에서 바라보면 책을 쓰기 전에도, 책을 읽기 전에도 실제로 서로 비슷한 '독서 세계'가 전제되어 있다.
쓰자마자 사라지는 그런 글,
작가가 말하지 않은 것을 찾아내기 위해 (독자는) 책을 읽기도 한다.
독서를 하다가 몽상에 빠지는 순간이 있다.
<왜 책을 읽는가> 샤를 단치
글 쓰는 것이 기술이 아닌 것처럼 읽는 것도 기술이 아니다. 우리는 때로 책의 영향에서 벗어나려고 노력하고, 때로는 자기 자신에서 벗어나려고 애쓰기도 한다. 책을 읽는 것은 매우 좋은 일이지만, 읽지 않는 것이 좋을 때도 있다. 책도 사람처럼 때로는 사회의 해묵은 관습을 타파하는 역할을 하며 돈벌이를 위해 몸을 파는 책, 작가의 심술이 절정에 이른 책, 영원히 명예를 박탈당한 작가의 책, 그리고 어떤 작가에 대해 완전히 이해했다고 믿는 어리석은 '나'가 되려고 할 때! 읽지 않는 것이 좋다고 한다. 책 읽기의 운명은 우리 안에 내재해 있는 독서능력이 주관한다.
정민 / 알베르토 망구엘 / 에밀 파게
급선무를 먼저 아는 것이 공부다.
급선무는 사람으로서 해야 할 도리다.
(사물을 대하는 태도, 인간의 윤리)
공부는 사람이 되자고 하는 것이지,
사람을 넘자고 하는 것이 아니다.
<오직 독서뿐> 정민 중 - 순암 안정복의 말씀
순암 안정복(1712~1791) 바탕을 다지는 자득의 독서 '나는 책 한 권을 뗄 때마다 마음이 툭 트이고 정신이 한없이 맑아져서 세상이 문득 낯설어지고 새로워지는 경이를 맛보곤 했다. 글쓰기는 내가 배우고 싶은 글을 되풀이해 읽는 것에서 시작된다. 글을 지으려 붓을 잡으면 천 마디 말이 쏟아져 나왔다. 독서의 온축 위에서 그 웅혼한 학문과 문장이 터져 나왔다.' 독서는 각자의 몸통으로 읽어낸다는 생각이 들었다. 갖추고 있는 여과기가 달라 한 권의 책을 읽고서 각기 다른 이야기를 풀어놓는 것이 아닐까 싶다.
망구엘은 이미 자신의 책들의 관계망을 완전히 추적할 수 없고,
서로 연관 있는지 기억하지 못하고 알지도 못한다.
이런 관계는 우연으로 치부할 문제가 아니다.
책들은 읽히는 순서에 따라
정신의 도서관 매번 새로운 모습으로 끊임없이 변한다.
<밤의 도서관> 알베르토 망구엘
독서가는 자신이 읽는 책에서 많은 영향을 받는다. 망구엘은 닥치는 대로 책을 읽으며 책들을 자유롭게 관련짓고, 조그만 꼬투리라도 연결고리를 찾으며 책들이 하나의 공간에서 함께 호흡하게 한다. 책들은 의외의 행태로 모인다. 유사성, 연대순으로 정리되지 낳은 계보, 공통된 관심사와 주제 등과 같은 비밀스러운 규칙을 따른다. 모든 서재 및 도서관은 주인과 독자층의 자서전적 성격을 띤다. 소장한 책은 우리가 어떤 사람인지 말해주는 증인이며, 책에 의해서 심판받는다.
독자의 진정한 행복이란 바로 정신적 자유이다.
1) 작가에 의해서만 판단하려 하고,
2) 작가와 대립해서만 판단하려는
이 두 가지 사이를 언제나 비슷한 거리에서 유지할 수 있어야 한다.
<단단한 독서> 문학비평가 에밀 파게
시를 읽는 사람들은 어떤 의미에서 예술가이거나 예술가이고자 하는 사람들이다. 운율의 문장은 한 문장이 보통 이상으로, 단어가 울려 퍼지거나 잦아들면서, 리듬이 생명을 얻거나 사그라지면서, 어우러지는 것이다. 우리는 단어가 세계를 그리는 법을 보게 된다. 즉 보편적인 리듬과 소리의 울림 그리고 침묵이 세계를 그린다. 이 모든 것이 음악으로 그림을 그리는 작업이며 균형을 표출하는 방식이다. 리듬이란 본래 의미 자체며 생각에 앞서는 것이다. 그것은 작가 영혼의 움직임, 직접 소통할 수 있게 하는 수단이다.
독서 일기를 30년 동안 쉬지 않고 썼다.
사상은 개방적이고 사유는 자유분방했지만 이를 위해
스스로 공부의 감독이 되어 수십 년을 한결같이 읽고 쓰고 생각했다.
<현자들의 평생공부법> 저자 김영수 중
고염무 '스스로 공부감독자가 되어라'
맹자의 말씀 모든 공부는 지나온 과정을 종합하고 그것을 자기만의 생각과 견해로 요약할 수 있어야 한다. 그것이 진짜 독서고, 제대로 된 공부다. 그리고 공부를 통해 이끌어낸 자기만의 견해나 이론을 말할 수 있는 치밀한 공부(핵심파악)를 단계적, 체계적으로 나아가야 한다. 나는 공부와 독서는 다르지 않다고 생각되었다. 편안하게 힐링하는 책만 읽을 것이 아니라 몸과 정신에 흡수될 수 있는 책도 읽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독서의 수준기가 완성되면 그것을 의지하여
점점 자신이 좋아하는 작품이 굳어진다.
'나' 에게 지지 않도록 읽고 싶다.
<독서실력> 오카자키 다케시
저자 오카자키 다케시는 머리는 좋지 않아도 책만큼은 열심히 읽었다고 고백한다. 어린 시절 학업도 스포츠도 서툴고, 마음도 약했던 자신이 단 하나 의지할 곳은 문장을 읽는 것이었다고 한다. '책만 읽는 인생도 좋겠다' 말할 만큼 그는 즐기기 위해 책을 읽고 가급적 독서 시간을 많이 늘리거나 다양한 작가의 여러 책을 두루 접하길 바란다. 그렇게 읽었고 읽은 만큼 좋은 독서에 대해 설파할 수 있는 능력이 생긴 것이 아닐까 싶다.
첫눈에 사랑에 빠졌지.
언제나 내 사랑은 보르헤스였어요.
내 철학의 관심, 내 궁극적인 질문이
그 안에 있었기 때문이오.
그 주제를 좋아했기에 보르헤스와 사랑에 빠진 건지,
아니면 보르헤스와 사랑에 빠져서
거짓과 진실의 주제를 탐닉한 건지 모르겠소.
<탐독> 저자 어수웅 중
-움베르토 에코 작가의 말-
움베르토 에코는 다음과 같이 말한다. ' <세상의 모든 지식>우리 인생은 비어 있는 시간으로 가득 차 있어. 빈틈 empty space을 활용해야 해요. 하나의 정보 소스만으로 절대 믿지 말고 반드시 비교 comparison 해야 해요. 나에게 지혜를 원하는지는 모르겠지만, 지혜는 스스로 얻는 거요.' 나는 책에서 어떤 답을 얻으려고 파헤쳤던것 같다. 소설가는 절대 직접적으로 말하여 주지 않는다. 그 갈림길에 서 있을 수 있도록 눈 앞에 그려넣어줄 뿐이다.
9편의 리뷰를 보며 나에게 기억남은 글을 다시 편집해 보았습니다. 소제목은 제가 직접 정하여 봤습니다. 정신의 버팀목은 독서다 / 쓰는 것과 읽는 것은 하나다 / 읽기도 쓰기도 기술이 아니다 / 정신의 샘에서 글이 솟아난다 / 비밀스런 규칙에 따른 나만의 독서 / 글의 리듬, 작가영혼의 움직임이다 / 공부하듯이 독서해야할 때도 있다 / 즐거운 독서는 함께하고 싶은 마음이 든다. / 탐서탐독의 순간.... 어떤 의미인지 저 스스로에게 물었습니다.
정신에 대해 많은 궁금점이 생겼고 얼마만큼 확대되고 생산 가능한지 궁금했습니다. 결국 뇌의 작용이 궁금했던 건지 아니면 영혼이란 것이 궁금했던 건지 정확히 모르겠습니다. 많은 글쓰기 책들을 보았고 저도 여러권 읽어보기도 했습니다. 어떤 기술을 말하려고 하는 것인지 궁금했는데.. 그 책들은 흥미롭지는 않았다. 작가의 독서방법, 독서력에 더 촛점을 맞췄습니다.
아직 9편 정도를 정리해서 뭔가 요약하고 제 견해 밝히는 것은 어려웠습니다. 그런 걸 해보지도 않았고 그 방법같은 걸 잘 몰라서 제대로 쓰고 있는지 모르겠더군요. 가끔 독서후 리뷰남길때 힘겹게 요약하고 기록할 때 이런 마음이 듭니다. '많이 알아서 이만큼 다시 기록할 일이 없었으면 좋겠다고...' 그런데 매번 그 분량이 줄어들지 않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에 기가 눌립니다. 그저 흥미로운 독서를 하자고, 지치지 않는 독서를 하자고 저를 격려합니다.
알베르토 망구엘처럼 '닥치는 대로 책을 읽으며 책들을 자유롭게 관련짓고, 조그만 꼬투리라도 연결고리를 찾으며 책들이 하나의 공간에서 함께 호흡하게 한다'는 부분이 참 좋았는데 저에게도 그런 독서의 자유로움이 있었으면 좋겠습니다. 탐서탐독의 순간을 잘 기록해두고, 함께 할 수 있는 사람들과 나누고 싶습니다.